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9/21 07:03]에 발행한 글입니다.
오늘은 글쓴이의 삶과 연관시켜 세상이야기를 말해 보고자 한다. 글쓴이는 2002년부터 3도4촌, 어떤 때는 4도3촌의 이중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2011년부터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완전히 농촌마을과 가까운 산속시골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시골사람이 되었다. 3년째 되는 요즈음 ‘사람’이란 존재에 대하여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완전은 아니지만 10여 년 전부터 시골생활을 하였기에 시골사람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토착시골사람의 마음을 얻기가 어렵다. 이들과 참다운 인간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역대 정부의 농촌 자본화정책으로 시골사람들이 자본주의에 겉멋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서 전통적인 농심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농촌사람들도 이제는 도시사람들처럼 모든 관계를 물질에 의해 판단한다. 돈의 크기로 사람을 대한다.
사람은 물질적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요즈음 농민들도 사람을 판단하되 자본크기로 판단한다. 과원을 가지고 농사짓고 있든 작은 밭떼기를 가지고 농사를 짓던, 농사만 지으면 죄다 ‘사장’(社長)님이다. 요즈음 농촌은 사장이 아닌 사람이 없다. 권사장, 이사장, 박사장, 김사장 등.... 죄다 사장님이다. 이 때문인지, 도시에서 온 귀농인이나 귀촌인들 중에 자본이 있는 듯한 사람이 있으면 이를 이용가치로 본다. 그리고 큰돈이 있다 싶으면, 그 사람에게는 상대(上待)와 협조가 있고, 돈이 없다싶은 귀농인에게는 하대(下待)한다. 사람은 누구나 결코 아무에게도 이용대상이 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요즈음 돈이 없으면 시골사람들과 사귐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농민들의 생각은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이다.
1982년 일이다. 최근 이명박 시절 정치적으로 잘 나가던 이 아무개 국회의원이 있다. 모처에서 이와 씨름도 하고 동네야구도 하면서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그리고 토론도 하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사회변혁방법론’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때 그 의원은 "위로부터 개혁"을 주장했고, ‘우리’는 "밑으로부터 개혁"(요즈음 이 나라의 수구권력과 그의 추종자 및 지지자[특히 무지한 노인들]들은 '아래로부터 개혁'을 주장하면 빨갱이 취급한다.)을 주장했다. 결국 그 의원은 위로부터 개혁을 하겠다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한국정치의 더러운 똥물에 오염되어 우리가 볼 때 불쌍하고 타락한 정치인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중 대부분은 아직도 밑으로부터 사회변혁을 애쓰거나 일상에서 스스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글쓴이도 농촌에 들어와 농사를 지으면서 광자(狂者)의 길을 가고 있다. 농촌에 막 들어와 밑으로부터 사회개혁을 하기 위해 '지역자치적 공동체'를 구상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환생산자협동조합운동(環生産者協同組合運動)을 준비하고 있다.
우라와 함께 지낸 그 의원 말고 또 다른 의원이 있다. 최근에 나를 영어(囹圄)의 몸이 되게 했던 모당 대표를 지냈던 이00 의원이다. 그가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다가는 집권당 품에 안겼다. 참 정치판이라는 게 이런가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인간 삶의 양태를 사과열매에 비교해 보게 되었다.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본다. 세상은 사과열매와 같다는 생각이다. 농약 듬뿍 쳐서 때깔 좋고 모양 좋게 만들어 출하하면 비싼 값을 쳐주고, 생명농법으로 가는 길목에서 정직(正直: 비료 안치고, 풀 죽이는 약 안치고, 때깔 나는 약 안치고, 과일 크게 하는 약 안치고, 화학농약도 초기살포만 하고 나머지는 EM미생물로 만 농사를 지음)하게 농사지은 사과는 소비자들에게 싼값 취급을 당한다. 때깔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깔 좋은 사과는 사람 몸에 좋은 성분(효능)도 적고, 맛도 없다. 그렇지만 때깔이 안 나지만 친환경적으로 정직하게 농사지어 나온 사과열매는 사람 몸에 좋은 성분도 듬뿍하고 맛도 있다. 자본주의 세상이 다 그렇겠지만 이 나라 세상 돌아가는 원칙들이 사과열매와 같다는 생각이다.
