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행사 관련

[석경징, 제1강] 생각을 바르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by anarchopists 2020. 1. 3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13 10:47]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20주기,간디 61주기 서거 추모학술모임 강연-석경징

생각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인가?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만나면 날씨에 관한 말로 인사를 시작하는데, 그것은 원래 따지기 좋아하는 그 사람들이 서로 의견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하기는, 날이 좋은데, “날이 좋군요.” 그러면 “네, 그렇군요.” 할 수 밖에 없고, 그것 가지고 더 왈가왈부 하기는 좀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비가 오고 있는데 “날이 좋군요.”한다면, “아뇨, 비가 와요.” 하겠지요? 처음 말한 사람이 곧 승복하고, “아, 그렇군요.”하면, 이것도 더 따지고 자시고 할 게 없어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뇨, 그렇지 않아요. 날이 좋아요.”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길어지겠지요? 이런 형편을 간단한 표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을 영국 사람이라지 말고, 李가, 朴가라고 하겠습니다.

  말                                      실제의 사실                     말과 사실의 관계

I. 1. 李: 날이 좋군요.                 {날이 좋음}                   {사실에 맞는 말}
      朴: 그렇군요.                                                       {사실에 맞고, 상대의 말에 동의하는 말}
       ......
  2.  李: 날이 좋군요.                 {비가 옴}                     {사실에 안 맞음}
      朴: 아뇨, 비가 와요.                                              {사실에 맞고,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말}
      李: 아, 그렇군요.                                                  {사실에 맞고, 상대의 말에 동의하는 말}
       ................

  3. 李: 날이 좋군요.                   {비가 옴}                   {사실에 안 맞음}
     朴: 아뇨, 비가 와요.                                              {사실에 맞고,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음}
     李: 아뇨, 그렇지 않아요.                                        {사실에 맞지 않고, 상대의 날이 좋아요 말에 동의
          날이 좋아요                                                     하지  않음}
     朴: !?!?

짐작되는 바와 같이, 3.이 안고 있는 사정은 아주 복잡한 것입니다. 우선은 朴이 뭐라고 말하게 되는지가, 그 복잡한 사정의 일부를 나타냅니다. 만약 朴이 “정말요? 잘 보세요, 날이 좋은가.”라고 한다면, 이것은 李가 사실을 잘못 알았다고 朴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밑에 깔고 하는 말입니다. 즉 李가 사실을 착각하거나 오인하고 있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만약 朴이 “왜 그렇게 말을 해요?”라고 한다면, 李가 사실을 제대로 알기는 알면서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기를 설복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李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표로 만들면 다음처럼 됩니다.

말 초점이 놓이는 문제

(I.의 3.을 이어서)
            말                                                        초점이 놓이는 문제
II. 1. 朴: 잘 보세요, 날이 좋은가.                        (당신의 감각, 인식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 데...)
                                                                   (잘못 알고 있는데...)
2. 朴: 비가 온다니까.                                        (무슨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냐?)
       내 말을 왜 안 믿어요?                               (왜 나를 없인 여기나?)

3. 朴: 왜 일부러 그렇게 말하나요?                      (거짓말을 하는군요. 왜죠?)

II. 의 세 경우에서, 李는 사실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에서 그렇게 되는 것은 李 자신의 능력 (감각, 지각, 인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초록빛으로 보는 것을 못 본다든지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李는 비가 오는 날을 좋은 날로 알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과의 분란을 적게 하려면, 능력이 그렇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인사할 기회를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갖도록 해야 합니다. 1.의 경우를 대충 능력이 문제되는 경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2.에서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제 주장만 늘어놓고, 상대의 말은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근거를 인정하기 어려운 권위를 휘두르며, 고집을 피우는 완매함을 들어내게 되는 경우입니다. 말이 상관하는 사실에 비추어서 진이냐, 위냐의 문제를 넘어서, 그 말로서 어떤 힘을 상대방에게 행사하려고 하며,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러는가의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억지 권위를 부리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은 비가 온다는 사실을 알면서 왜 일부러 날이 좋다고 말하는가를 따지게 되는 문제가 담겨 있는 경우입니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을 잘못 안 것도 아니고, 무조건 고집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사실을 알고도 말을 다르게 한다, 즉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II.에 들어있는 세 경우는 우리가 옳게 세상을 살아가려면 될 수 있는 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일어나는 그런 경우들입니다. 옳게 세상을 산다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인 우리에게 그중 이로운 결과를 낳으며 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통 사람으로 지키기 어려운, 무슨 고매한 도덕이나 윤리의 실천을 요구하는 그런 수준의 삶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보통 사람이 지니는 언어능력, 판단력을 바탕으로 하고, 보통 사람의 민감성을 가지고, 자신과 주변을 살피며, 이전과 지금을 돌아보며 살아갈 때 이루는 삶입니다. (석경징, 내일 계속됩니다.)

석경징 선생님은
석경징(石璟澄) 선생님은 영문학을 전공한 언어학자전공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신다. 재직 중이실 때는 서울대 입시출제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현재 함석헌학회 자문위원이시다.

저서로는 <서술이론과 문학비평>(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역서로는 <현대 서술이론의 흐름)(솔, 1997)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한국에서의 인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숭실대학교논문, 1997)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