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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박태순 제1강] 시인 함석헌, 사상가 함석헌

by anarchopists 2020. 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5/09 09:33]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인 함석헌, 사상가 함석헌

들사람 얼의 문학정신이 왜 중요한가

한국 국문학계를 비롯한 문학전문가들이 문필가로서의 함석헌, 아름답게 우리말과 글을 다듬고 사용한 시인으로서의 함석헌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주기를 요청하려는 것이다.

「함석헌의 종교시에 나타난 하나님 이해」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경재 교수는 한국 국문학계를 비롯한 문학전문가들의 게으름을 나무라고 있다. 문인의 처지에서 살피면 함석헌은 대사상가이기에 앞서 분명코 대시인이자 대산문가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함석헌은 문단적인 문학인은 아니었다. 소설을 창작하기도 했던 단재 신채호, 불교문학인의 차원을 뛰어넘었던 만해 한용운, 또는 중앙문단에는 관심을 두지도 않았던 윤동주, 문익환의 생애가 그러하였듯이, 그는 자신의 시문학을 일구기는 했어도 그것이 문단적인 문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 자신이야 전혀 전업문학인의 길을 택하려 하지 않았을지라도 실제적으로 그는 시를 쓰고 시집을 펴냈으며 주옥같은 산문들에다가 방대한 저술업을 이룩해냈다. 환언하면 그는 남으로부터 문학인의 인정을 받느냐 하는 데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스스로 시인이었으며, 그의 문필업 전체가 실은 시인의 언어와 문장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한국문학인은 협의의 범주와 광의의 범주로 규정해볼 수 있다. 좁은 쪽의 문인은 일단 문단이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활동하는 자들을 가리키지만, 넓은 쪽의 문인은 사회적 공간과는 상관없이 그 자신의 실존적 공간에서 절실한 진정성에 따라 실천적으로 문학작품을 생산해내는 이들을 포괄한다.

한국문학은 전자의 사회적 공간의 문인만 아니라 오히려 후자의 실존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문필가들의 문학작품 성과들을 수렴해야 하고, 이를 통해 한국문학 자체를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해야 한다. 한국문학은 함석헌 문학을 접수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김경재 교수의 지적처럼 본격적으로 연구해야만 한다. 한국문학 정중앙에 함석헌 문학을 자리매김해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오늘의 한국 문단 문학은 참으로 초라하고 나약하고 어느 면에서는 변질되고 타락된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함석헌 문학정신을 통해 문단 문학 일반은 호되게 꾸중을 들어야 하고 야단을 맞아야 한다. 함석헌의 ‘들사람 얼’, 곧 암혈과 황야의 야인정신(野人精神)이야말로 정당한 한국문학정신이 되어야 한다. 문단문학은 이러한 ‘들사람 얼 차리기’의 채찍을 받아야 한다.

특히 시문학 중에서도 서정시의 경우에는 시를 쓰는 사람 자신의 절절한 진실 탐구의 몸부림이 있어야 하고, 정당한 세계정신(weltgeist)을 갖기 위해 두 눈을 무섭게 부릅떠야 하고 우주적 사색에 도달하기 위해 가슴에 불을 질러야만 한다. 이러한 내면 탐구와 외면 통찰 그리고 진리 추궁에서 함석헌의 시정신은 참으로 치열하였던 것임을 바로 그의 시문학이 여실하게 보여준다.

함석헌 시문학을 새롭게 살펴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창작시편들이야말로 방대하기 그지없는 함석헌 사상체계로 들어가는 들머리 입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시편들은 참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고뇌와 고통의 종교 각성시라고 우선 살필 수 있지만, 그러함에도 그 차원에서만 논의될 수는 없다.

함석헌의 생애는 시인-종교인-사상가의 각 단계를 참으로 험난하게 전개시키고, 자신의 고난사상 변증법으로 자신을 변혁시켜 초월해나간 것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 그의 시문학은 실존인 함석헌과 종교인 함석헌 사이에 놓인 시대적 암울함, 사회적 방황, 인간적 고뇌, 종교적 시련과 갈등, 하나님 영접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감동적으로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살피게 된다.

그런데 21세기의 오늘날 우리가 논의하는 함석헌은 그의 씨알사상이 20세기 한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사유체계의 한 봉우리라는 것에 관한 것인 만큼 그의 시문학도 이러한 열린 지평에서, 그리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살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참인간-참사회-참세계 찾기의 대장정을 어떻게 구현해나갔는지 살펴보고자 할 때에야 바로 그의 창작 시편들이 실마리를 풀어주게 한다는 점이다.

함석헌 사상의 핵심인 씨알사상, 고난사상의 고갱이는 그의 시문학 속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의 수상록ㆍ회고록ㆍ사상서ㆍ시사평론 등은 그저 미문, 명문인 것이 아니라, 그의 시문학의 확장이며 산문 평론으로 써놓은 거대담론의 시어들이라 살피게 된다.

함석헌 사상대계의 씨알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그의 시문학이었다. 시인 함석헌이야말로 종교인 함석헌, 사상가 함석헌의 씨알이었다.(박태순, 내일 계속)

오늘 부터 연재되는 글은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한
함석헌탄신 108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다시 싣습니다.

박태순 선생님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소설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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