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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칼럼

대한민국 사회적 양극화의 두 얼굴

by anarchopists 2019. 12.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0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졸업식의 두 얼굴

엊그제 일반 학교의 졸업식에 다녀오게 되었다. 학생은 물론 선생님들 역시 무덤덤한 얼굴로 단지 행사를 위한 행사를 치룰 뿐이었다. 식이 끝나자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마치 감옥을 벗어난 듯 홀가분한 얼굴로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것도 부족해 교복 위에 계란을 던지고 바지를 찢는 등 난리였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저렇게 해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일까. 씁쓸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하늘꿈 학교'의 졸업식은 달랐다. 졸업생이라야 고작 이십 여명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은 한결같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남에 넘어 와 공부를 하게 되었고, 졸업식을 맞게 되었으니 당연히 감회가 깊을 것이다.

후배들의 눈물겨운 송사에 이어 답사를 하기로 한 남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하늘꿈 학교의 반항아였습니다.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건물을 보며 실망했고, 북에서 넘어 온 아이들끼리 공부한다는 것도 맘에 안 들었습니다. 또한 돌처럼 굳어 버린 머리 때문에 진도를 따라 잡기도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 외로움을 숨기려 먹이를 찾아 나선 하이에나처럼 아무나 붙들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런 저를 선생님들은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무한대로 참으셨습니다. 물론 심하게 야단을 치신 선생님도 계십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날 심하게 나무라셨습니다. 나는 별 감흥 없이 선생님의 잔소리가 끝나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런 날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더니 그냥 가라며 손짓을 하시던 선생님. 전 그 날 분명히 보았습니다. 내가 교무실 밖으로 나가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시던 선생님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세상에 태어 나 날 위해 눈물 흘려주는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조금씩 공부를 해 나가기 시작했고,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 조리학과에 지원을 해 합격했습니다. 내가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하늘꿈 학교 선생님들의 인내와 사랑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후배들이여. 나처럼 방황하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기 바랍니다."

상호가 답사를 마치자 졸업생 스무 명 모두 선생님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엎드린 아이들은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간혹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졸업생 자체 내의 약속이었다. 어쩌면 길 가에 방치된 돌멩이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밝힐 자신들을 빛나는 돌로 만들어 준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절을 받는 선생님들 역시 연신 눈가의 눈물을 훔쳐 내고 있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 얼마나 많은 사연을 안고 여기 까지 왔는가. 그들이 졸업을 하다니. 감회가 깊은 건 선생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하늘꿈 학교의 졸업식을 보며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정든 선생님과 교정을 떠나기 아쉬워 서럽게 울던 동심. 상호도 그랬을 것이다. 상호 뿐 아니라, 모든 졸업생들이 하늘 꿈을 떠나 대학 혹은 직업 전선이라는 더 넓은 곳으로 떠나는 마음은 같았으리라.

선배들을 보내는 후배들 역시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인호의 반짝이는 눈빛 속에서 난 참 많은 걸 읽었다. 나도 저 선배들처럼 열심히 길 찾기를 해야지. 다짐하듯 두 주먹을 꼭 쥐는 모습을 보며.

하늘꿈 학교의 졸업식 풍경은 한 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다. 일반 학교의 졸업식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교육의 현주소를 피부로 느꼈다. 일반 학교 학생들의 기이한 행동은 그들을 억압하며 오직 좋은 대학만을 강조하며 가둬 놓은 탓 아닐까. 그들이 잘하고 원하는 삶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아무리 흠이 많아도 돈과 학벌과 줄만 있으면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는 세상만을 보여 준 어른들에게 더 책임이 크다고 본다. 오물 같은 계란을 뒤집어쓰고 절규하듯 웃는 모습이 한없이 가여웠다. 참교육 부재의 희생자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순간이었다.(2011.02.07., 박경희 /작가)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민중의 소리에서 따옴, 본문내용과 관게가 없음.
기성학교의 고등학생 졸업식 모습임, 경찰이 단속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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