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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행사 관련

[석경징 제3강] 청계천 북원이란 말은 바른 말인가

by anarchopists 2020. 1. 3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16 10:3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석경징]



바른 말을 하는 것은 바른 생각을 한다는 뜻이다.
-청계천 복원이란 말은 바른 말이고 생각인가-

이렇게 해서 생각을 바로 하는 것은 사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욕심이나, 남을 속이겠다는 의도 때문에 마음이 흐려져 있지만 않다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않다면, 우리나라 말을 쓰는 보통사람이면, 그리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 사정에서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거의 모두 생각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른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교통신호등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또 “청계천”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생각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 보면, 모든 문제가 “복원”이라는 말을 쓸 때, 그 속에 이미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원한다”란 무슨 말인가? “원래 상태나 모양으로 돌아가게 하다”(연세한국어사전)란 뜻의 말이다. 청계천의 “원래”의 상태나 모습을 알 도리가 있을까? 아주 먼 옛날은 말고라도, 청계천이란 이름이 붙었을 때의 상태나 모습은 알 길이 있을까? “원래”란 원래 규정하기 어려운 말이니, 우리가 알만한 때로 낮추잡는 다 하더라도, 대체 그 어느 때의 청계천으로 돌아가게 한단 말인가? 도읍지로 삼겠다는 이에게 무학대사가 “저리 더 가보시오”했다던 그 들판을 흐르던 시내를 말하는가? 아니면, 장마철 지난 다음에는 군데군데 시체가 나뒹굴었다는 19세기 후반의 어느 한 때의 개천을 말하는가?…… “원래”는 어려우니, 과거의 어느 때로 복원을 한다 하더라도, 과거 어느 때의 청계천으로란 말인가?


과거 어느 때의 청계천이 왜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그것은 저쪽에서 먼저 청계천을 “복원”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복원이 아니라 수로를 새로 내겠다고 했다면 그에 따라 다른 것이 문제 될 수 있겠지만, 과거 어느 때냐는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의미나 논리로 보아 전혀 불가능한 “복원”이란 말을 왜 썼겠습니까? 이 질문에 직접 대답할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쓰고 일으킨 효과를 좀 보시기 바랍니다.

임기가 얼마 안 되는 자리에 들어선 이가 “청계천을 복원하겠다”고 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이고, 환경에 관심이 많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나서는 사람들까지도, 두 손을 들어 환영하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사실 옛날이라고 환경이 모두 좋았던 건 아닐 텐데 이들은 모두 “환경, 복원”이라는 말에는 조건 없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찌 되나, 안 될 줄 줄 뻔히 알면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복원”이란 말을 이 사람은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복원이란 말에 껌뻑 죽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은 것입니다.

“복원”이란 말을 이렇게 사용한 것은 앞의 표를 따르자면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 것입니까? 외국인이 되어서 “복원”이란 말을 잘 모르고 썼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뜻은 알기는 알았고, 그 뜻대로 하려고 하다 보니까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어떤 결과가 나올 런지 전혀 짐작하는 바가 없이 그냥 일을 벌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왜 하겠다고 나섰을까요?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그겁니까? 새로운 수로를 놓겠다고 했다면, 물론 그 나름의 찬반이 있었겠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검토가 벌어 졌을 것이므로, 그것은 매우 이성적인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 이러한 모양의 새로운 수로를 만들겠다고 명백하게 명언하고 나섰던들 “우리가 갖게 되는 청계천이 어떤 수로인가”를 우리 모두가 미리 알게 되었을 뿐더러, 하는 일이 그 모습을 따라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지를 지켜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사회 일각에는 청계천 사업이 큰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외국에까지 알려져서 무슨 환경관계로 주동한 이를 현창까지 했었습니다. 지금 있는 수로를 놓고 그것의 환경적 가치 (이런 말은 아마도 환경을 중히 여긴다고 나서는 사람들이나 쓸 것 같은 말입니다만)를 재고 평가할 마음은 없습니다. 물고기가 돌아오고, 관광객이 전 세계에서 구름 같이 몰리고 있는 줄만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타일을 발라놓은 수로 벽에 옛날 임금 행차하는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을 힐끗 본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경의 표시겠지요? (석경징, 내일 계속)

석경징 선생님은
석경징(石璟澄) 선생님은 영문학을 전공한 언어학자전공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신다. 재직 중이실 때는 서울대 입시출제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현재 함석헌학회 자문위원이시다.

저서로는 <서술이론과 문학비평>(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역서로는 <현대 서술이론의 흐름)(솔, 1997)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한국에서의 인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숭실대학교논문, 1997)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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