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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이제 밑으로부터 통일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by anarchopists 2019. 11.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8/15 06:29]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제 밑으로부터
통일논의가 이루어져 한다.


* 아래 단상들은 1979년 3월 초, 한 공군장교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불법 구속되어 공군본부 영창에 감금되었을 때  적은 영창일기의 일부를 8.15 해방 69주년을 맞아 “정치권력을 가진 자에게 고함”이라는 주제를 일부 수정 보완하여 적은 글이다.

1. 인간 문화의 창조와 문명의 발전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도전에서 비롯된다. 도전(挑戰)과 저항(抵抗)이 있어야 응전(應戰)이 있고 반성이 있는 법이다. 반성을 기초한 응전 속에서만 새로운 발전과 창조가 생긴다. 비판이 있어야 새로운 발상이 일 수 있다. 비판이 없으면 반성이 없고 반성이 없으면 진보를 할 수 없다. 진보가 없으면 발전적 진화도 없다. 우리 사회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긴급조치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나라사람들의 비판과 정의의 목소리를 틀어막고 어찌 나라사람들의 진정한 삶의 행복을 바랄 수 있으며, 나라의 평화를 바랄 수 있으며, 문화창달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라를 통치하는 권력자는 나라사람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평화와 행복을 갖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불행한 나라가 된다. 불행한 사회에서는 나라사람들의 분노가 지축을 흔드는 날이 온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자는 죽음을 맞게 되리라. 무엇이 진정이고 무엇이 진정한 애국이며 애족인지는 나라사람들을 얼마큼 행복하게 하는데 있지. 국가주의 이념을 강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서신을 지식인들에게 보낸 것은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나라에 대한 봉사정신으로 했던 거다. 그런데 나를 잡아넣다니.(1979년 4월 23일, 공군본부 영창에서)

2. 개인적 정치권력이 민족 전체에 대한 죄악을 짓는 것은 권력자 개인의 어리석은 욕심 때문이다. 권력자의 자만심, 우월감, 권력에 대한 집착들이 나라와 민족에 대한 죄악을 잉태한다. 정치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나라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논리를 꾸준히 일으켜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없는 권력자가 나라권력을 쥐게 되면 그 나라는 퇴보하는 것이며 나라사라들은 불행에 빠진다. 권력자가 이 이치를 모르고, 나라사람들이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나라질서를 주장한다고 이를 탄압하면 그 나라는 퇴보하고 만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 그 나라 권력자는 결국 권좌에서 강제로 쫓겨나거나 죽음을 맞는 치욕을 당하리라.

지난날을 생각하면 모두가 우수광스럽다. 오늘 이 나라의 독재권력을 가진 자는 일제 침략기 일제의 육군장교가 되어 민족주의를 가졌다고 체포하고 구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더니 세상이 바꾸자, 이제는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권력을 잡고 자신을 민족주의자로 둔갑시키는구나. 그는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던가. 제국주의자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개인의 서찰을 문제 삼아 처단하여 하는구나. 국가주의 이념을 나라사람들에게 강제하더니, 잘못된 독재를 비판하였다고 되지도 않는 긴급조치를 발동하고 나라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는구나. 국가사회에서 한 개인이 어찌 독재권좌와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라사람들 전체의 분노에 미치게 되면 독재자 개인은 아무리 국가공권력을 동원하려 해도 때는 늦으리라. 때가 오고 있다. 나는 오로지 우리나라와 사회행복을 위하여 그리고 민족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범부일 뿐이다.(1979년 4월 24일 공군본부 영창에서)

3. 오늘은 민족통일의 길과 정치권력자에 대하여 적어본다. 민족통일의 길은 국가라는 틀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두 분단논리(7.4공동성명으로 맹약한)를 가진 독재자가 살아 있는 한 정치적 논리밖에는 없는 것 같이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위로부터 통일정책은 나라사람들의 자유로운 민의를 통제하기 위함이요, 통일 이후 기득권 장악을 위함뿐이다. 때문에 진정한 민족통일논의는 밑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밑으로부터 통일기운이 일어나 이를 바탕으로 통일절차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권력을 잡은 분단세력들은 밑으로부터 통일운동을 탄압하고 많은 사람들을 구속하고 옥살이를 시키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7.4공동성명이 나온 이 마당에서는 정치적 통일논리는 요원하다고 본다. 두 독재자들은 7,4공동성명이 마치 정치적 통일을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한 우리 눈에는 전혀 통일전략이 아니라 분단전술로 보인다. 그렇다면 밑으로부터 통일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민족문화의 창달이다. 남북이 전통적 민족문화를 수호하고 발전시켜, 정치권력들이 고집하려는 분단의지를 없애는 노력이다. 정치권력들의 분단의지(이를 분단독기라고 표현한다)를 허물어트려야 한다. 분단독기는 민족모순이다. 민족모순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 쌓여간다.

모순이 깊어지면 새로운 저항이 일어나고 새로운 생명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로 보아서는 오히려 독기가 너무 깊어 그만 정치 권력자들에게 이득만 돌아갈까 우려된다. 7.4공동성명으로 분단독기를 머금은 모순투성이 세력들이 영구적 분단과 북한은 독재세습제를 위하여 이고, 남한의 경우는 영구총통제를 위하여 긴급조치라는 봉건적 압제를 가하고 있다. 봉건제도가 무너져나가듯 분단독기에 눈이 멀어 나라사람에 대한 압제를 계속 가하면 결국 나라라는 몸통에 종기가 나고 종기 안에 썩은 고름이 잔득 고이면 끝내는 곪아터지게 된다. 그래서 민족통일 노력은 분단독기를 머금고 있는 정치권력에서 해서는 안 되고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밑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곧 나라사람들이 전통적 민족문화에 토대한 밑으로부터 통일운동이어야 한다. (1979년 4월 27일 공군본부 영창에서)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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