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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민주주의와 진화하는 독재

by anarchopists 2019. 11.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9/18 05:56]에 발행한 글입니다.


민주주의와 진화하는 독재

언어학자 촘스키(Avram Noam Chomsky, 1928 ~ )가 지적한 말 중에 ‘민간전제정치’(民間專制政治)라는 말이 있다. 민간전제정치라는 용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국가자본주의사회에서 민간기업 공동체 안에는 두 가지로 실존하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상층부 지배세력들로 구성된 공동체이고 다른 하나는 하층부 피지배세력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곧, 민간기업 공동체의 중심은 자본권력층으로 구성된 상층부공동체라는 거다. 그래서 기업이나 회사의 모든 명령이나, 정책은 상층부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배권력에서 나온다고 한다. 즉 상층부공동체가 하층부공동체를 상명하달(上命下達)식으로 지배한다는 거다.(촘스키/이정아, 《촘스키의 아나키즘》, 해토, 2007, 192~193쪽)

이 말을 국가정치에 대입해 보자. 국가조직도 기업구조와 같다는 생각이다.
즉, 정치권력을 지향하는 자들은 그렇듯 하게 “민주주의의 꽃”으로 미화된 선거(選擧)를 이용하여 국가권력기구에 들어가 상층부공동체를 이루고 '권력적 지배구조'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만든다. 그리고 나라사람들로 구성된 하층부공동체를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지배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상층부공동체를 구성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민주국가가 사용하는 ‘민주적’이라는 말(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은 허구적이라는 생각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민주주의국가들에서는 어떤 특정권력의 독재를 막기 위해 삼권분립(三權分立)의 제도를 둔다. 그러나 실제로는 삼권분립은 허명이다. 왜 그런지를 보자.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발생한 이래, 인구가 증가되면서 나라사람들의 직접정치가 불가능해지자 후대 사람들은 정당정치와 함께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대안으로 들고 나왔다.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는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이 갖는 공통된 정치구조이다. 그러나 정당정치 하의 대의민주주의는 또 하나의 귀족계급을 생산해내는 제도로 변질된 지 오래다. 어떤 사람이 정당의 추천을 받아 선거를 통해 정치적 제도권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정치권력과 함께 상층부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국가에서 삼권분립은 헛말이다. 같은 정당에서 행정부를 지배하는 통령(統領, 오늘날은 대통령)이 나오고 입법부를 구성하는 의원이 나오면, 그게 삼권분립이 될 수 있을까.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희의원들은 헌법에서 보장해 주는 의원특권을 가지고 행정부와 부화뇌동하며 상층부공동체에 들어가 그 속에서 행복한 생활을 그저 즐기며 거수기(擧手機)역할밖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재판관들은 행정부에서 장악하고 있는 로스쿨과 사법시험을 거쳐야 한다. 일단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이 역시 정치권력과 함께 상층부공동체에 진입한다. 그리고 행정부에서 장악하고 있는 법관 임명과 승진이라는 미끼를 물고 상층부공동체가 주는 달콤한 생활을 즐긴다. 이러한 상층부공동체가 주는 달콤하고 행복한 생활 때문에 사법부의 법관과 입법부의 의원들은 행정부의 독재권력에 교묘하게 기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니, 3권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모든 권력은 행정부의 ‘개인적 권력’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3권이 이심전심으로 상호 기여하면서 형성된 ‘개인적 권력’은 결코 하층부공동체 구성원들과 상의하거나 협의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너울을 쓰고 ‘진화된 양태’의 개인적 독재가 생산된다. 이러한 민주주의국가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민주적인 절차를 위장한 ‘개인적 권력’이 탄생하게 될 수밖에 없다.

