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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만주를 삼국의 '공동역사지역화' 하자

by anarchopists 2019. 1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3/31 07:42]에 발행한 글입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만주의 한중일 공동역사지역화

1910년 3월 26일, 이날 안중근이 일제에 의해 죽어서는 안 되는 죽음을 강제 당하였다. 안중근은 죽기 전에 ‘동양평화론’을 설파하였다. 평화는 강제가 되어서는 오지 않는다. 국가지상주의가 존재하는 한 평화는 오지 않는다. 일찍이 한중일 삼국의 공동경제를 주장하면서 만주지역(중국의 동북삼성東北三省)에 대한 ‘지역중립화’를 주장한 안중근을 오늘에 되살려 본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과거의 사실이 반복된다. 다만 진화하면서 빈복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 그래서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 지나고 국제연합을 만들어 전쟁재발 방지를 하고 있다. 그 결과 다행히 큰 전쟁이 없이 지역적 전쟁(강대국의 대리전이 국지전쟁)만 있었다. 다시 말하면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해당되는 지역사람들만 고통을 입었지, 전체 인류의 고통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전체 인류의 평화를 깨는 일련의 전쟁분위기가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시 ‘싸움 축’으로 올라가고 있다. 한반도에서 수레바퀴를 ‘싸움 축’으로 돌린 자는 한국의 이명박이다.

이에 북한의 핵실험과 위협, 그리고 일본의 재무장 논란과 중국의 군비강화다. 물론 이 모든 문제의 원인(遠因)은 미국에 있다. 미국의 부시정부 때, 미국에 위협을 주는 ‘악의 축’으로 북한, 이란, 이라크를 지적하였다.(중국의 신경을 건들까봐, 중국은 명목상 악의 축에서 뺐지만, 사실 미국은 중국을 ‘악의 축’의 종주국으로 본다) 그 결과 이라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미국은 자신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후세인을 강제 제거하였다. 그리고 이라크를 친미(親美)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이어 내심으로 ‘악의 축’으로 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시설을 확충하면서 재점검하기 시작하였다. 그 일환이 한국에서 미군기지를 동두천 등지에서 평택으로 옮긴 일이다. 그리고 해군기지를 제주에 두는 일을 지금 진행 중이다.

앞으로 세계전쟁이 터진다면, 한반도가 화약고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아마도 미국이 그것을 조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유럽 중심 세계전쟁의 화약고가 발칸반도에서 터졌다면, 21세기 세계전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화약고를 한반도로 만들 거라는 전망이다. 그 이유는 미국이 한반도에 ‘악의 축’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오늘에 부활시켜 본다.

안중근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죽음 아닌 사법살인을 당했다. 그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어떤 사상과 주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젊어서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피지배층 계급에서 일으킨 반봉건, 반외세혁명운동인 ‘동학농민기의’를 탄압하는데 황해도 지역에서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러다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조선이 강탈위기에 몰리자, 침략자를 몰아내고자 실력양성운동을 일으킨다. 바로 교육운동이다(안중근은 평안도에 삼흥학교와 황해도에 돈의학교를 세움) 그리고 국채보상운동에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끝내는 조선이 일제에게 강탈의 풍전등화(風前燈火)가 되자, 안중근은 실력양성운동에서 무장투쟁으로 태도를 바꾼다. 그래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여 대한국(大韓國) 의군(義軍)의 참모장이 된다. 이어 안중근은 동지들과 斷指同盟(단지동맹)을 맺고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伊藤博文)를 사살한다. 이는 결코 테러가 아니다. 다만, 정당하지 못한 자에 대한 정의와 평화만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내 집에 침입한 도적을 막는 것이 왜 테러인가. 뉴라이트들이 안중근을 테러리스터로 보는 시각은 제 집에 침입하여, 지네 마누라를 겁탈하는 것을 잘 하는 짓이라고 박수를 치는 이치와 같은 발언이다.

이토를 총살한 안중근은 러시아군에게 잡혔다. 그리고 일본경찰에 넘겨져 지금 중국의 요령성 다렌시(遼寧省 大連市)에 있는 뤄순감옥(旅順監獄)으로 이송되었다. 안중근은 여기서 조선인에 대한 사법권을 가지고 있던 일본에게 사법재판을 받는다. 안중근은 재판에서 이토를 죽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동양평화를 어지럽힌 이토를 대한국 의병중장의 자격으로 주살하였다. 지금 나는 적국의 포로이니, 만국공법으로 나를 대하라여기서 안중근은 만국공법을 이야기 하면서 동양평화를 위해 침략자를 죽였다고 대의를 강조하였다. 일제는 사법재판을 가장한 안중근 살인을 단행한다. 곧 국제적 시선을 의식한 탓이다. 안중근은 일제의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항소하지 않았다. “큰일을 하였으니 비겁하게 항소하지 마라”는 어머니의 편지와 함께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다”는 자유의지에 따랐기 때문이다. 안중근이 죽은 날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합병을 서두르던 시기인 1910년 3월 26일이다. 안중근을 그대로 두면 조선병합이 어려지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들여다보자.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한중일이 1) 흩어지지 말고 서로 뜻을 모을 것, 2) 삼국이 공동화폐를 발행하여 사용할 것, 3) 공동언어 사용과 삼국의 통일된 군대를 편성할 것, 4) 선진공업을 수용하여 만주지역에 공동시장을 열 것 등을 가르치고 있다.

이 네 가지 주장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 맞아떨어지는 논리라고 생각된다. 만주지역은 중국이 국제법을 어기고 어부지리(漁父之利: 제2차 대전의 결과로 엉뚱하게 얻어진)로 영토주권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민족의 역사적 뿌리는 만주에 있다. 그리고 일본은 만주를 지배한 사실이 있다. 그래서 만주는 어디로 보아 한중일 삼국의 공동역사지역이다. 따라서 만주는 특정 국가가 영토주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한중일 공동역사지역으로 만들어 안중근이 주장한 바와 같이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중립지대’(지역 중립론)로 만들어야 한다. 삼국의 만주지역을 ‘공동경제구역화’하여 공동화폐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만들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꽃 피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의 모범지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안중근이 남긴 유묵(遺墨) 중에 “한탄스럽게도 동양이 평화시국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일본이 침략정책의 기조를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이라는 글귀를 다시 새겨본다. 각 나라의 권력자들이 국가지상주의와 민족주의에 매달려 전쟁음모와 폭력수단을 이용하여 나라사람들에 불안감을 조성하여 권력기반을 강화하려는 기만적 통치수단은 세계평화로 가는 이 시대사조에 맞지 않는다. 중국은 하루 빨리 만주에 대한 영토주권을 포기하고 한중일 삼국의 공동역사지역으로 내놓아야 하며, 일본은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군비확장과 일본군 재무장 기도를 중지해야 하며, 한반도의 남북 두 정권은 대결적 태도를 버리고 만주지역에 대한 공동역사. 공동경제 건설에 함께 적극 노력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세계 경찰국을 자칭하는 미국 또한 중국과 대결구도 조성음모에만 매달리지 말고 만주지역의 ‘공동역사지역화’와 ‘평화중립지역화’를 통한 동북아시아 평화지역 건설에 노력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2013. 3.26, 황보윤식)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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