앞에 예를 든 이00 의원도 그렇지만, 뒤에 든 이00의원은 농약덩어리로 범벅이 된 인간이다. 그런 인간을 받아주는 정당은 어떤가, 그런 부류들이 아닐까. 이 세상은 사람들이 죄다 꼼수를 부리고, 트릭을 부리고, 잔꾀를 쓰고, 통박제고, 그렇게 살아가야 잘 사는 세상인가보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글쓴이는 조금도 남을 해(害)하는, 남보다 내 이익과 욕심을 앞세우는, 그리고 나한테 유리하게 하기 위해 꼼수도, 잔꾀도, 통박도, 속임수도, 기만도, 트릭(trick; 詭計)도 부려보지를 않았다. 남을 비양 거리는 말조차 하지를 않았다. 남보다 지적(知的)으로, 언변(言辯)으로, 사고적(思考的)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를 않았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속을 다 터놓고, 남에게 보이며 살아왔다. 남들은 자기 속을 감추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늘 내 쪽이 손해를 보는 그런 계산을 해왔다. 그래서 화려하게 살지를 않았다. 남보다 뛰어나게 살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주변에 같이 지내던 사람이 정치판에 나가 득세를 하면 그와 소식을 끊었다. 나와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때깔 좋은 사과가 되기 싫어서 이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내가 알고 지내던 신부님이 주교가 되거나 유명하게 되면 그 신부와 연락을 끊는다. 유명세를 타는 신부는 때깔 좋은 사과열매처럼 되기 싶다는 생각이다. 신앙생활을 가장하여 사업적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성당을 들락거리지 않는다. 내 행실이 혹 남의 기준에서 이중성으로 비칠까봐 성호도 긋지 않는다. 성당에 안 나가는 사람들에게 ‘냉담자’(冷淡者)라는 중세봉건적 용어(냉담자라는 말은 중세 유럽가톨릭이 주민들을 통제하기 수단으로 사용했던 용어다. 이단자를 막고 이단자를 왕따 시키는 용어였다)를 쓰는 것을 나는 거부한다. 사회운동을 할 때도 단체를 만들어 초대 회장이나 이사장을 한 다음 2대 자리는 후임에게 양보하고 나는 평회원으로 남아 그를 도왔다. 그리고 이제는 도시생활을 청산(아직은 사람관계가 있어서 완전청산이 아니지만)하고 시골에 가까운 산속에 들어와 도인(道人)의 길을 가고자 광자생활(狂者生活)을 하려고 노력한다. 글쓴이와 같이 착한 사람(善人)의 길을 가고자 광자노릇 하는 놈은 싼값 취급 받는 세상이고, 무슨 정치권력과 자본권력과 종교권력을 가진 자들은 비싼 값으로 존경 받는 사회다. 농약으로 범벅이 된 사과열매는 비싼 값으로 잘 팔려 나가고,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지어 나온 사과열매는 싼값으로 천대 당한다. 이게 세상원리일까.(2013. 9. 8, 취래원농부)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때깔 좋은 사과가 잘 팔리는 세상,
그와 같은 사람
그와 같은 사람
오늘은 글쓴이의 삶과 연관시켜 세상이야기를 말해 보고자 한다. 글쓴이는 2002년부터 3도4촌, 어떤 때는 4도3촌의 이중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2011년부터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완전히 농촌마을과 가까운 산속시골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시골사람이 되었다. 3년째 되는 요즈음 ‘사람’이란 존재에 대하여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완전은 아니지만 10여 년 전부터 시골생활을 하였기에 시골사람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토착시골사람의 마음을 얻기가 어렵다. 이들과 참다운 인간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역대 정부의 농촌 자본화정책으로 시골사람들이 자본주의에 겉멋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서 전통적인 농심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농촌사람들도 이제는 도시사람들처럼 모든 관계를 물질에 의해 판단한다. 돈의 크기로 사람을 대한다.
