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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다름은 따름입니다!

by anarchopists 2019. 11.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18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인이 다름을 산다는 의미


  종교인이 다름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르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비교 대상과의 관계에서 우열, 좋고 나쁨, 의미와 무의미 등에 따라서 선택이나 선별이 되는 그 무엇을 담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종교인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삶의 선택지보다 그들이 사는 삶의 선택지가 보다 더 의미가 있고 좋다고 여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모델이 되곤 한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인 다름의 삶이란 별종의 삶이나 비상식적인 삶을 가리키지 않는다. 나아가 사람들이 다르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추종하거나 선택 혹은 선망하도록 만드는 매력 같은 것이다. 고래로 종교는 인간의 생로병사에 깊이 관여해 왔다. 수수께끼 같이 풀리지 않는 삶에 해답을 제시하고 종교적 의례를 통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종교만이 갖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종교는 초월적 존재 혹은 믿음의 대상에 대한 고백의 언어와 몸짓 언어를 발언한다. 그런데 그와 같
은 종교의 다름은 세계와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종교 공동체의 행위, 즉 백팔배, 자비, 사랑, 묵주기도, 로사리오기도, 관상기도, 불살생, 순명, 정결, 가난 등은 종교를 넘어서면 바깥세계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종교 자체만의 언어적 행위이거나 종교끼리의 개념으로 그치고 마는 일이 허다하다. 따라서 세계도 종교의 다름의 현존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체득할 수 있도록 실재화 하고 현실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종교가 갖고 있는 다름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로 하여금 종교적 언어와 행위가 이해가 되고 설득이 될 뿐만 아니라 상식(common sense)으로 비추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종교언어(사랑, 인내, 가난 등)를 통해서 새로운 실재를 만나게 되는 사회는 굳이 보편적인 개념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감각, 예수의 감성, 부처의 감성 등이 되어 인간의 무늬를 새롭게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더 이상 성당, 사찰, 교회만이 종교가 경험되는 장소로 인식하지 않고 “삶의 현장” 전체를 초월적 존재를 만나는 곳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에서 삶의 성찰이 발생하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 하는가’하는 존재론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고 의미를 터득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곧 철학은 물음을 던지고 종교는 해답을 찾는다는 단순한 명제와도 맞닿아 있다. 이와 같은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 부처도 6년을 수행한 후 가짜 ‘나’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여 세상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종교는 가짜인 나를 발견하고 진짜인 나를 찾아가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종교를 갖고 있는 각각의 공동체는 신, 혹은 참 자아를 발견함으로써 인생의 유형적인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 그 종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다름의 현존을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신자들의 집합체여야 하는 것이지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이나 명예를 얻고, 자녀가 잘 되며, 사업이 번창하는 등의 현실 세계에서의 가시적 행복을 다 누리다가 종국에 가서도 사후의 영원한 행복을 맛보며 살겠다고 하는 것은 종교의 본래적 기능과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신자들이 주기적으로 교회나 성당을 가고, 사찰에 가는 것은 다름의 현존을 확인하고 그 다름의 현존을 살고 있는가를 성찰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다름의 현존을 드러낸다는 것이 고작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을 빙자해서 원하는 것을 획득했다는 결과를 가지고 평가하면 곤란하다. 종교가 정말 다름의 현존을 사는 것이라면 돈, 대학합격, 축구시합우승, 입사 등을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는 너무 초보가 아닌가.


  구마(驅魔)를 한답시고 자신의 피붙이를 죽인 교회 직업인은 그것을 다름의 현존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백
년하청(百年河淸)이라 했던가. 그 다름의 신념과 행위를 용인해줄 수 있는 대중들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다름은 선구자를 따름이지 흉내가 아님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함석헌은 말한다. “미래의 인간은 결과보다 노력의 과정 그것을 존중하고 법열보다는 참을 찾는다. 성공을 자랑하자는 심리가 빠지면 노력을 그 자체가 곧 감사요, 기도다. 이 다음날 종교에는 천당 지옥은 없을 것이다. 무서워서 믿는 것도 아니요, 상을 위해 믿는 것도 아니다. 믿는 것이 본분이어서, 인생의 본면목이어서 믿을 뿐이다. 고로 믿음은 곧 그대로 생활인 것이다.”(함석헌저작집14, 새 시대의 종교, 한길사, 2009, 74쪽)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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