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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서울대 폐지론을 거들며

by anarchopists 2019. 11.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7/0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서울대 폐지론을 거들며



  적어도 한 국가의 대학을 평가하는 일에는 객관적 기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에 평가의 함정이 있다. 평가란 단순 평가가 아니라 주체가 되는 어느 일정한 국가, 대학, 기관 등이 대상이 되는 여러 국가, 대학을 평균화시켜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평가 주체가 되며, 누구의 기준으로, 누구를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최근의 전 세계 대학을 비롯하여 아시아 국가의 우수 대학 순위를 보니 대부분 선진국에 속해 있는 나라들이었다. 그것도 영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이 대거 좋은 순위에 들어 있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우선 좋은 대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급적 경제적으로 우월한 나라가 좋을 것이고, 그 다음은 가능한 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대학이면 우수한 대학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대학 평가와 그로 인한 서열은 국외나 국내가 다 마찬가지로 평균적 평가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미 좋은 대학, 우수한 대학에 유리하도록 평가 항목이 맞추어져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상위권 대학은 그 평가 기준을 만족시키기가 매우 쉽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므로 유럽의 유수한 대학들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덕택(?)에 탁월한 학문적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위권에 들지도 못하거니와 아시아의 정말 훌
륭하다고 평가받는 필리핀의 몇몇 대학의 경우(필리핀국립대학교, 산토 토마스 대학교,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 라쌀대학교 등)-경제적으로 낙후되었기 때문인지-거의 순위 밖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에서 서울대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다소 과장되게 말해서 이 나라(혹은 다른 대학들)가 서울대를 위해 존재하는 나라인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들이 자신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존속을 주장하고 나서는 게 아닌가 하는 불순한 생각마저도 든다. 이것은 마치 민주주의란 그 국가나 사회의 상류층이나 기득권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체제 등이 운영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기득권자인 지배층은 하류층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지 정책을 통해서 죽지 않을 만큼의 혜택을 베풀어 줌으로써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가 있다.


  부, 권력, 명예, 지위 등을 가진 이 사회 대부분의 기득권자들은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준 왕국과도 같은 서울대학을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구별, 구분, 차이가 있어야 차별도 생기고 특권 의식과 지위를 여전히 누릴 수 있으니 그것을 떠받쳐 줄 토대, 즉 서울대는 여전히 기득권 유지의 좋은 발판과 든든한 후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의 평준화, 즉 서울대 폐지는 과잉된 입시 경쟁이나 학벌주의를 철폐하기 위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사회의 특권 계급, 특권 의식, 그로인한 차별이 사라지기 위해서라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래야 이 사회가 새로운 판, 새로운 틀이 짜이지 않겠는가.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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