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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박태순 제3강] 함석헌- 지성소에소 만난 신비체험

by anarchopists 2020. 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5/12 09:01]에 발행한 글입니다.


지성소에 만난 신비체험

불교 언어에 “불립문자 일초직입 직지인심 견성오도”(不立文字 一超直入 直指人心 見性悟道)라는 표현이 있다.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대번에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성을 찾아내고 도를 깨우치도록 한다는 선문답 문자이다. 언어 기호체계는 표현의 한계와 불합리를 갖고 있으며 문자기록을 통한 진리의 전수 방식에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이고 보면 이심전심과 염화미소의 득도가 중요할밖에 없다.

불교만 아니라 노자ㆍ장자의 도가사상에도 언어불신론은 제기되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가도 비가도”(道可道 非可道)라는 말로 시작되고 끝을 맺는데, “도라고 말하면 이미 그것은 도가 아닌 것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공자의 ‘정명(正名)사상’도 기본적으로는 언어의 타락과 궤변가들의 공리공론 담론들에 대한 경고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19세기의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과 구조주의는 담론언어의 표층구조와 심층구조의 분석을 통해 언어는 인위적 구성의 기호체계인 것이지 진실의 표현수단 체계로서는 타당한 것이 아님을 논증한다.

‘시’(詩)라는 한자어를 파자하면 ‘말(言)의 사원〔 寺〕’이라는 뜻이 되지만, 함석헌은 ‘지성소’라는 지극히 성스러운 장소성에다가 언어의 사원을 예비하고 있다. 지성소에서 만나는 절대체험, 신비체험이 그로 하여금 시의 언어를 소환시키게 하는 것이다.

함석헌 시 언어들은 난해한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시어들의 입구와 출구가 폐쇄회로를 형성해놓고 있으니 대단히 난해한 문학성의 언어들이 된다. 감히 함부로 어정쩡하게 접근해볼 수 있는 시세계가 아니다.

함석헌의 시편들 중에서 일반인에게 가장 애송되는 작품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인데, 아무나 이런 시를 쓸 수는 없고 아무렇게나 이런 작품이 써지는 것일 수는 더더욱 없다.

온 세상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하는 구절을 반복하는 이 시는 대화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독백형 자문자답 방식의 작품으로 읽어보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 사람’이라는 3인칭의 인간형은 선지자이고 의인이고 인자(仁者)인 데 대하여, ‘그대’라는 2인칭은 그냥 속인(俗人)이고 평범한 생활인이다. 시의 화자(話者)인 1인칭은 작품의 표면 아니라 내면에서 중재자 역할만 맡는다. 3인칭의 현인과 2인칭의 속인을 일일이 대비해가며 ‘가졌는가’ 하는 질문을 반복하는데, 실은 추궁이고 다짐이다. 그의 다른 시, 「나는 빈 들에 외치는 소리」를 읽는다.

나는 빈 들에 외치는 사나운 소리/살갗 찢는 아픈 소리
나와 어울려 부르는 너희 기도 품고/무한으로 갔다 내 다시 돌아오는 때면
그때는 이 나 소리도 없이/고요한 빛으로 오리라
.

(박태순, 내일 계속)


이글은 지난 4월 1일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한
<함석헌 탄신 108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다시 싣습니다.

박태순님은 소설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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