1982년 일이다. 최근 이명박 시절 정치적으로 잘 나가던 이 아무개 국회의원이 있다. 모처에서 이와 씨름도 하고 동네야구도 하면서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그리고 토론도 하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사회변혁방법론’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때 그 의원은 "위로부터 개혁"을 주장했고, ‘우리’는 "밑으로부터 개혁"(요즈음 이 나라의 수구권력과 그의 추종자 및 지지자[특히 무지한 노인들]들은 '아래로부터 개혁'을 주장하면 빨갱이 취급한다.)을 주장했다. 결국 그 의원은 위로부터 개혁을 하겠다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한국정치의 더러운 똥물에 오염되어 우리가 볼 때 불쌍하고 타락한 정치인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중 대부분은 아직도 밑으로부터 사회변혁을 애쓰거나 일상에서 스스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글쓴이도 농촌에 들어와 농사를 지으면서 광자(狂者)의 길을 가고 있다. 농촌에 막 들어와 밑으로부터 사회개혁을 하기 위해 '지역자치적 공동체'를 구상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환생산자협동조합운동(環生産者協同組合運動)을 준비하고 있다.
우라와 함께 지낸 그 의원 말고 또 다른 의원이 있다. 최근에 나를 영어(囹圄)의 몸이 되게 했던 모당 대표를 지냈던 이00 의원이다. 그가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다가는 집권당 품에 안겼다. 참 정치판이라는 게 이런가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인간 삶의 양태를 사과열매에 비교해 보게 되었다.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본다. 세상은 사과열매와 같다는 생각이다. 농약 듬뿍 쳐서 때깔 좋고 모양 좋게 만들어 출하하면 비싼 값을 쳐주고, 생명농법으로 가는 길목에서 정직(正直: 비료 안치고, 풀 죽이는 약 안치고, 때깔 나는 약 안치고, 과일 크게 하는 약 안치고, 화학농약도 초기살포만 하고 나머지는 EM미생물로 만 농사를 지음)하게 농사지은 사과는 소비자들에게 싼값 취급을 당한다. 때깔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깔 좋은 사과는 사람 몸에 좋은 성분(효능)도 적고, 맛도 없다. 그렇지만 때깔이 안 나지만 친환경적으로 정직하게 농사지어 나온 사과열매는 사람 몸에 좋은 성분도 듬뿍하고 맛도 있다. 자본주의 세상이 다 그렇겠지만 이 나라 세상 돌아가는 원칙들이 사과열매와 같다는 생각이다.
앞에 예를 든 이00 의원도 그렇지만, 뒤에 든 이00의원은 농약덩어리로 범벅이 된 인간이다. 그런 인간을 받아주는 정당은 어떤가, 그런 부류들이 아닐까. 이 세상은 사람들이 죄다 꼼수를 부리고, 트릭을 부리고, 잔꾀를 쓰고, 통박제고, 그렇게 살아가야 잘 사는 세상인가보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글쓴이는 조금도 남을 해(害)하는, 남보다 내 이익과 욕심을 앞세우는, 그리고 나한테 유리하게 하기 위해 꼼수도, 잔꾀도, 통박도, 속임수도, 기만도, 트릭(trick; 詭計)도 부려보지를 않았다. 남을 비양 거리는 말조차 하지를 않았다. 남보다 지적(知的)으로, 언변(言辯)으로, 사고적(思考的)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를 않았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속을 다 터놓고, 남에게 보이며 살아왔다. 남들은 자기 속을 감추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늘 내 쪽이 손해를 보는 그런 계산을 해왔다. 그래서 화려하게 살지를 않았다. 남보다 뛰어나게 살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취래원농사는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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