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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6.15공동선언과 분단시대의 종언

by anarchopists 2019. 11.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6/15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6.15공동선언과 분단시대의 종언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면, ‘고난의 역사’다.(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1950) 그러나 이것은 필연이 아니었다. 근대 이후 이 나라 고난의 역사는 못난 이 나라 권력자들이 자초한 고난의 역사였다. 전통적 봉건시대 외세의 침략과 일제의 주권침탈은 하늘이 주는 필연이 아니라, 인위적 자초였다. 못난 권력자와 지배층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은 식민지를 원하지도 안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온갖 못된 사상과 인민통제 제도를 만들어 부귀를 누리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외세의 침탈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들은 저희들끼리 “점진이다 급진이다” 주장을 일삼다가 그만 자구(自救)의 생각을 잊어버린 채 나라를 남의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그 결과 이 나라는 식민지 조선이 되었고 나라사람들은 고통 속에 살았다. 이것은 나라사람들 자신이 자초한 고난이 아니었다. 권력자들이 지들 행복을 위해 나라 전체 사람들에게 강제한 고통이었다.

지구 사람들은 고대시대부터 권력에 의한 지배를 원하지도 않았다.
나라가 만들어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 살기를 바랐다. 그런데 칼의 힘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받드는 병사를 만들어 인민들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라라는 울타리가 나왔다. 근대 이후 발생하는 국가라는 이름이다. 권력자들은 나라사람들에게 경제적 강제와 경제외적 강제를 제 입맛대로 휘둘렀다. 이것이 점차 합법적 무력을 바탕한 국가제도로 발전하였다. 국가라는 틀은 왕정시대를 거치면서 공화정으로 진화하였다. 겉으로는 민권의 탈을 쓴 민주주의 제도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민주주의라는 국가는 오늘날까지 겉모습만 그럴 사하다. 그 내막은 거짓된 자유와 민권만이 존재한다. 소수의 권력자들(정치권력, 자본권력, 종교권력, 언론권력, 문화권력)만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소수를 위한 민주국가이다. 나라사람들은 판에 박힌(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 한 번으로 국가에 대한 권리를 정지당하고 고귀한 자유마저 빼앗긴다.

인간에게는 타고날 대부터 자유라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자유라는 본성을 발견한 것은 유럽 사람들이 먼저다. 그래서 유럽은 18세기 자유사상을 발견하고 국가권력의 강제된 통제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해 왔다. 곧 시민혁명이다. 왕정의 전복(顚覆)이다. 이것이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아시아까지 전파되어 아시아 대부분 모든 나라들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유럽을 포함한 아시아 모든 국가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제도는 나라사람 전체의 이익보다는 소수의 정치권력을 비롯한 종교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 문화권력자 중심으로 이익이 돌아가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이것은 같은 법을 위반해도 위의 소수 권력자들은 법에 의한 벌을 받지 않는다는 데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때문에 대다수의 나라사람들은 소수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강제된 봉사를 당하고 있는 꼴이다. 이게 오늘날 자유주의 국가요. 민주주의 국가다.

그 중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의 예를 한반도의 분단국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의 영토분단과 민족분단은 분명 한반도 나라사람들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없는 거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의 냉전권력과 내부의 분단권력들이 지들 입맛대로 요리한 결과에서 나온 현상이다.

그러나 ‘정의의 역사’를 찾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고 다수의 나라사람들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남쪽 나라사람들은 나라 안과 밖의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강제된 분단을 종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려왔다. 그것이 4.19민족통일운동(1960), 6.10민족통일운동(1987)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개인 권력자들은 조국분단을 고착시키려는 음모를 꿈꿨다. 7.4공동성명이 좋은 예다. 7.4공동성명은 분명 전진적(前進的)이고 주체적, 평화적, 민족통일을 위한 대헌장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내막에는 검은 음모가 숨어 있었다. 곧 한반도 분단상태의 고착화와 두 개 조국의 전착화(纏着化)다. 그 결과, 남과 북에서 각각 남한(박정희)과 북조선(김일성)의 일인통치체제를 서로 인정하는 유신체제(1972.10.17)와 사회주의헌법(1972.10.27)이 공포되었다.

남한에서는 유신체제로 국가보안법이 광분(狂奔)하면서 ‘오류의 역사’를 ‘정의의 역사’로 돌리려는 자유의지를 갖는 사람들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권력 내부의 모순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다시 나라사람들은 민족의 통일과 민주사회를 진정 바랬다.(6.10민족통일운동) 그 결과 국민정부가 들어섰다. 국민정부의 권력자들은 그런대로 양심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 이들 권력자는 전체 나라사람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여 분단시대의 종식을 위한 노력을 했다. 이런 노력은 권력자들의 입맛에 길들여진 허구적 통일방안이 아닌 실질적 통일방안을 낳았다. 곧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만들어낸 6.15남북공동선언(이하, 6.15선언)이다.

6.15선언은 국가형태의 진화를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함석헌식으로 말하면 세계시대의 서막이다. 세계주의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자유의 노력은 오래 못가, 함석헌식 ‘고난의 역사’가 다시 나타났다. 역사의 진화를 가로 막고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수구적 개인 권력자(국가이익을 개인이익화 하려는 음모세력)들의 재등장 때문이다. 이들은 ‘정의의 역사’를 거부하였다.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오류의 역사’를 참이라고 주장하였다. 수구적 보수권력의 등장과 뉴라이트의 준동으로 나라사람들의 분단시대 종식을 바라는 여망은 물거품(남북이 전쟁직전까지 감)이 되었다. 그 결과 한반도 역사는 수십 년 후퇴하고 있다. 이제 또 다시 어려운 걸음걸이를 해야 했다.

이 나라 사람들의 자유의지는 한반도 통일이다. 평화의 세계시대로 가고자 하는 그런 희망이다. 이제 세계는 평화시대를 원하고 또 평화주의로 가고 있다. 지금 이 나라는 여성대통령 중심으로 권력질서가 개편되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평화의 상징이라고 한다. 평화시대를 열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6.15선언을 진정으로 실천(분단시대의 종식)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013. 6.13, 황보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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