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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성서언어, 정치언어, 새로운 옮겨-감의 가능성

by anarchopists 2019. 11. 2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3/2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성서의 언어, 새로운 세계로 옮겨-감이 필요하다!


  베르그손(H. Bergson, 1859-1941)은 “언어는 지성을 해방시키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말은 사실상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가기 위해 본질적으로 이동 가능하고 자유롭다. 따라서 그것은 지각된 사물에서 지각된 다른 사물로 확장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지각된 사물에서 이 사물의 기억으로, 정확한 기억에서 희미한 이미지로, 희미하지만 아직은 표상가능한 이미지에서 그것을 표상하는 행위의 표상, 즉 관념으로 확장될 수 있다... 지성은 말 자체가 하나의 사물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그것에 의해 인도되어 자신의 고유한 작업의 내부로 침투한다”(앙리 베르그손, 황수영 옮김, 창조적 진화, 아카넷, 2005, 242-243쪽)고 말했다.


  성서의 언어도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하나의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옮겨-감이 가능하다. 이미 수천 년 전에 써진 경전이지만 오늘날 성서 언어는 다른 대상을 지시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로 옮겨-가도록 안내한다. 다시 말해서 성서의 언어나 개념을 재해석한다면 신자들의 의식과 관념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서 해석자 혹은 성직자들은 성서의 언어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도록 새로운 지시 대상을 가리킴으로써 그곳으로 옮겨-가도록 하고 있지 못하다. 성서의 언어나 개념을 고정시켜 놓고 옮겨-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지 못하고 차단하고 있는 셈이다.


  함석헌도 이에 대해서 길게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성경은 변치 않는 영원 절대의 것이 변
하는 일시적 상대인 속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글은 굳어졌는데 뜻은 자랐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에 끊임없는 새 해석, 고쳐 씹음이 필요한 까닭이다... 성경은 덮어놓고 읽을 글이 아니요 열어놓고 읽을 글이다... 덮어둘 것, 은밀하게 둘 것, 신비대로 둘 것은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 그 밖의 것은 다 열어젖혀야 한다. 연구해야 한다. 성경은 연구해야 하는 책이다. 연구하지 않고 믿으면 미신이다. 하나님은 연구의 대상은 될 수 없고, 그 밖의 것은 연구해서 밝혀야 할 것이다... 성경은 먹어 없앨 양식이다. 밥은 없어지고 생명이 길어야 한다. 산 맛 보다 산 맛나기 때문에 커져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양식이라기보다 산 씨알이다. 씨알이기 때문에 그 첨 형상이 없어지도록 키워내야 한다.”
(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5, 8-9쪽)


  앞에서 베르그송이 말한 것처럼, 언어는 지성을 해방시키는 데 기여를 하였다. 그와 같이 성서의 언어도 씨알을 해방시키는 언어가 되어야 하는데, 그 첫 번째 조건이 성실한 연구이다. 맛이 우러나도록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것, 그것이 성직자 혹은 설교자(강론자)가 해야 할 의무이다. 그래야 비로소 성서는 하나의 씨알이 되어 백성을 자라게 할 것이고, 존재의 지평이 넓어질 수가 있을 것이다. 성서의 언어는 새로운 세계로 옮겨-감이다. 언어가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연구되어진 성서의 언어, 곧 성서는 인간의 의식과 영혼을 지배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서의 언어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지 못하고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지 못한다면 그 언어는 죽은 언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언어가 지금 여기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다리를 되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씨알은 그 언어를 통해서 영혼의 양식, 정신의 밥이 되어 참된 진리와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요즈음 언어문화를 보면 언어는 많고 기발하며 다양한 조어들이 등장하지만 번잡스럽고 잡다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언어들은 거의 없다. 새로운 언어의 해석자와 생산자들은 신비로운 것을 망측하게 하고 오히려 무한히 열어젖혀서 의미를 생산해내야 하는 언어는 닫히고 고착되어 있으니 종교나 사회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언어가 무엇을 지시하고 있으며, 그 지시를 통해서 옮겨-감의 가능성이 열려있는지 없는지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성숙한 공동체, 희망이 있는 공동체, 맑은 정신을 가진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선거철이다. 후보자들의 언어가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꿈꾸는 언어인지,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게 하는 가능성의 언어인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종교 공동체의 경전 언어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쇄신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고답적이지 않고서도 그 언어에 진실한 마음을 담아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선거철에 종교를 빌미 삼아-종교경전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후보를 검증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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