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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말과 글에 배고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변주곡을 연주합시다!

by anarchopists 2019. 11. 2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3/1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함석헌은 “종교에서는 말이 자란다. 말에 역사가 붙는다. 말의 역사를 모르면, 종교는 말라 버린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33쪽)고 말했다. 종교는 말의 힘이 바깥으로 나타나 그 말이 행위로 이어지는 신의 현존을 역사로 보여준다. 그래서 말은 단순히 목소리나 음성이 아니라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목소리나 음성이라면 단순히 인간 육체의 음성기관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일 테지만 말은 인간 정신의 내면과 그 내면성 안에 자리 잡은 초월자의 내재적 능력이다. 따라서 종교의 말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초월자의 말이 된다. 초월자의 말이 된다는 것은 여여한 신의 있음의 작용과 행위로 점철된 것들이 인간의 역사로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말을 두려워해야 한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인간의 어떠한 사유와 판단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신의 말을 역사화 한다는 겸허한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단지 목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편 함석헌의 다음과 같은 말은 어찌 생각해야 할까? “나라는 군사 전문가·정치가가 망케 하고 교회는 교역자가 망케 하고 학교는 교사·학자가, 풍속은 미술가·음악가·시인이 망케 하더라.”(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46쪽) 자기가 맡은 바 그 본질 대로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닐까? 마치 이 말은 공자가 말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다른 신분은 차치하더라도 교역자가 교회를 망케 한다는 말은 결국 말과 연결된다.


  말을 잘 못하면-언변력이나 수사학의 탁월한 구사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공동체를 와해시킬 수 있고 전혀 그 공동체의 본래 방향과는 다른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 인해서 자신이 의도한 대로 사람의 의식을 조정하고 조작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이른바 말의 연금술사는 소용이 없다. 그와 같은 논리와 미사여구는 종교가 아니더라도 들을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사람들이 종교로부터 말을 듣고자 하는 것은 그 진리와 진실성 혹은 진정성이다. 그런데 그런 말은 들을 수 없고 온갖 소음만 난무하면서 신자들의 이성과 정신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을 받는 것은 말을 오용하고 남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말과 글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왜 언어를 수단으로 해서 자신의 근본적 삶의 실존을 이어가는 것일까? 물론 말과 글이 갖는 순수성을 곡해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그 순수성을 매개로 인간의 의식과 본질, 그리고 이성을 계몽하기보다는 상술적인 언어유희로 쓸모없는 활자를 생산하여 눈의 피로를 증가시키며 소음을 양산하는 사람이 될까 우려가 돼서 하는 말이다. 그것은 비단 종교 혹은 종교지도자에게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니다. 이른바 글이나 말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말의 참 역사성을 의식하지 못한 채 원고지 몇 장의 글을 수치적, 화폐적 가치로 환산하는 버릇을 가지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앞에서 함석헌은 “말에 역사가 붙는다.”는 말을 하였다. 그 속뜻은 인간의 내밀한 의식의 흐름이 계기적 사건
을 일으키며 과거의 기억을 끌어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말 하나하나에는 과거의 역사 곧 인간 의식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서 위대한 사건을 일으키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말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종교지도자이든 아니면 작가이든, 칼럼니스트이든 모두가 말의 존중과 말의 가치, 말의 격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말은 밥이 아니라, 정신이다. 말과 글에 정신이 없다면 언젠가 말라 버리고 말 것이다. 그 말과 글에 자신의 역사가 묻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과 글로 씨알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 그저 긁어주는 말과 글이 아니라 사명감이 갖고 정신과 역사가 숨 쉬는 참 숨결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설령 배가 고파도, 그것이야말로 맑은 정신으로 인간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길이기에 말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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