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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면도한 원숭이들의 논쟁

by anarchopists 2019. 11. 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7/15 15:41]에 발행한 글입니다.


면도한 원숭이들의 논쟁



  사람이 유신론적 사유를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무신론적 사유를 하느냐에 따라 그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우주관 등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은 인간의 기원 문제와 관련하여 신이 인간을 창조하였느냐 그렇지 않으면 진화되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대하여 신으로부터 기원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두고 종교계와 비종교계가 첨예한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마도 종교계가 진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인간의 신적 기원이 상실된 사물성, 사물적인 것으로 전락한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신학은 인간이 신적 속성, 즉 신의 모상(imago Dei)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인간이 사물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논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진화(론의 자연선택)조차도 무한 존재의 행동 범주 안에 포함시킨다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필자는 이와 같은 논쟁과 관련하여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네덜란드 군의관이던 외젠 뒤부아(Marie Eugène François Thomas Dubois, 1858-1940)는 1891-1892년에 인간의 선조(先祖)라고 할 수 있는 화석을 최초로 발견했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죽은 지 10년이 되는 때였다. 머리덮개뼈는 뇌용량이 현대 인류의 3분의 2쯤인 900CC가량 되는 생물의 것이었다. 뒤부아는 그 생물을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라고 불렀다. 똑바로 서서 걷는 유인원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다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라고 개명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유인원의 것으로 분류를 하면서 흠집 내기에 바빴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출판물에서 트리닐 두개골과 넙다리뼈는 자이언트 긴팔원숭이의 것이라고 단언했다. 입장을 바꾼 것이다.


  뒤부아는 성체의 뉴런수를 헤아려보면 최초의 세포가 몇 번이나 분열했는가를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은 33번, 유인원은 31번 분열한다고 했다. 뒤부아는 바로 32번 분열하는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그는 1932년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여 말했다. “피테칸트로푸스는 사람이 아니라 긴팔원숭이와 연관된 거대한 동물 속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극도로 커진 뇌를 볼 때 긴팔원숭이보다 우월했고, 직립하여 걸을 수 있다는 능력 면에서도 월등했다. 그것의 두부 발달 상태는 일반적인 유인원의 두 배였고 사람의 절반이었다... 나는 트리닐의 피테칸트로푸스가 진정 ‘잃어버린 고리’라고 여전히 믿는다. 아니, 전보다 더욱 굳게 믿는다.”(Stephen J. Gould, 김명남 옮김, 여덟 마리 새끼 돼지, 현암사, 2012, 192쪽)


  또 한 가지의 이야기는 다윈이 존경해마지 않았던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에 관한 것이다. 그는 생물의 훌륭한 설계에서 신의 지혜와 자비를 입증하려 했다. 그러한 그의 자연신학을 다윈은 경탄했지만 시계 장치와 같은 우주 논리를 거부한다. 다윈은 이른바 ‘헤카툼’(hecatomb), 그러니까 소를 100마리 도살하여 거창한 번제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자연선택은 헤카툼의 긴 연속임을 주장한다. 개체들의 변이에는 특정방향의 선호도는 없다. 다만 결과적 편익을 위해서 대량의 살상을 저지르는 것과 같은 헤카툼만 있을 뿐이다. 동물의 제 생활양식의 뛰어난 적합성은 신의 자비로움의 상징이 아닌 헤카툼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자연선택에 따른 직간접적인 결과이다.


  이러한 논리를 주장하는 스티븐 굴드(Stephen J. Gould)의 말을 인용해보자. “다윈의 체계도... 위에서 내려오는 규제는 없다. 자신의 창조물을 감독하는 신성한 시계 제작자 따위는 없다. 개체들은 자연에서 사익에 해당하는 성공적 번식을 위해 투쟁한다. 다른 메커니즘은 작동하지 않는다. 더 ‘높거나’ 고상한 메커니즘은 없다. 그런데도 그 결과는 적응과 균형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꼬리에 꼬리를 문 헤카툼이다.”(Stephen J. Gould, 211쪽) 더 나아가 “자연의 유일한 행동이란 물론 성공적 번식을 위한 생물들 간의 끝없는 투쟁, 그리고 실패한 자들에 대한 끝없는 헤카툼이다.”(212쪽)


  앞에서 뒤부아의 발견은 명시적으로 인간의 선조가 긴팔원숭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는 데에 주목을 해야 한다. 그보다 앞서서 자연신학을 펼친 페일리의 주장은 다윈에 의해서 극복되었다. 유신론자들은 여전히 위에서 내려오는 보이지 않는 시계 제작자의 자비를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제작자는 아주 오래 전에 인간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고백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러한 의식을 가지도록 만든 것도 헤카툼의 연속이었다는 것
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은 신이 있느냐 없느냐, 나아가 인간과 세계가 신에 의해서 만들어졌느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인간은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기원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유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특별한 인간임을 깨닫는 데에 있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다시 한번 굴드의 생각을 들어보자.

“자연을 서정시처럼 묘사한 글들을 보면 생물 설계의 외형적 완벽함과 최적성을 칭송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견해를 취하는 것은 자연을 옴짝달싹 못하는 역설적 상황으로 밀어 넣는 격이다. 완벽함이 자연의 규범이었다면, 우리가 더욱 열광하며 칭송할 수는 있겠지만 한 가지 작은 문제가 생긴다. 모든 진화의 산물에게 완벽한 최적성이 부여되었다면 지금 이곳에 자연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문제다.”(Stephen J. Gould, 137쪽)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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