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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전미혜작가 단상

살충의 빌미

by anarchopists 2019. 10.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7/08/29 06:37]에 발행한 글입니다.


살충의 빌미

글쓴이의 집은 아파트다. 얼마 전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내일 오전 9시부터 수목소독을 실시하므로 저층 거주자는 베란다 창문을 닫아주고
애완동물 산책과 주차장이나 배드민턴장에 음식물 건조(고추)를 금해 주십시오.”

 
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감나무며 자두, 대추나무 등속(等屬)의 유실수와 다양한 꽃나무들이 계절마다 골고루 피어나도록 잘 조경(造景)되어 있다. 가을이면 제법 탐스럽게 달린 감과 빨갛게 익어가는 대추들이 여간 예쁜 게 아니다. 하지만, 화단 유실수에 달린 열매들은 관상용 화초처럼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따먹는 사람이 없다. 공공의식 때문에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봄부터 수목(樹木)소독이란 명분으로 무시로 소독약을 살포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날벌레마저 유실수에 날아들지 않는다. 아파트 주민들은 늘 이런 살충제 치는 모습을 보아왔기에 화단 안에서 자란 열매를 먹거리로 공감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파트 관리소는 수목에 벌레가 끼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만 알았지, 사람을 위한 환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이 나라 대부분 사람들이 살충은 알아도 환경과 사람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을 위한 환경이 무시되고 있는  ‘생태계 불균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일 세간에 화두가 되고 있는 살충제 계란(달걀) 보도를 보면서 시각적 만족감이 주는 청결을 쫓느라 사람들의 위치가 간두(竿頭)에 내몰렸음을 실감한다. 조류독감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닭들이 이제 계란으로 옮겨졌다. ‘살충제계란’으로 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작금의 상황은 당연히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런 사태는 앞으로도 빈번히 회자될 수밖에 없는 이기적 문명 진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닭이(닭에 붙어 사는 벌레)를 없애기 위하여 흔히 사용한다는 '비펜트린'은 미국환경보호청에서 진즉부터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리고 개나 고양이의 진드기 구제용으로 시판되고 있는 '피프로닐'은 WHO에서 맹독성 물질로 지정되어 닭 사용에는 금지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들 맹독성 약품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전 정권의 적폐로 볼 수밖에 없는 농피아(농림부 출신의 전관예우)들의 농간(弄奸)으로 이들 농약의 오남용을 눈감아 주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제껏 이 나라 보수정권의 무사안일한 조직과 행태에 기(氣)가 차지도 않는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닭을 비롯한 가축들이 더 이상 자연물이 아닌 밀실사육에 의한 공산품이 되어버렸다. 원래 닭의 자연수명은 이십오 년이지만, 대부분 육계가 삼십일에서 삼십삼일 이면 출하되는 실정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좁은 공간에서 밀실사육에 의한 대량생산구조라는 올무에 갇힌 돼지, 소, 닭들은 사육환경의 열악으로 질병에 걸리기 쉽다. 이 질병예방을 위해 항생제를 투여하고 빠른 시일에 성계(成鷄)/성돈(成豚)를 만들기 위해 성장호르몬도 먹인다. 곧 대량생산을 위한 공산품 공장에서 물건이 대량으로 나오듯 가축도 대량생산이 되는 셈이다. 질병에 걸리지 못하도록 가축들에 먹이는 항생제는 가축이 흡수하는 비율은 60%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40%는 변(便)으로 배출된다. 그리고 축사에 뿌리는 살충제들은 가축들이 먹고 이 역시 대변으로 배출한다. 조기 생산하듯 키워진 닭들이 사람 몸에 에너지원 역할을 하는 동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나마 육계는 삼십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주기로 회전하고 조금 더 넓고 깨끗한 환경에서 사육되는데, 산란계로 분류된 닭들의 실상은 다른 목숨을 담보로 연명하고 있다. 담보된 다른 목숨인 인간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존재인지 드러낸다.

산란계로 분류된 암탉들은 생후 15개월에서 24개월까지 A4용지 한 장 크기의 공간에서 알만 낳다가 죽는다.  이 닭들은 쉬지 않고 알을 낳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어서 병이 들어도 죽을 때까지 미친 듯이 알을 낳는다.  공중에 연결된 사료 급여기(給與機)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옆에 딸린 가느다란 파이프에서 나오는 물을 먹으면서 이십사 시간 내내 꺼지지 않는 백열등 아래에서 쉬지 않고 알만 낳는다. 날개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웅크린 채 지내느라 몸에는 닭이가 슬고 닭이를 제거하기 위한 약과 항생제를 무시로 투여해야 산란이 가능한 셈이다. 비정한 인간이 만들어낸 양계장 풍경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들은 자신의 헛헛함을 달래기 위하여 애완이라는 이름으로 동물들을 제 취향에 맞춰 길들인다. 게다가 약물로 초목을 통제하여 오로지 푸른 잔디만 키우는 골프장을 지천으로 만들어 놓고 자연 속에서 힐링을 누리겠다는 횡포까지 부린다.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 농산물이 보편화되면서 GMO 농산물의 유전자가 해충과 잡초로 전이되어 슈퍼 해충과 더욱 강력한 제초제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소비용을 들이기 위해 밀식공간과 비윤리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최대 이윤을 노리는 인간들. 그리고 다른 포유동물의 젖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빼내어먹는 유일무이의 종족들. 인간의 오만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살충(殺蟲)과 제초(除草)를 주장하는 대부분 사람들에 의하여 자연 순환/생태보존은 일회용 소모품 정도로 간주되는 현실이 더욱 가속도 달리고 있다. 우리가 향유하는 쾌적함이란 것이 기존 자연 상태를 파괴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면, 우주의 입장에서 볼 때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의 감각과 생활습성이 고장이 난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인간이 자본을 얻기 위하여 밀실 축산사업을 하지만 이제는 거꾸로 인간이 자본에 사육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생태계 파괴 및 지구 최대 오염원이면서 그 오염에서 파생된 각종 질병으로부터 무탈하기를 소원하는 우리네 이기심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으로 본다.(2017. 8.25. 종이공예작가 전미혜)
전미혜 시인은
전미혜 선생님은
광주에서 '종이사랑'이라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과 문화센타 등지에서 종이공예를 강의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편 시인이다. 탁월한 시상과 글맛으로 시를 쓰고 있으며, 빛고을에서 유명한 시인이다. (그는 '평등사회만들기' 운동가로 학연, 지연, 학력 등을 통한 연줄 사회를 배척한다. 하여 일체 그런 이력을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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