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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특별기고

[박석률] 이명박 정부는 평화통일이 두려운가

by anarchopists 2019. 12.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6/28 06:11]에 발행한 글입니다.


6.25에서 6.15가 없어진
6.25, 역지사지하라!

언제든지 전쟁의 참화에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분단의 종식을 다짐한 것이 6.25 반세기만의 일이었다. 6.15를 무위로 돌리고 대결과 적대의 콘크리트 벽을 더욱 높이 쌓아 올리는 데는 거의 잠깐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년 체제를 존중하자는 합의서의 정신은 과거 냉전 시대의 평화공존 이래 기본적인 것이다.

무력으로 대결하지 않고 평화적 공존, 평화적 경쟁으로 나가도 분쟁의 해소에는 이길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자신감이 전제돼 있다
.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이 제창되고 강조되어 정립된 것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의 일이다.

1922년 1차 대전 후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의 국제회의에서는 분쟁의 해결에서 평화적 해결의 원칙을 합의하였다. 어느 나라든지 분쟁 중에 있는데 먼저 대결을 획책하고 무력으로 위협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를 기도할 때 “침략자”로 규정된다고 각국은 확인하였다.

두 번째의 세계전쟁으로 창립된 유엔은 이 원칙을 재확인 하고 정립하는 데 각국은 합의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특히 이 원칙에 맞게 세계의 분쟁 지역 문제를 풀어 가는 기구이다. 국제법상으로는 유엔에 남북이 동시에 가입하기 위해서 유엔 헌장에 규정된 평화애호국가라는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했고, 각국은 유엔의 가입국을 무력시위로 위협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준수함으로써 한반도 지역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세계정세의 변화 추이에 맞춰 남북 대결의 종식을 당사자 간에 확인하고 선언한 것이 6.15선언이다. 평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하기에 앞서 남북은 무력의 행사에 호소하지 않고 대결의 벽을 높이는 상호 비방, 중상을 그만두기로 다짐함으로써 적어도 이 땅에서 3백만에 달하는 희생을 낳았던 전쟁의 재참화는 종식시켰다는 이정표에 가까스로 도달한 것이었다.

일상적으로 6.15의 전쟁 종식의 다짐과 평화적 통일에의 이정표가 짓밟히고 나서 이제는 서로가 총부리를 겨누는 일촉즉발의 전쟁 전야에 상시적으로 시달려야 하는 급변 사태 속에 처해 있다. 처음부터(始初) 2008년 여름, 금강산 관광 중단이란 사태의 대처 방식에 어느 쪽인가 미필적 고의가 있지 않고서야 그 사건 하나로 인적, 물적 남북 교류관계 전반을 경색시키는 계기로 모아 간 것은 무언가 석연치 않다.

사태의 재발 방지와 진상의 조사가 아무리 강조된다고 지나칠 것은 없다. 그러나 말로만 시비를 늘어놓으며 거듭 발목잡기 식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보다 효과적인 대처 방식이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에 나선 사람들의 신변 안전을 우려한다면 호텔 각 층마다 야간 교대 근무자를 강화해 불시에 호텔 밖으로 혼자서 나가려는 투숙자를 관리하고 안내하는 이쪽 나름의 방지책도 얼마든지 가능할 터이었다.

네 쪽이 사람을 사살했으니 그 책임을 따져 평생 교류하지 말자로 회귀한다면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휴전 상태의 특수성을 감내하고 이를 타개해 나갈 의지가 결여된 것이다. 집권층이 아무리 바뀌어도 헌법정신의 구현에는 한결 같아야 함에 아무도 이의가 없고 철썩 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정신이 녹슨 철갑 속에 갇혀 맹인의 증상을 드러내고 있다면 경고등을 높이 달고 들어 올려야 한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의무는 헌법상의 책무이다. 서로가 불신과 대결의 벽만을 높이 쌓아 올리며 해마다 군사훈련 시위만 강화해서 상대를 긴장 고조시키는 데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터에, 중단했던 비방을 때도 없이 되풀이 하고 시대착오적 봉쇄 정책으로만 일관해오면 통독 이전의 어느 시기에도 단 한번도 인도적 지원을 단절해 본 적 없다는 독일인의 지적을 들을 수밖에 없다.

네 눈 속의 티끌을 찾아내 굴복시키려 하지 말고 내 눈 속의 대들보 먼저 뽑아 참회할 줄 알라“는 성경 말씀을 주일 마다 듣고 있는 사람 수만 세어 보더라도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몇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교회당 안에 있을 때만 입으로 그치는 면피용의 고백으로 진실해질 수는 없다.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과의 결탁을 통해서 거의 무소불위의 부패와 부정, 불신세계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속에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바마도 제재(制裁)품목만 늘려가며 압박을 더 강하게 해날 생각으로, 한국정부가 미국보다 한발 먼저 압박을 지속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다.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은 구성원 내 스스로의 쇄신, 자강, 자립정신에서 만이 가능하다. 상대방만 불신의 대상으로 규정해 놓고 불신의 벽만 더 높혀 가고 있는 내 자신의 처사를 역지사지 않는다면 인류는 무슨 방법으로 지속 가능 사회를 꿈꿀 수 있을 것인가?(2011. 6.27, 박석률)

박석률 선생님은

▲ 박석률님
박석률 선생님은 74년 민청학련사건에 관련되어 옥살이를 했다. 석방 이후에는 한국진보연대를 통한 민주화운동,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공동대표 등을 통한 민족통일운동을 계속해 오다가 지금은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사월혁명회, 평화와 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에서 민족, 민주, 통일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생명평화경제만민포럼" 대표이다. 저서로는 한반도의 당면 과제인 북핵문제와 관련해 펴낸 <자주와 평화, 개혁으로 일어서는 땅>(백산서당, 2003)과 <자주와 평화 누가 위협하는가> (풀무 2002), <씨알의 희망과 분노>(공저, 동연, 2012)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기고 글 내용 중 사진은 노컷뉴스와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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