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6.10민주항쟁을 본 받아 4.19체제로 복귀하자.

by anarchopists 2019. 11.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6/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6.10민주항쟁을 본받아
4.19체제로 복귀하자

최근에 문화계 일부에서 함석헌을 패배주의자로 오인하고 이 나라 지식인들을 역사허무주의로 호도하는 무례함을 보이는 사례가 있다.(2012.4. 30, 조우석 문화평론가)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아무리 개인적 견해라고 해도 오만한 표현이다. 함석헌은 한 번도 패배주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비폭력 평화주의자였다. 게다가 오늘을 살고 있는 이 나라 역사가들은 우리 역사를 한 번도 허무주의로 몰고 간 적이 없다. 이 나라 지식인에 대하여 패배주의니, 허무주의니 하는 식의 표현은, 일제 식민교육에서 오염된 사고의 오류일 뿐이다.

하여 오늘은 5.16체제를 이끈 군부반공독재자와 이에 저항하는 시민사회를 연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일부 일제에 오염된 지식인들의 역사허무주의니 역사패배주의니 하는 그릇된 사고를 수정해 보고자 한다.

한국은 다른 대부분 민주주의국가와 달리 바르지 못한 정치꾼들에 의해 장기간의 권위주의적 반공독재를 경험하였다.(이러한 평가는 패배주의나 허무주의가 아니다) 이에 따라 잘못된 경제정책들이 나오고 우리사회가 지금도 정상궤도에서 많이 비켜나가고 있다.

곧 수출위주형ㆍ금융특혜형ㆍ정경유착형ㆍ경쟁주의형 경제정책으로 자본의 집중화가 일어나고 이에 따른 빈부 격차의 심화가 다른 나라보다 유별나게 나타나고 있다. 또 권위주의적 통치에 따른 남녀의 차별과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도 생겨났다. 여기다 경쟁위주의 교육정책은 비윤리적ㆍ비도덕적ㆍ비인간적 범죄구조를 꽈리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민사회의 경제정의운동과 참교육운동이 나오게 되었다.

또, 자본주의생산양식과 함께 밀려든 근대주의와 근대성은 단시간 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로 확대하면서 인간생활의 편리를 가져다주었지만 반면에 불확실성을 동반하는 인위적 위험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환경오염과 함께 찾아온 기상이변이다. 오늘날의 기상이변은 자연위험이 아니고 불확실성의 인위적 위험이다. 그리고 국가권력들의 핵시설 확대와 팽창, 핵무기의 확산은 인류공멸의 위기를 불러오는 인위적 위험이 되었다. 또 다국적 기업을 이끄는 자본가들의 유전자 조작에 의한 식품개발 또한 미래의 공포를 예고하는 인위적 위험이다.
이러한 통치권력과 자본권력들의 환경파괴행위에 대하여 시민사회는 분노하였다. 그래서 국가의 그릇된 반환경정책에 대한 저항과 대안운동으로서 시민사회의 환경운동이 나오게 되었다. 이어 건전한 먹을거리운동과 식량안보운동(우리밀살리기운동)도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 과학기술의 발달과 기계화ㆍ전산화 등 생산성의 향상은 오히려 영구적 실업과 불완전 고용을 부추기는 사회적 위험을 낳았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통치 및 자본권력을 가진 계층, 국가와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계층, 기술의 발달로 취업에서 소외된 비정규노동자ㆍ일용고용자ㆍ영구실업자 계층으로 사회계층이 심화되고 사회구조가 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사회정의를 생각하는 시민사회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즉 과학기술에 의한 생산성 확대보다는 인간의 삶의 질을 먼저 생각하는 노동정책을 요구하게 되었다. 노동 일수의 감소, 근무시간의 자유선택, 직업기회의 공평한 분배 등이다. 여기서 인간의 삶의 질을 추구하는 노동운동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잘못된 국가주의 중심 정책에 대한 대안운동은 시민사회에서 이끌었다. 그 덕분으로 우리 사회는 역사의 오류가 수정되고 적으나마 정의사회로 가고 있다. 이것은 허무주의나 패배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생산적인 역사발전의 모습이다. 이렇게 한국사회 발전의 역동적 힘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국가지상주의를 내걸고 온갖 폭정과 수탈을 일삼고 있을 때, 시민사회가 정책의 오류를 막아내며 가열차게 사회발전을 이끌어냈다. 그 중 하나가 6.10 민주항쟁이다.

6.10민주항쟁이 없었더라면, 이 나라에 민주주의 희망은 없었다.
그래서 이제 6.10민주항쟁의 정신을 이어 받아, 현대역사 50년을 희생시킨 5.16체제를 종식시키고 4.19체제를 되찾을 시기다. 함석헌은 죽는 그날까지 4.19체제의 북귀를 희망하였다. 그런데도 정치권력에서는 아직도 죽어가는 쥐새끼처럼 몸부림치면서 독재자의 딸을 내세워 5.16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바둥바둥되고 있다. 가련하고 딱한 일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국가지상주의(5.16체제)를 내걸고 역사의 오류를 저지를 때, 역사의 정의를 이끌어 낸 사람들은 권력층이 아니라 이 나라 시민(민중)이었다. 민중들이 이끌어낸 역사의 정의 중 가장 훌륭한 것이 4.19민주혁명이었고 6.10민주항쟁이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민주민족통일운동이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국가지상주의인 5.16체제(독재)를 끝내고, 민주·평화의 4.19체제(민주)로 복귀할 때이다. 때문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국가가치 중심의 5.16체제를 끝내고 개인가치 중심의 4.19체제로 돌려놓음이 옳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5.16체제의 장본인 박정희 반공유신독재자의 딸이 정치권력에 못 나서게 막음 또한 옳지 않겠는가.(2012.6.10.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