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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씨알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 2

by anarchopists 2020. 1.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7/01 11: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함석헌 선생님이 이러 말씀을 하셨다. “이 우주는 역(易) 곧 변하는 힘의 마당이고, 삶이란 거기 적응하면서 자기창조를 해나가는 것인데, 그 적응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잘못입니까......애당초 농촌을 참는 것들이라고, 말 못하는 것들이라고, 무시하고, 그 기업가라는 욕심쟁이들만을 내세운 것이 잘못입니다.(<농촌을 살려야 한다>, 《함석헌 저작집》제3집, 218~223쪽)

그렇다 우리 농촌은 무엇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 이제 그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글쓴이가 머물고 있는 농촌 현실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자. 인류가 만들어낸 인위적 위험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위험은 환경파괴로 인한 식량부족이다. 지금 전 지구에서 식량부족으로 시간당 4,000명, 하루에 96,000명이 죽어가고 있다면 상상이나 하겠는가? 또 1840년 유럽에서 감자흉작으로 200만 명이 아사(餓死)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사망자는 모두 21만 명이었다. 이를 비교해 보아도 식량무기가 전쟁무기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농림부는 식량자급정책에 무뢰한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대한민국 농림부의 허구적 ‘농업진흥정책’으로 농촌에서 농민이 쫓겨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자.

한 국가구성원들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자급률은 33%가 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재 식량자급률은 2005년 전반기 기준 25.3%이지만 쌀을 제외하면 곡물자급률은 2.7%에 불과하다. 유엔이 정한 세계 1인당 곡물생산량은 329kg인데 우리나라의 1인당 곡물생산량은 117kg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농림부(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어떤 짓거리를 하고 있는가? 가난한 농민을 내쫓고 식량자급을 격감시키는 정책시행에만 급급하고 있다. 즉 2002년부터 쌀 생산 면적을 크게 줄이는 정책을 세우고 있다. 이웃 일본은 식량전쟁을 대비하여 2000년부터 식량자급정책에 들어갔다. 그래서 2010년까지 쌀 자급률을 96%까지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대한민국 농림부에서 그야말로 졸속으로 내놓는 농업관련 정책들을 보면 농림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농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하려고 한 것인지, 농촌을 망하게 하려고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농림부의 정책들을 잠시 살펴보자. 먼저 “2010년까지 6ha 수준의 규모화 된 전업농 7만호 육성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 계획은 사실상 완전히 농촌을 파괴하는 정책이다. 토착농민(영세농)의 폐업을 강요하고 농촌의 자본주의화를 강제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전업농 7만호 육성은 농업인구를 지금의 353만 명(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7.4%임)에서 280만(전체인구의 5.9%) 수준으로 내려서 한국 농업을 전업농에만 의지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렇게 되면 식량자급률이 크게 떨어지고 오히려 농업경쟁력이 약화된다. 그리고 농촌에서 도시로 흘러들어간 인구로 도시의 실업률은 크게 늘어서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 오게 된다.

또 《농업ㆍ농촌기본법》(법률 699호, 2003. 12. 11)과 《농지법》(법률 6793호, 2002. 12. 18)을 보면 “농업회사법인의 무제한 토지소유”, “농지은행의 설립과 이를 통한 비농업인의 농지매입 허용”, “농업기반공사를 통한 농토 임대와 소유상한 폐지”, “농촌에 농업 편의시설의 건축허가”, “농지전용허가”, “농지소유세분화 방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지역 FTA(자유무역협정) 이후 이 법들이 개정된 취지는 ‘농촌의 자본주의화’ 촉진에 있다. 즉 농업회사법인, 농업은행, 농업기반공사, 농업관련 시설은 모두 자본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대한민국 농림부의 발상은 소규모개별농업과 집약농업에 의지하고 있던 가난한 소농들은 내쫓고 자본가를 농촌에 투입하여 한국의 농촌을 완전 자본주의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대농 중심의 자본농(資本農)으로 하여금 농촌을 독점하도록 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제 돈 없는 가난뱅이 영세농민은 농촌을 떠나라는 국가명령이 떨어진 셈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농림부는 농촌공동체가 자본주의로 갈수 없는 태생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자본가에 의한 농촌지배가 이루어지면 농민계층은 더욱 분화되고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비윤리적 자본공화국으로 변질될 것이 뻔하다. 자본의 속성이 무엇인가. 자본가는 이익이 남지 않으면 결코 사업에 손을 대지 않는다. 즉 시장경쟁력이 떨어지는 쌀농사, 곡물농사, 과수(사과, 배, 포도)농사는 짓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식량자급률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특히 농업자본가는 이익이 전혀 안 남는 쌀농사는 짓지 않으려 한다.

쌀은 주식으로서 가치, 식량무역품목으로서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보다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즉 논농사가 우리에게 주는 공익적 가치다. 논농사의 공익적 가치는 환경보전기능, 홍수조절기능, 토지유실방지 기능, 대기정화기능 등 물리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 자연경관의 유지 및 생태계 보전(땅과 물을 살리는) 기능 등 심미적 기능,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 방지 등 사회/문화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정서의 순화기능이다. 이렇게 논농사의 공익적 기능은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로는 도저히 환산하기 어려운 경제적 가치(연간 13조원)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농민이 농촌을 떠나서 논농사를 안 짓게 되면, 식량자급률은 고사하고 농촌공동체의 정체성이 크게 파괴된다.


세계의 사회학자들은 앞으로 닥아 올 인류의 행복한 삶의 유형으로 개인의 자유주의(개인의 이익)에 바탕 한 자본주의가 아닌 인간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미래사회의 유형을 공동체적 삶으로 보고 새로운 공동체사회의 모델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럽이 이상적 인류사회의 공동체 모델로 찾아 낸 곳이 바로 아시아의 농촌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이후의 사회는 유럽에서 전해 왔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유럽사회는 자유주의ㆍ합리주의ㆍ과학주의에 바탕을 둔 시민사회에서 해소될 수 없는 갖가지 비인간적 문제(각종 비도덕적 비윤리적 범죄, 인간성 파괴) 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서 노출되는 비인간적 문제들을 과거사회의 이념, 즉 공동체주의(농촌사회)를 빌려 해결하려 하고 있다. 즉 농촌을 활성화시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휴머니즘도 되찾으려고 한다. 다행이도 한국농촌은 그러한 공동체사회의 원형을 아직은 그런대로 보존하고 있는 나라다. 함 선생님말씀대로 농촌을 욕심쟁이 자본가에 맡기면 농촌이 죽는다. 그러면 나라도 죽는다. 대한민국 농림부는 이 점을 다시 재고해야 하리라 본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도 공동체주의를 연구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농촌공동체를 파괴하고 농촌의 자본주의화를 추진하는 정책은 잘못이다. (취래원농부, 2009.7.1, 2005. 7.15일 글을 조금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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