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선거전에 퇴색된 '경제성장론' 들고나오지 마시길!

by anarchopists 2019. 11. 2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3/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경제성장만이 살 길 아니다!




  분배냐 성장이냐 하는 해묵은 이분법적 경제논리에 대한 논쟁은 선거 때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거듭되는 한국정치의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분배를 말하면서 그것을 위한 경제적 장치, 즉 부의 균등 소유 같은 정책이 잘 시행되거나 정착된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에 경제성장을 운운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기득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뜻 없는 발언과 무책임한 공약이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전체 사회가 인간의 먹는 문제와 직결된 행복지수를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해보아야 한다.


  환경경제학자 이정전 교수는 최근 그의 저서에서 1인당 국민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를 규명했는데, 이를 ‘경제성장 효용체감 곡선’이라고 했다. 그에 의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이하일 때는 소득이 늘어날수록 개인의 행복지수도 높아지지만,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이 늘더라도 개인의 행복이 별로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경제학적 측면에서 행복이나 경제를 조명하는 논지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인간이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까지는 갖기 위해 노력하는 그 자체가 행복하고 가치가 있겠지만 성취하는 순간 행복보다는 오히려 또 다른 공허와 궁핍을 더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행복과 부 자체보다는 그것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삶의 의미가 더 값진 것이다. 갖는 순간 다시 우리의 욕망은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다시 그것을 좇고 또 좇아서 가지면 가질수록 그 기쁨과 행복은 이미 예전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최근 일본에서도 탈성장론(脫成長論)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이미 성장의 정상에 올라와 있으니 하산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수출을 통해서 성장하려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 하락이 불가피하고, 기업이 성장해도 국내 고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정부예산을 의료, 복지, 교육, 신에너지 등에 집중투자해서 내수를 확대함으로써 국민들의 행복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경제성장을 추구하던 것에서 방향을 바꾸고 이제는 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내려 놔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숙한 이성적 판단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물질적 가치를 향유하고 행복할 수 있을지 그에 대한 배려와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혹자는 성장이 있어야 분배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가진 게 있어야 퍼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많이 가진 자가 있어서 그것을 퍼준다는 관념보다 많이 가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게 가진 자들도 가질 수 있도록 양보하고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하고 공존하는 사회가 되는 좋은 길일 것이다. 누구나 그 기회를 균등하게 누려보는 것. 그것이 정의의 기초가 아니던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와 같은 탈성장에 대한 외침은 인간이 더 이상 자본이라는 존재의 주인이 아니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자본 스스로가 이익과 분배를 가져오는 경제적 행위자가 된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으나, 자본 자체가 주인 노릇을 할 수는 없다.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의 노예가 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기 권리와 권리 투쟁의 현상이 세계 이곳저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의 목표는 자본 자체라기보다는 자본가에게 있는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와 빵집을 문 닫게 하고 소시민의 생존 기회와 권리조차도 박탈하고 그들이 가진 것조차도 독과점하려는 자본 기업의 횡포는 바로 상도(商道)에 어긋나는 행위 일뿐만 아니라 무한 성장의 욕망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유린한 것이다.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 대해서 지배 야욕을 드러내는 것이 경제 행위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먹는 것만큼은-경제(economics)라는 말이 가정, 가족이라는 oikos라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듯이-그야말로 생계를 보장하고 나눌 수 있도록 놔둘 수 있어야 한다. 먹음의 본능을 이용하여 인간을 치사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분노와 복수의 칼을 가는 성장의 욕망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란 자연과 인간의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바 그 둘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구의 유한성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지구 위에 인간, 인간 위에 자본이 군림하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본, 인간, 그리고 지구의 관계를 좀 더 종합적, 성찰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