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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칼럼

눈물바다가 된 어느 졸업식장

by anarchopists 2019. 11.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15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아주 특별한 졸업식

요즘 일반 학교의 졸업식은 도깨비 시장을 방불케 한다. 졸업생들은 시시덕거리며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것도 부족해 교복 위에 계란을 던지고 바지를 찢는 등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래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처럼. 선생님들의 얼굴 또한 제자를 보내는 아쉬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일부 선생님은 제자들과의 이별이 아쉬워 식장을 떠나지 못하기도 하지만.

더군다나 올해에는 학교 폭력 근절이라는 미명아래 경찰까지 졸업식장을 감시하는 바람에 더욱 썰렁한 졸업식 분위기였다. 그러나 얼마 전에 참석한 작은 학교의 졸업식은 달랐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을 재현시킨 순간이었다. 졸업식 스케치를 잠깐 해 본다.


이십 여 명의 졸업생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식장에 들어선다.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남에 넘어 와 공부를 하게 되었고, 졸업식을 맞게 되었으니 당연히 감회가 깊을 것이다. 번듯한 학교 강당도 없어 시내에 있는 교회를 졸업식장을 쓰지만 그저 고마워하는 마음이 가득한 표정들이다. 축하해 주러 온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당연히 꽃다발도 눈에 띄지 않는다. 너무 조촐해서 어찌 생각하면 너무 초라한 졸업식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사랑만은 지상에서 최고로 가득한 식장 분위기다.

후배들의 눈물겨운 송사에 이어 답사를 하기로 한 졸업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하늘꿈학교〉의 반항아였습니다.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건물을 보며 실망했습니다. 이게 학교 맞아? 싶었고 창피했습니다. 북에서 넘어 온 아이들끼리 공부한다는 것도 맘에 안 들었고, 종교 행위를 강요하는 것 같아 그것도 싫었습니다. 이미 돌처럼 굳어 버린 머리 때문에 진도를 따라 잡기도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 외로움을 숨기려 먹이를 찾아 나선 하이에나처럼 아무나 붙들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런 저를 선생님들은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무한대로 참으셨습니다.

물론 심하게 야단을 치신 선생님도 계십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날 심하게 나무라셨습니다. 나는 별 감흥 없이 선생님의 잔소리가 끝나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런 날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더니 그냥 가라며 손짓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일부러 소리 나게 문을 쾅 닫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뭔가 빼놓은 게 있어 다시 교무실에 갔다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좀 전 내게 충고를 하시던 선생님이 내가 교무실 밖으로 나가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시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세상에 태어나 날 위해 눈물 흘려주는 사람은 그 선생님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조금씩 공부를 해 나가기 시작했고,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 조리학과에 지원을 해 합격했습니다. 내가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하늘꿈 학교 선생님들의 인내와 사랑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들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후배들이여. 나처럼 방황하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기 바랍니다. 졸업생 대표 ”


대표가 답사를 마치자 졸업생 스무 명 모두 선생님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엎드린 아이들은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간혹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졸업생 자체 내의 약속이었다. 어쩌면 길 가에 방치된 돌멩이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밝힐 자신들을 빛나는 돌로 만들어 준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절을 받는 선생님들 역시 연신 눈가의 눈물을 훔쳐 내고 있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 얼마나 많은 사연을 안고 여기 까지 왔는가. 그들이 졸업을 하다니. 감회가 깊은 건 선생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간 하늘꿈학교에 나가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각기 아픈 사연을 안고 이 땅에 내려 와 외로운 아이들에게 포근한 이불이 되어 준 선생님들을 보며, 이 분들이야말로 통일의 파수꾼이자 아이들의 수호천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졸업식을 마치자 졸업식장 전체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졸업해서 이 학교를 떠나는 학생도 울고, 남아 있는 후배들도 울고 교장 선생님은 물론 다른 선생님들 모두 소리 죽여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내빈과 학부모들도 손수건으로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물론 나도 울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된다. 요즘은 학교 폭력 문제라든가 학생 인권 문제 등으로 더욱 그런 것 같다. 나는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학부모든 각기 자신의 본분을 지킨다면, 학교가 지금처럼 살벌한 분위기만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
‘존경’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학생
‘신뢰’하는 마음으로 학교를 지켜보는 학부모...


잃어버린 본질을 다시 찾을 수는 없을까. 내년에는 일반 학교 졸업식에서도 작은 학교졸업식에서 느낀 특별한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2012. 2. 14,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SBS 2012. 1.20일자에서 따온 것임. 본 기사내용과는 상관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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