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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씨알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by anarchopists 2020. 1.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6/30 08:21]에 발행한 글입니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오늘은 글쓴이가 살고 있는 농촌이야기를 해보자. 함석헌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개인사상의 자유와 촌락공동체의 자치를 무시하는 민족은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련을 정신으로 이기고 나면 인류를 건지는 운동의 앞장이 될 것입니다.”(<농촌을 살려야 한다>, 《함석헌저작집》제3집, 225쪽)   

함선생님은 농촌공동체도 자치공동체라야 한다고 했다. 근대 이후 서양의 문명주의가 들어와 이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농촌을 파괴하고 외국상품이 들어와 국민을 현혹시켰다고 하였다. 근대 이후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로 물질만능주의 세상이 되어 나라가 송두리째 망조가 든 것은, 씨알의 두 가지 잘못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면 씨알의 두 가지 잘못은 무엇인가. 하나는 우리말이 아닌 외국말로 하는 교육을 받은 것이요. 또 하나는 자본주의 경제에 말려들어 농촌의 자치를 잃어버린 일이다. 여기서 다시 함 선생님은 씨알이 ‘참과 사랑’을 간직한다면, 나라가 산다고 하였다. 그러나 참과 사랑을 잊어버리면 나라가 망한다고 지적했다. 함 선생님은 이 ‘참과 사랑’이 농촌공동체에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하였다.(함석헌 같은 글, 221쪽)

그런데 ‘참과 사랑’이 살아있어야 할 오늘의 농촌 모습은 그렇지 않아서 걱정이다. 이제 우리 농촌에 사는 씨알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비록 우리나라의 옛 농촌공동체는 양반 중심의 농촌질서였지만 오랜 세월 흐르면서 이것이 우리의 전통적 농촌사회의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박정희의 그릇된 새마을운동과 기형적 산업화정책으로 형성된 천박한 자본주의가 농촌에까지 유입되면서 한국 농촌은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수출위주의 경제정책은 우리 경제를 위기로 몰고 있다.

더구나 문민정부ㆍ국민의 정부ㆍ참여정부들이 국제화ㆍ세계화ㆍ신자유주의정책을 앞 다투어 밀어붙이면서 결코 자본화될 수 없는 농촌에까지 자본화를 추진하였다. 그 탓으로 지금 농촌은 전통적인 한국인 참삶의 모습이 파괴되어 버렸다. 인심 좋다는 농촌정서가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농민들도 자본축적에만 눈이 멀어 오르지 이익만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웃 사이의 정겨움과 상부상조는 뒷전이다. 내 이익이 우선이다. 그래서 내 이익만 된다면, 이웃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기형적 자본주의(시민사회에 의하여 형성된 자본주의가 아닌 위로부터 형성된 자본주의를 기형적 자본주의라 한다)를 농촌에 이식한 역대 정부의 잘못된 농정정책 탓이다.

지금 농민들은 공동체주의를 망각하고 자본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물론 미몽의 농민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정부의 탓이 더 크다. 그렇지만 농촌공동체가 자본시장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의 현상에는 농민들의 어리석음도 한몫을 하고 있다. 지금 농민들은 자본축적과 큰 것, 명품(?)생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자기가 만든 농작물에 대한 긍지와 신성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농심(農心), 곧 농민의 자부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로지 농작물을 돈가치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농작물을 인간의 건강, 삶의 행복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돈과 직결시키고 있다. 농작물을 자본화하면 그 때부터 농민의 정신은 썩는다는 것을 모른다.

농촌자본화의 오염으로 이제 농촌은 물질의 풍요가 삶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옛날의 가난한 정서는 사리진지 오래다. 외형적 크기와 물질적 소유로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반공동체적 사고가 팽배해 가고 있다. 가정에 자본주의 공산품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얼마만큼 좋은 게(명품) 있느냐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한다. 농업용 자동차(1톤 트럭) 말고 승용차를 소유했느냐, 승용차를 가졌으면 차종이 무엇이냐를 따진다. 또 냉장고는 투 도어인가, 용량은 얼마짜리인가를 따진다. 딤채(김치냉장고)은 있는가, 에어콘은 있는가, 명품 옷을 입었는가를 따진다. 그래서 남보다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우쭐된다.


이렇게 가난한 농민의 눈은 내면적인 것에서 외형적으로 돌아섰다. 외형적 크기를 쫒기 위해 농민은 자신을 속이고 소비자를 속이는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거짓된 농산물을 출하한다. 이렇게 농촌경제가 실속 없이 외형적으로 확대되다 보니 확대된 가정경제를 충당하기 위하여 농민들은 자본축적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자본축적을 위해서라면 윤리적 차원을 망각한 채 비인간적 행위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삶의 고급화’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농민들의 뒤늦은 천박한 자본주의에의 오염은 농촌의 자멸은 몰론 농촌공동체의 붕괴와 함께 국민정서의 괴멸을 초래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제 마무리해서 말해본다면, 농촌이 붕괴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은 농민 스스로 ‘참과 사랑’의 정신을 도로 찾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돚기 위하여 도시소비자들은 현명한 판단과 민족적 양심으로 우리농산물을 적극 애용하되 양심 있게 농사지은 정의로운 농산물을 적극 소비하는 방법이다(취래원 농부 2009. 6.30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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