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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행사 관련

[석경징 제2강]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by anarchopists 2020. 1. 3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14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20주기, 간디61주기 추모학술대회 강연-석경징]


이런 보통의 삶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그저 보통사람됨의 당연한 탐이고 바램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이 어떤 위협을 받아 성립되기 어렵게 되거나, 보통사람들 자신의 타락과 부패가 스스로 그런 삶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보통사람들이 남은 맑은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들을 추스려서, 옳게 세상을 실아가려고 하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형편을 한마디로 나타낸다면, 바로 그것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 속에 있는 생각하기일 것입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니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근래에 우리가 다 함께 겪었던 일을 예로 들면서 이 점을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좀 게면쩍은 일이지만, 2002년 여름에 발표했던 저의 글 하나에서 두 세 부분을 인용 해보겠습니다.

청계천을 복원한다고들 한다. (잘 지나간 일을 왜 다시 꺼내느냐고 하지 마시고
조금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천만 명 넘게 모여 살고 있다는 서울 한
가운데로 맑은 시내가 흐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일이다.
이쁜 바위 곁, 반짝이는 잔 돌 위를 맑은 물이 흐르고, 군데군데 무리지어 자
라는, 잎이 긴 물풀 위로, 젊은 아가씨들의 머리 빛처럼 새까만 가느단 날개를
팔락거리며 물잠자리들이 날아오르는 시내가 이 서울 한 복판에 있게 된다는
것은, 흥분되어 가슴이 뛰고, 어디 가서 큰 소리라도 마구 지르고 싶어지는
그런 일이다.

이어서, 복원된 청계천에서, 옛날처럼 빨래는 하게 할 건가? 여름에 목물은 할 수 있나? 겨울이면 아이들이 얼음을 지칠 수 있나? 내 기슭에서 어스름이 나린 뒤에 젊은이들이 어두워도 환히 빛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중요하고도 어려운 자기네들의 문제에 관하여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의논들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을 궁금히 여깁니다.

그러나, 청계천이 복원 되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빨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같은 것만이 아닙니다.

목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건지, 한꺼번에 몇 명이 할 수 있는 건지, 물고기는
얼마나 잡게 하며, 그 좋아들 하는 매운탕은 끓여먹게 하는 건지, ..... 이런 것만
해도 아무리 따져본들 결말나기 어려울 것이다. 물에서 기어 나온 두꺼비는 풀
썩은 내, 흙내 맡으며 축축한 비탈을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지금 관수동이란 데는 들어서게 할 건가? 아주 종로까지 갈 수 있게 할 건가?
슬슬 기어가면, 삼청동 골짜기에도 들어서게 할 건가? 청계천을 복원해놓고도,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철망을 둘러서 막아 놓고, 무한정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까?

실은 이런 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청계천을 복원한 다음에야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되었다면 청계천 복원 계획 속에 문제가 되어 들어 있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은 그 말도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청계천을 복원한다는 생각 속에 들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르게 한다면, 아니 “복원”이란 우리말을 보통 사람이 쓰듯 제대로 쓰기만 했다면, 그 말 속에 모두 들어있어야 할 그런 일들입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 속의 생각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두 말 할 것 없이 바르게 해야지요. 바르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충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우선 말을 바르게 쓰는 것입니다. 붉은 것은 붉은 것, 푸른 것은 푸른 것으로 알고 그렇게만 쓰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는데도 그냥 차를 몰고 지나갑니까? 이 사람들이 모두 색맹입니까? 붉은 색, 푸른 색을 분간 못 합니까? 앞서 있는 표를 따르자면 이 사람들은 I.의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 이들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왜 그냥 지나갔느냐고 물으면, 붉은 불인 줄 몰랐다고 하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정말 몰랐다면 II.의 1.의 능력이 문제되는 경우입니다. 능력이 모자라고, 따라서 운전을 할 수 없어야 합니다. 알면서도 몰랐다고 한다면, II.의 3.에 해당하겠지요.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급해서 갔다”고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는 급하면 (그것도 정말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갈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II.의 2. 즉 억지 권위를 부리는 경우에 에 해당합니다.

생각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우선 말을, 말도 무슨 긴 말이 아니라 단어를, 바르게 써야 합니다. 그것은 대단한 지성이나 도덕적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냥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늘 쓰듯이 쓰면, 대개는 바르게 쓰는 것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붉은 것은 붉다, 푸른 것은 푸르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르게 하는 두 번째 방법은, 말의 앞뒤가 서로 맞게, 어제 그제 한 말과 지금 하는 말이 다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사람에게 조금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은 아는 것이 바뀌고, 따라서 생각과 판단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 살 때의 생각이 여든까지 고스란히 간다면 그건 큰 일이 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이 바뀌는 것을 두고 흔히들 철이 들었다든가, 더 지혜로워 진다고도 합니다.

그렇게 바뀌어 가는 생각은 사람들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다만, 어느 경우에 생각을 바꿨다면, 먼저 한 생각의 어디가 잘못되었고, 새 생각의 어디가 그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인가를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알 수 있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승인을 받아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석경징 선생님은
석경징(石璟澄) 선생님은 영문학을 전공한 언어학자전공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신다. 재직 중이실 때는 서울대 입시출제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현재 함석헌학회 자문위원이시다.

저서로는 <서술이론과 문학비평>(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역서로는 <현대 서술이론의 흐름)(솔, 1997)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한국에서의 인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숭실대학교논문, 1997)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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