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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슬픈 역사, 그리고 잊히지 않는 사람들

by anarchopists 2019. 11.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6/0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슬픈 역사, 그리고 잊히지 않는 사람들



“사람을 어질게 하는 것도 이성이지만 또 말할 수 없이 어리석게 만드는 것도 이성이다. 이성이 현실이라는 작은 귀신에 잡혀버릴 때 아주 소경이 돼버리고 만다. 태양이 너무 밝기 때문에 눈을 어둡히는 듯하고 그래서 등불을 요구하는 사람같이, 현실의 대세가 너무 환하기 때문에 도리어 생각이 어두워지는 국민이 있다. 누구보다도 세계 평화를 부르짖어야 할 우리나라에 평화운동이 도무지 없는 것은 놀랄 일이다... 평화적 공존이 가능하냐가 아니다. 그것은 한가한 소리다. 가능하거나 말거나 평화만이 유일의 길이다. 같이 삶만이 삶이다. 공존만이 행동의 결심을 하는 데 평화적 공존의 가능성은 있다. 평화는 자연적 현상이 아니고 인류의 자유 의지를 통해 오는 윤리적 행동이다.”(함석헌, 함석헌전집 두려워말고 외치라 11, 370-371쪽)



  역사는 사람들을 기억하게 한다. 역사는 되먹임을 통해서 시간 속에 흘러 지나가버린 숱한 사람들을 생각나게 만든다. 자신이 역사 속의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그저 시간이 되면 어느 한 날, 혹은 어느 특정한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잊힐래야 잊히지 않는다. 아니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역사의 이성은 늘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되묻는다. 그것이 일어난 사건으로서의 역사(Geschichte)이든 아니면 기록으로서의 역사(Historie)이든 관계없이 역사의 이성은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지금 과거를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하는 것은, 함석헌의 말대로 자꾸 현세의 대세가 국민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았던 수많은 선조들, 그리고 이 땅을 사랑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삶터를 지켜내려고 애를 썼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의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생각하며 그것을 구현하기 위함이다. 역사의 이성은 바로 평화의 이성이 되어야 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평화 그 자체 때문에 그렇다. 평화는 평화 그 자체로서의 목적이 있는 것이지, 평화의 목적이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역사의 이성이 어두울수록 평화의 이성이 감감한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현실, 우리의 현실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의 역사적 현실이 오늘의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
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오늘의 현실에서 과거의 역사를 반추하는 역사의 이성이 무디고 비판이 결핍된다면, 한낱 역사는 승리자들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영웅들의 유희, 실패자들의 굴욕, 이름 모를 사람들의 한숨으로 남게 될 것이다. 역사를 누가 기억하는가?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기억한다. 사람을 보면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면 과거의 역사, 그리고 미래의 역사를 알게 된다. 역사의 해석과 이해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현실의 무게, 혹은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대한 비판적인 역사의 이성에 터하고 있는가.


  함석헌이 단언한 것처럼,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에 평화운동이 없거나 미진하기 때문이다. 평화라는 소리 그 자체가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이 아닌가. 추상으로 그치는 말이나 이념에 입각해서 내뱉는 정치적인 용어가 아님이 분명할진대, 사람들은 평화를 말하면 이념으로 몰아붙인다. 우리 국민이, 우리 국가가 평화에 대한 사유나 운동이 부족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평화는 이념이 아니다. 정치적 논쟁의 화두도 아니다. 삶이다. 삶이어야만 한다. 삶은 혼자 삶만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같이 삶이다. “같이 삶만이 삶”이라고 말한 것은 그 삶이라는 것의 아프리오리한 성격이 평화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남과 북이 여전히 휴전선을 사이에다 놓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적 공존이라는 말이 한갓 이념으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란다. 두 체제가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삶이라는 공통적 기반에서 생각할 때 평화적 공존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평화를 위해서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 그것이 이념이 되었던지, 신념이 되었던지, 관념이 되었던지 모두에게는 생존이었고 삶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함석헌은 평화가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에서 발생한 윤리적 행동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것이 윤리적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평화란 선천적인 인간의 삶이라는 확고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건, 그리고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같이 살아가는 방식보다는 이념의 깃발 아래 자신의 목숨을 내걸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야말로 같이 사는 삶, 곧 평화라고 믿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평화적 공존, 평화적 생존의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나아가 세계 시민으로서의 공존, 우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가 그랬던가.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오늘 만큼은 말끝마다 종북 운운하면서 이념으로 싸잡아 몰고 가는 정치판에서 눈을 떼고, 우리의 역사비판이성이 이 땅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관조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News 1/대전일보)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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