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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홍원준 논객 칼럼

무소유

by anarchopists 2019. 10.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6/27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무소유


현대인들은 수많은 것들을 소유하면서 살아간다.
이들에게 소유의 개념은 자명한 것이어서 마치 신의 계시처럼 받들고 하늘에서 내려온 ‘진리’인 마냥 여기고 있다. ‘니꺼’, ‘내꺼’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있어 모든 것을 이러한 관점으로 설명하고 판단한다.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것들에 무관심해지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편협해진다. 결국 모든 관심은 나에게 무엇이 이득이 되는가에 집중되어 현대인들은 이해관계 이상의 관계를 가지기 어려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이젠 그러한 자신마저 내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존재가 결정되어지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특정 이미지를 자신에게 소유로 투영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소유감-을 드러내 보이고 마치 자신이 개성적인, 특별한, 세상에 유일한, 뛰어난 존재로 표현하려 한다. 하지만 소유에 바탕을 둔 자신의 표현은 자본주의-상품, 광고-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아류일 뿐이며 그 속에서 함몰되어버린 사이비 개성화의 추구라 할 수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는 자본주의의 넘쳐나는 이미지들 속에서 소유를 통해 각각의 개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보편화시키고 있다는 아이러니함. 현대인들이 소비를 통한 이미지 만들기를 해봤자 공허한 자신, 보편화된 이미지만을 발견하게 되지만 ‘진리’를 부정할 수 없기에 더 큰 소비 욕망-이미지의 소비-을 바라고 쫓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진리’를 거부해야 한다. 자신을 소유로써 표현하는 것을 부정하고 진정 나의 개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소유에서 법정을 얽매게 했던 ‘난’을 더 이상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되찾았던 것처럼 우리도 저 ‘진리’를 초월해서 진정한 자신을 발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여태까지 써왔던 –숨쉬기 불편하고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하며 똑바로 보지도 못하게 했던- 가면-이미지-을 벗어던져야 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볕이 너무 뜨겁게 느껴질지도 차가운 공기가 너무나 춥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진정 ‘몸’으로 느끼는 현실인 것이다. 이를 통해 감각이 더 감각적이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어 스스로를 알아갈 수 있는 ‘네 자신을 알’수 있는 ‘내’가 되어가는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홍원준 필자는
숭실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평소 사회, 정치, 문화 등에 비판적 의식을 견지해왔습니다.

그래서 의생명시스템학과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꿀 정도로 존재, 사유, 실존, 본래성 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철학도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철학의 인식론을 중심으로 촘스키와 같은 언어철학자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젊은이로서, 우리 사회 진보에 대한 대안제시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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