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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아이는 미래의 노동력인가? 인격체인가?

by anarchopists 2019. 11.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7/0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아이는 미래의 노동력인가? 인격체인가?



  인간이 생로병사를 스스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믿는 r것만큼 오만도 없을 것이다. 그 오만의 극치는 과학이나 의학을 통하여 실증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바이지만, 그것을 하나의 정책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전략으로 이용하고 있는 정치 현실은 가진 자, 곧 기득권자에 의해서 주입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똑같은 논리가 인간의 출생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태어-남 혹은 태어-나옴의 현상은 인위나 작위가 아니라 신비이자 비밀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인간의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여 수단으로서의 생명으로 인식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국제연합(UN)의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7% 이상-14% 미만이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 이상-20% 미만이면 고령 사회(aged society),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super-aged society)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약 11%로 고령화 사회에 속한다고 한다. 정치인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지금의 고령화 사회에 초점을 맞추고 저출산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 미래의 복지나 경제적 성장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견해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녀 생산을 많이 함으로써 노동력을 확보하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에 젊은 노동자들이 부족하여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거나 경제적 부양 인구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심정적으로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태어-남, 태어-나옴을 인위, 작위적으로 조절해 보겠다는 발상은 분명히 논의의 사유와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태어-남, 태어-나옴의 현상을 위해 여성을 기계적으로, 인간 제조기로 접근하고 있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한마디로 말해서 여성은 아이 낳는 또 다른 생산 노동자가 아니다. 아이는 미래의 산업 역군이라 해서 공장에서처럼 만들어내는 생산품이 아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 혹은 이미 태어난 아기는 하나의 인격적 존재,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인격체로서 인정받아야 할 존재이지 잠정적 노동자나 경제 행위를 통해서 이익을 발생시키는 노동자/노동력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런 시각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경제적 가치, 경제적 척도, 경제적 행위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매우 팽배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저출산에 대한 논의의 초점과 문제의식을 재설정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국가의 아동 복지를 운운하면서 근시안적인 정책을 입안하는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각 가정의 부부들의 잠자리마저 감시하는 정부가 되어서야 어디 말이 되겠는가. 시대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국가들이 좀 더 거시적인 안목과 전체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노인들이 많아졌다고 해서 경제적 행위를 통한 사회 전체의 자본력과 복지가 어려워질 거라 전망하고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아이를 많이 낳자는 단편적인 생각으로 일관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이러한 현상을 자연스러운 역사적 흐름으로 받아들이면서 노인들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통을 같이 분담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노인이 되면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할 폐물이라는 의식을 버려야 함과 동시에 고령의 노인이 되어서도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업의 환경과 여건, 사회적 풍토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시간이 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인간 현상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와 환경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지구의 인구는 이미 생태계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포화 상태로 증가하였다. 이는 인간이 지구에 심각할 정도로 환경적 부담을 주기 때문에 자연이 정화되고 순환이 되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의 인구보다 더 줄어야 자연과 인간은 상호상
존, 상호상생, 상호생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지구 환경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발언과 정책은 인간의 삶의 터전인 자연의 생명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예 자연은 없고 인간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자연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후손을 낳아 양육하고 인격적 존재로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방법이 없겠는가, 그 정신과 의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도록 하자. 한 사람의 생명이 태어-남은 그 아이가 우주의 기운을 품은 것이고, 우주의 마음이 깨어남이고, 우주의 애씀으로 가능한 것이기에 우주의 씨알로서 온 우주의 뜻을 펼치는 것이 마땅한 것임을.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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