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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상태 박사 칼럼

민중은 끝장을 보고야 만다.

by anarchopists 2020. 1. 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1/2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이즈음 나는 행복하다. 아직은 이 작은 몸을 지탱해줄 발이 있는 것이 행복하고, 두 팔 벌려 껴안아 줄 수 있는 팔이 있음이 행복하고, 나와 어울려 쓴 소주 마셔줄 벗이 있어 행복하다. 비록 그 쓴 소주 값을 누가 내야 하나 고민이 되어도 네가 내어도, 내가 내어도 행복하다. 학창시절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던 그리고 감싸 주었던 동창들을 만나는 기분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는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쌓이기 시작한, 은퇴를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야 하는 나이에 이렇게 철없는 말을 할 수 있는 자신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있는 사람도 어찌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그것이 두려워 피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새롭게 역사를 공부하는 느낌도 든다. 철부지 시절 그렇게 외쳐왔던 말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그런 단어들이 다시금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하고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원숙해지고 남에 대한 배려가 깊어지고 나쁜 감정도 일지 않는다는데 도무지 반대로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지, 삶을 거꾸로 사는 건지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시선으로 다양한 접근방법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에서는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다. 왜냐하면 과거에 어떻게 살았던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싶기 때문이다. 입이나 머리로만 살아왔던 그 시간보다는 진정 가슴으로 그 가치를 느끼고 싶다. 그리고 나누고 싶다.

누군가 “세상은 아름다워질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아름다워 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틴 루터킹은 “옳다고 생각하면 먼저 실행하라. 외롭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러면 따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군사독재 시절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어야 산다.” 고 하였다. 지난 해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정의란 무엇인가" 였다. 우리사회에서 정의가 회자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광풍에 가까울 정도로 정의에 집착해 온 것으로 보인다. 왜 일까?

조선시대 후기에 가면 열녀를 강조한다. 표면적으로 이해하면 당시대는 유교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열녀들이 많이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실상을 알고 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조금은 거친 표현이기는 하지만 속을 까서 뒤집어서 이해하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 열녀를 강요하는 것은 열녀가 등장하기 않기 때문은 아닌가. 왜 열녀는 등장하지 않는가? 당시대의 삶의 모습이 변했음에도 -물론 이 변화는 성에 관한 인식이 주변의 변화에 맞추어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 사회질서가 문란해짐에 따라 자포자기적인 모습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권력을 가진 기득권이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 강요한 것은 아닐까
. 어찌어찌해서 열녀가 등장했는데 그 열녀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분석을 해보면 당시대의 평균수명이 40세이라고 했을 때 이에 가까운 나이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 ‘눈 가리고 아웅’은 그 순간만큼은 적용될 수 있겠지만 지속성이 없다.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그 위기감은 또 다른 ‘눈 가리고 아웅’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는 결국에는 망하겠지만...

대중이라고 하는 존재는 건들지 않으면 좀처럼 화내지 않는다. 그것도 지나칠 정도가 될 때까지. 그러나 한 번 화난 대중은 좀처럼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끝장을 보고야 만다. 비록 그 끝장이 자신의 죽음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끝장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아직도 어떻게 어울리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갈등과 상처를 입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잘 알고 있는데 이기심 때문에 그것을 감추는 것일지도 모르겠다.(2011.01.23., 김상태)

김상태 선생님은
김상태 선생님은 인문학(역사: 한국근대사)을 전공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연구소> 소장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외 기호일보 객원논설위원과 함석헌학회 학술위원을 겸하고 있다. 현재 인하대에 출강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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