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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특별기고

[박석률] 다시 맞는 6.10항쟁에 부쳐

by anarchopists 2019. 12. 2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6/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다시 맞는 6.10민주항쟁-그날의 갈림길,
무소불위의 생명경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잘못된 MB 경제로 무너진 ‘서민경제’와 ‘첨예화된 양극화’의 실상은 참담하다. 우리 주위에 일자리 없는 ‘사실상 실업자’는 통계작성 이후 최악인 425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 숫자도 800만 명을 훌쩍 넘어 900만을 육박하고 있다. MB경제의 출범 시 임기 내 300만 명(한해 60만명)의 일자리 창출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선거용 구호였음이 분명하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대폭 물갈이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각 현장별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아이디어와 실행 노력이 엿보인다는 보도를 접하는 정도가 상당한 위안을 주고 있다.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지방자치제에서 무언의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기에 덜 삭막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기 예산총액에서 이미 설정된 항목의 지출예산을 제외하고 나서 일자리 창출에 쓸 수 있는 예산 액수를 들여다보면, 절대부족에 안간 힘을 쓰고 실정이다.

여기서 얻어진 경험과 노하우의 교환과 집적, 소통의 계기 확대를 통해서 무너진 ‘서민경제’의 출구를 찾으려는 것이 그나마 손에 쥘 수 있는, 남아 있는 방도가 아닐까 성원하고 싶다. 이 시대의 많은 젊은 인재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이런 노력이 전국적 차원에서 결집되기엔 MB경제시스템자체가 역행구조이기 때문에 고뇌의 자리만 깊어간다. 수출대기업은 고환율정책으로 편안하게 벌어들인 외화를 곳간에 쌓아 놓고도 투자할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대다수 서민에게는 30대 기업 평균유보율이 3000%에 이른다고 하면 실감이 안 갈 것 같다. 그럼에도 부자감세만은 그대로 유지되어야한다는 MB경제 수문장들이 임기 마지막에 한탕주의를 한 번 더 한답시고 불구화의 화가 어디까지 이를런지 서숨치 않고 있는데, 옛말에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말은 딱 이를 두고 할 수 있는 말 같다.

투자보다는 투기를 노리는 자본이 창궐하여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당장 숨 넘어갈 듯이 신자유주의 극복과 대안을 찾으려는 목소리가 세계를 진동시켰으나, 한 숨 돌린 신자유주의 투기자본의 그늘에서 메아리로만 남아 있다고 할까? MB경제의 끝없는 질주는 헤어날 수 없는 연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직전의 마지막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금융위원장이 규제되어왔던 헤지펀드의 활동을 위해 모든 빗장을 다 풀겠다고 한다. 어찌 보면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앞에서 한국경제가 직격탄을 맞아 침몰하지 않은 것은 이 통제불능의 헤지펀드가 한국 금융시장에 무한대로 들어올 수 없는 규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상최대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면서 무엇 때문에 규제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파생상품 덩어리와 연계돼 있는 헤지펀드 도입에 무한의 자유를 주자고 안달을 할까?

감히 어느 금융위원장도 하지 못했던 소리를 어느 단위 정책 심의기구에서 논의했다고, 국회의 논의와 일반 공청회 한번 없이 경제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일까? 규제가 있어서 약체의 경제 주체가 보호받는다는 것은 어느 시장경제에서도 상식이다. 마음대로 투기자본에 국토를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 설정해 놓았던 토지거래허가구역이 MB경제하에서 최근 몇 달 사이에 남아있던 거의 절반의 구역마저 해제되어, 여태까지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지정을 유지해왔던 90%의 지역이 이미 규제의 그림자도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소수 투기자본을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특혜를 주는 이 MB경제시스템 하에서 우리에게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영역조차 사라지고 만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경제시스템이 망가지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구조에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6.10민주항쟁일을 다시 맞이하고 있다.
항쟁은 사회정치구조에서 겹쌓인 사고(事故)를 본체만체 방치하는 과정에서 잉태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주장하는데 현대자동차도, 삼성전자도 시늉 내려고 한다는 모양이다. 현대자동차 사측과 현대차정규직노조는 공동으로 한 해 80-90억씩을 모아 ‘불우이웃 돕기’에 썼다고 한다. 동반성장에 나섰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런 시혜적 봉사활동에 얼굴 내미는 것으론 시스템이 굴러갈 수 없다.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 하는데 1500억 상당이 들어가는 것은 외면하고 제 밥그릇 챙기는 면피용 얼굴 뒤에 어디에선가 사고사(事故死), 의문의 자살이 움틀거리고 있는데 일반 여론은 너무 무관심 상태에서 방치해 왔다. 주야간 할 것 없이 강행되는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스러진 죽음만도 벌써 열 몇 명이라는 기사가 눈을 아프게 한다.

