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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새롭게 등장하는 폭력들

by anarchopists 2019. 1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4/19 06:32]에 발행한 글입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폭력들
53주년 4.19혁명 날을 맞아

최근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정치경제적으로 어둡기만 하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 발생하는 연이은 테러사건 등 인간파괴행위와 국가폭력이 서로 뒤엉켜 평화를 깨는 악들이 꿈틀되고 있다. 그래서 53주년 4.19혁명 날을 맞아 ‘악의 축’, 종교폭력, 그리고 공권력이라는 국가폭력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악의 축’(惡之軸; an axis of evil)이라는 어원은, 미국의 40대 대통령 레이건이 1980년대 구소련을 비판하는 슬로건으로, 구소련을 '악의 제국' 및 '추축국(樞軸國)'에 비유한 한데서 나왔다. 그런데 부시(不是) 대통령이 2002년 1월 29일 반테러전쟁의 일환으로, 자국의 이익에 제3국들을 이용하기 위하여 “국제테러 지원, 대량파괴무기 개발, 억압적 체제를 갖는 나라”들을 국제사회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나라 곧, ‘불량국가’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이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들 나라에 이라크ㆍ이란ㆍ북한을 지명하였다. 이때부터 악의 축의 단어는 세계적인 정치언어가 되었다.

이어서 부시는 이들 나라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이들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요구하면서 집요하리만치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강요하였다. 이라크침략(2003. 3. 20)과 북한ㆍ이란에 대한 ‘핵무기 파괴’ 강요가 그 실제다. 그러나 ‘악의 축’의 개념은 미국이 ‘강도적인 힘’과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한 폭력적ㆍ일방적 규정이지, 인류보편적 규정은 아니다. 즉, “우리(善) 편이 아니면 죄다 남(惡)이다.” 라고 단정하는 것은 유럽 중심적 사고인 선악이원론(善惡二元論)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잘못된 시각이다. 만약 얻어맞는 ‘악의 축’에 해당하는 나라에서 볼 때 미국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최대의 ‘악의 중심축’이 된다.


다음에 공적(公的)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국가 또는 사회 단위의 폭력(暴力; violence)이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이 있다. 하나는 국가가 휘두르는 공권력이라는 합법성을 가지고 휘두르는 국가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폭력에 반대하는 곧, 반사회적ㆍ반국가적 폭력이다. 후자의 경우는 국가 입장에서 볼 때는 반사회적 폭력이지만, 국가구성원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국가폭력에 대한 정당한 저항행위다. 정당치 못한 국가권력에 대하여 반대하는 국민 개인이나 전체행위는 정당성을 갖는다.

곧 일제시대 식민권력에 대항한 안중근의 이토[伊藤博文] 처단행위, 해방 이후 이승만 독재권력을 거부한 4.19혁명, 1980년대 전두환 등 신군부의 군부독재 획책에 대한 5.18광주민주항쟁, 6.10항쟁 등 사회적 약자의 반권력 행위는 분명 폭력을 수반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행위를 ‘반국가적ㆍ반사회적 폭력’이라 하지 않는다. 즉 국가폭력에 대한 전체구성원의 ‘자기정당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4.19혁명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오늘날 권력을 남용하는 국가에 있어서는 ‘국가폭력’이 공권력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된다.

이제, 반인간적 폭력을 공권력으로 미화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를 보자. 먼저 한국의 이명박 정권 때의 경우를 보자. 이명박 권력이 들어서면서부터 한국사회는, 연일 공권력이라는 미명아래, 국가권력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곧 국가폭력이다. 정부의 독재적ㆍ편향적 정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행사에 대한 색소물대포를 난사해놓고, 옷에 색소가 묻어 있으면 시위에 참여했던 안 했던 이를 가리지 않는 국민에 대한 무차별 체포, 용산지역의 철거민에 대한 학살만행, 이에 항의하는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비인간적 폭행 등이 그것이었다. 더욱 놀랠 일은 폭력을 역으로 조장하는 경찰측의 화염병 투척행위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국가가 스스로 폭력을 조장하는 정말 폭력국가의 전형이 된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보자, 이스라엘은 늘 남의 땅을 빼앗아 살면서 하나님을 운운하며 땅주인 행세를 한다. 그리고 심심하면 생존권 어쩌구 하며 팔레스티나가 살고 있는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침략을 감행한다. 그 탓으로 엄청난 민간인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그리스도교 구약성서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이름(하느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팔아, 팔레스티나지역을 일방적으로 침탈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곧, 종교폭력이다. 여기서 두 민족 사이에 전쟁은 시작되었다. 종교폭력으로 시작된 전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이면에는 미국이 있다. 이스라엘은 늘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연관된 ‘구조적 폭력’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공격을 일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요한 석유산업 및 식량산업과 금융산업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미국의 경제정책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나라는 누구인지가 분명해졌다. 앞에서 말한 '불량국가'의 개념에다 대입해 보면 알 수 있다. 국제폭력을 지원하는 미국, 국제사회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이스라엘은 분명 2013년 새로운 악의 축(新惡之軸)이다. 여기에 오늘의 현실과 같이 남북한이 강압적 자세를 계속 견지한다면, 남북한도 분명 신악지축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제 4,19혁명이후 남북한에 평화적 통일바람이 불었듯이 강압적 강성발언들을 중지하고 그 날로 다시 돌아가 제발 평화로운 조국을 꿈꿔보자.

국가구성원은 누구나 자기 나라가 정의로운 사회로 가고 있으며, 인류평화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감시할 책무를 갖는다. 그래서 자기 국가가 정의와 평화를 배반하고 폭력국가로 가고 있다면 이를 막아야 할 권리가 있다. 53주년 4.19혁명 날을 맞아 그 권리가 무엇인지를 우리 대한민국 구성원들은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2013. 4.19, 함석헌평화포럼 황보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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