촘스키가 지적한 “정계에서 입법권과 행정권 사법권이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하나의 지배적인 권력을 형성한다. 개인권력이 ‘성장하고 팽창함’에 따라 지배권력은 이전보다 정치적으로 더 막강하고 정치의식이 높은 공동체세력으로 변형된다.”(앞의 책,192쪽)는 이 말이 오늘날 국가자본주의사회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본다. 곧 말로는 민주주의국가이지만 실제는 전체주의국가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이게 오늘날 민주주의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독재의 진화’가 가능한 이유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존재바탕인 헌법에서도 국가의 권력은 ‘국민’(國民)에게서 나온다고 했다(위와 같음) 헌법조문 그대로라면, 국민은 국가에 ‘우선’하는 상위존재다. 때문에 국가보다 국민이 우선이어야 하고 국민은 ‘절대자유’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국민’(國民)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 국민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이라는 말은 함석헌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 전체주의 독재정치를 민중 위에 덧씌우려고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고 국민이라는 말을 썼다. 그때의 국민이라는 말의 뜻은 전제왕정시대의 백성개념이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18세기 국민이라는 용어가 근대국가와 함께 민족주의 사조가 등장할 때 생성된다. 즉 민족공동체를 기초로 성립되는 절대왕정의 피지배층으로써 ‘국민’이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19세기 제국주의시대로 들어오면서 제국주의에 노역(奴役)하는 ‘국민’이 되었고, 곧이어 식민지나라에도 유입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 일제식민지시대, 만주사변(1931. 9.18) 이후 대륙(중국)침략을 위한 한국병참기지화 정책을 펴면서 ‘국민’이라는 말이 정책적으로 나오게 된다. 일제는 대륙침략을 지원할 '노예화된 문명인'이 필요했다. 이의 필요에서 식민지한국에 황국신민화정책을 쓴다. 이의 일환으로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한다.(제4차 조선교육령, 1943. 4.1) 다시 말하면, 일제가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한 것은, 그 목적이 한국인을 황국신민(皇國臣民; 皇國의 道에 따른 국민연성)으로 만들자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황국(皇國)의 국(國)과 신민(臣民)의 민(民)을 따서 ‘황국신민을 만드는 학교’라는 뜻에서 ‘국민학교’라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사악하고 간교한 정책에 따라, 일본어를 ‘국어’(國語)로, 일본역사는 ‘국사’(國史)가 되었다. 식민지한국인은 일제의 ‘국민’(國民)이 되었다. 따라서 일제시대 나온 ‘국민’이란 개념은 일제에 충성하는, 황국신민이라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해방된 대한민국 헌법에서 ‘국민’, 그리고 학생들 교과서에서는 ‘국어’, ‘국사’라는 용어를 그대로 써왔다. 즉, 이 나라 교과서와 헌법에서 쓰고 있는 ‘국민’, ‘국어’, ‘국사’라는 용어는 제국주의ㆍ침략주의ㆍ독재주의의 개념이 들어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아마도 여전히 대한민국 상층부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친일적 친미관료들이 시대가 바꾼 오늘날을 대변하여 이 나라 사람들을 일본 대신 미국에 충성하는 한국인을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 "생각과 실천" 1권, 한길사, 2011, 231쪽 참조)

따라서 ‘민주주의’(民主主義)라는 말에서 ‘민’(民)을 ‘국민’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시 말하면 헌법에서 ‘민’이 주인이라고 해놓고, 권력자들이 상층부공동체(3권이 소속한)와 하층부공동체(나라사람으로 구성되는)로 구분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민의 절대자유를 구속하고, 말할 자유를 빼앗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박탈하고,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한다면 헌법상의 민은 결코 민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독재의 진화를 낳게 하는 구조의 틀은 선거라는 제도와 정당정치이다. 이 선거라는 제도와 정당정치를 타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국가에서 ‘개인적 독재’는 꾸준히 진화할 것이며, 나라사람은 '개인적 독재'의 하수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층부공동체들이 높이 치어들고 있는 기치(旗幟), 곧 국가지상주의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함석헌의 말 따라, 국가주의, 국가지상주의, 정부우월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것이 독재다. 상층부공동체가 정부우월주의, 국가지상주의를 스스로 타파할 때 진정한 삼권분립이 존재하는 참 민주주의국가가 될 수 있다. 아직도 이 나라에 제국주의, 독재주의적 음모가 담긴 “국가반란음모죄”, “국가변란죄”, “국가변란음모죄”, “국가내란음모죄”등 용어가 꿈틀된다면 이것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 수구적 ‘개인독재’가 다시 올 거라는 예고로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제는 이 나라가 대한민국 헌법대로 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3. 9.11 새벽, 취래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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