쌍용자동차 현장에서 내쫓겨 목숨을 끊은 노동자도 벌써 열 몇 명에 이른다고 전해 온다. 도처에 사람 잡는 선무당들이 부끄럼도 없이 설치며 생명을 경시하고 있다. 대학등록금액이 세계최고 2위에 이르렀다면 그 자체를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지 등록금에 생을 뺏겨 들고 있는 대학생들의 촛불을 꺾어버리고 연행으로 대할 줄 밖에 모르는 자들을 사람 잡는 선무당 아니면 무어라고 할 것인가?

생명이 경시되는 사회에서 지속가능 발전의 지표는 무엇에 기준을 두고 하는 말인가? 전문가들의 현학이 세상의 눈을 더 어지럽히고 있다. 부산의 한진중공업 현장에서는 청춘의 나이에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 되어 이제 52세의 여성노동자, <소금꽃>의 저자로 더 알려진 김진숙 씨가 생사를 초월한 농성을 벌여왔다.

8년 전 지부장이 올라가 100여일에 목을 매었던 그 고공에 매달린 85호 크레인에서 내일 모레면 150일을 맞이한다고 부산 한진중공업 현장에 하루만이라도 격려차 희망버스로 내려가자는 사발통문이 왔다.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에게 납득할만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한 채 강행된 것은 분명하다.

해외, 필리핀의 수빅만에 수조 원의 공장을 새로 짓고 지난해 3000여명 해고, 금년에만도 몇 백 명의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한 그 다음 날 대주주는 170여 억의 배당금을 받아가면서, 함께 일구어 온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대책 없이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을 이 사회 어느 정치세력도 감히 해결의 앞장에 나서서 대변하질 못하고 있다. 하기는 정규직화해 주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깡그리 무시되는 마당이니, 이것은 18c-19c 미국의 서부변방 점령사에서나 볼 뻔했던 무법적 처사가 아닌가? 그럼에도 시스템은 전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6.10민주항쟁을 잉태했던 사고사(事故死)와 의문사(疑問死), 조작사(造作事)를 다투던 그 길목이 항쟁의 길에 이르렀다는 새삼 아로새겨야 할 그 순간의 교훈을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으로 체화(體化)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기념할 날로서 6.10항쟁일이 아니라, 반성하고 성찰하고 나락에 떨어지기 일보 전의 현실에 대한 직시와 결단을 마다 않는 사회적 통합의 자리가 절실하다, 경제와 사회 시스템 일부가 아니라 전부에 대한 디자인이 절실하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외치고자 한다! (2011. 6.10, 박석률)

박석률 선생님은

▲ 박석률님
박석률 선생님은 74년 민청학련사건에 관련되어 옥살이를 했다. 석방 이후에는 한국진보연대를 통한 민주화운동,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공동대표 등을 통한 민족통일운동을 계속해 오다가 지금은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사월혁명회, 평화와 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에서 민족, 민주, 통일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생명평화경제만민포럼" 대표이다. 저서로는 한반도의 당면 과제인 북핵문제와 관련해 펴낸 <자주와 평화, 개혁으로 일어서는 땅>(백산서당, 2003)과 <자주와 평화 누가 위협하는가> (풀무 2002), <씨알의 희망과 분노>(공저, 동연, 2012)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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