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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상태 박사 칼럼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3

by anarchopists 2019. 12.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1/2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3

우리는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에서 재미난 모습을 보게 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젊었을 때에 엄청 엄하셨더라도 나이가 들면 굉장히 순한 양처럼, 아니 비굴할 정도로 순종적인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아왔다. 반면에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렇게 순종적이고 헌신적이던 모습이 어느 순간 호랑이 같이 무섭고 당당해진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어느 순간 남성과 여성의 자리가 바뀌었는데 왜 그럴까?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이해가 되는 문제는 아닌듯하다.

생리학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문제는 호르몬(Hormone) 분비의 변화이다. 남자의 호르몬은 나이가 들면서 남성 호르몬보다는 여성 호르몬 분비가 강해지고 여자의 경우는 반대의 경우가 된다. 이 한 가지 사실을 통해 본다면 남자와 여자의 태생적 차이는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최근까지 모르고 지내왔다.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 힘이 약해져 그냥 그렇게 되는가 보다 했다. 욕쟁이 할머니는 있어도 욕쟁이 할아버지가 없는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여자는 남자의 이런 태생적 구별을 이용해서 나이들 때까지 참고만 지내면 모든 것이 제 세상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동안 받는 상처는 나이 들어 보상이 다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생적 구별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이를 악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바꾸려 해도 생리적으로 바뀔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바뀌지 않는다고 고민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진정으로 어울려 살고자 하는 것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현재의 삶에서도 구별을 적절하게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번 과학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인문학은 우리 삶의 모습을 반복되는 실험을 통해 같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학문은 아니다. 사람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누가 감히 실험을 할 수 있는가? 각자 주어진 대로 최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영역은 인문사회과학에 속해 있다.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일까? 바로 인간의 축적된 경험에 바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지는 않지만 경험의 축적 속에서 인간은 보편성을 찾아낸 것이다.

그 보편성을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꼭 옳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특수성이라고 하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삶의 모습에 이것만이 꼭 옳다는 것이 몇 가지나 될까? 또 삶의 모습에서 옳아서 좋은 것이고, 그르기 때문에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설정한 것인지, 누군가의 편의에 따라 설정한 것인지 부터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사유재산제도가 발생한 이후 인간은 너와 나를 차별하는 것이 아닐까? 힘이 있는 자, 많이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로 구별되어 그들은 힘과 부 그리고 권력을 자신의 특권으로 향유하기 위해 부단히 제도와 규칙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당하다는 논리로 특권을 유지하였다. 이 같은 모습은 현재에도 똑같다. 과거의 인간과 현재의 인간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대의 인간은 원시적일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눈으로 과거를 바라보면 당연히 과거의 모습이 현재보다 나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우리가 바라본 그 과거의 시간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조건을 그 시간에 맞추어 놓고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별 볼일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실제로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호모사피엔스 단계의 인간이나 현재의 인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쨌거나 인간은 인간을 차별할 권리가 없다. 단지 처해진 조건이 조금 나은 것 뿐 이니까!

우리는 이제 주어진 시간이 많건 적건 그 시간을 어울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후회하고 용서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한 삶의 모습에서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고치는 것은 문제의 해결방식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근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2011.1.25., 김상태)

김상태 선생님은
김상태 선생님은 인문학(역사: 한국근대사)을 전공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연구소> 소장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외 기호일보 객원논설위원과 함석헌학회 학술위원을 겸하고 있다. 현재 인하대에 출강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본문 내용의 그림은 인터넷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4008400844348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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