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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씨알

[김경재 제4강] 함석헌- 하나의 새 세계

by anarchopists 2020. 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5/07 09:01]에 발행한 글입니다.


신생대(新生代)에서 생태대(生態代)로 넘어가는
임계점을 알리는 전령사 씨알

‘역사적 실재로서’ 씨알을 반추한다는 것은, 씨알이라는 존재자가 역사에 의해 지음받은 존재이면서 역사를 지어가는 역사담지자 라는 좁은 의미의 역사의식이랄지, 혹은 긴긴 과거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자기 자서전을 뒤돌아보는 과거지향적 의식만이 아니다. 도리어, 우주 속에서의 씨알의 자리매김을 확철하고 현대문명의 생태위기의 심각성을 그 무엇보다도 절감하여 ‘생태학적 영성, 생태학적 윤리의식’을 확장심화시키는 문명사적 과제를 자기 본분으로 삼아야 한다.

예수회 신부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1914~ )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지질학적으로 6500만 년 동안 계속된 신생대(Cainozonic/Cenozoic era)가 끝나가고 생태대(Ecozoic era)로 옮겨가는 임계점이라고 보고 있다. 이 획기적인 지질학적 변화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제 정치경제도, 인간과 초월자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새롭게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실재관과 가치관의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야 하며,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라는 판단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생태학적 영성의 출현과 확장이 요청되는 시대인데, 씨의 주 임무를 함석헌은 거기에서 앞질러보았던 것이다. 지질학에서 신생대란 식물로서는 속씨식물이 지구상에 만개하고, 포유동물이 번성한 축복의 시기였다. 봄철에 피는 모든 아름다운 천태만상의 꽃들과 과일나무들, 그리고 열대우림과 아프리카 사바나에 뛰노는 천태만상의 다양한 동물들이 지구상에 출현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제 그 신생대가 종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불길한 조짐이 부인하지 못할 정도로 자주 나타나고 있다.

‘세계가 하나되는 시대!’ 이것이 역사의 새 장의 제목이다 ……그러므로 이 전일화(全一化)하는 인류의 동원령은 절대로 시급하다. 그런데 그것은 세계 역사의 새로운 해석이 아니고는 안 된다……. ‘하나’를 어서 의식하여야, 그리하여 각각 서로 한 몸의 지체인 것을 깨달아야, 이 미친 자살적인 경련이 그칠 것이다. 그러나 그 새것, 그 하나를 가르쳐줄 자가 누구냐? 하나를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함석헌이 긴급하게 말하는 하나되는 새 세계, 전일화, 하나의식, 새것이란 구체적으로 토마스 베리가 말하는 ‘생태대의 출현’인 것이다. 결코 유엔(UN)이라는 국제정치조직기구체이거나, 사회주의 몰락 이후 지식인들의 모두 말하던 세계경제기구의 시장경제적 통합으로서 ‘세계화’ 같은 것이 아닌 것이다. 바로 지난 30년 동안 부르짖었던 ‘세계화’라는 이념이야말로 ‘생태대’가 건강하게 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우리문명시대의 실재관이다. 생태대의 의식변화는 다음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i)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을 벗어나서 생명중심주의(biocentrism)으로 전환해 나아갈 것. 생명중심주의란 다른 말로 하면 지구중심주의(geocentrism)을 의미하는데, 인간끼리의 공동체가 아니라 지구전체 생명체와 자연의 유대의식이자 공동체의식이다.

(ii)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외면적 관리보호를 중시하는 ‘청지기 의식’이 아니라, 지구생명의 중추신경에 해당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종(種)이며 나머지 다른 자연조건과 생명체들은 지구생명이라는 하나의 유기체의 몸체의 일부분이라는 자각(장회익)을 분명하게 갖는 것.

(iii) 생태대의 인간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듯한 닫힌 개인주의, 종족주의, 인종주의, 문명우월주의를 극복하여, 함석헌이 ‘자살적 경련’이라고 까지 극단적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한 진실들’ 곧 지구촌에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종족학살(genocide), 생명종학살(biocide), 지구생태계파괴로서의 지구학살(geocide)을 당장 중단할 것.

(iv) 생태대의 새로운 실재관은 신생대의 특징으로 이해되던 가부장적 억압과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생명질서가 진실의 일부분이며 전체모습이 아님을 각성하고, 모성 원리에 입각한 양육과 상호배려, 내면적 자발성과 고난의 현실성에 대한 직시, 심미적 정감능력의 고취, 삶을 감사와 기쁨과 경건한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심성의 배양 등이 될 것이다.

(v)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중요한 점은 씨알을 사회경제 차원에서만 보지는 않지만, 고난당하는 민중을 내놓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곳도 없고, 민중을 잊고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곳이 없다는 자의식, 곧 고통당하는 민중들 속에서 우주의 아픔과 하나님의 슬픔을 느끼는 예민한 감수성인 것이다. 새 시대 씨알의 중요한 것은 능력을 기르는 지식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전체를 체험하는 일이다”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의 근본적 잘못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씨알이 “우리는 누구인가? 하느님은 누구인가? 지금의 살맛나지 않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정말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진지하게 질문하려면 ‘역사적 실재로서의 씨알생명’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보다 심화시켜야 할 것임을 살펴보았다.(김경재 끝)

김경재 교수의 함석헌을 말한다.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 교수님은

-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
- 한국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역임
- 한국문화신학회 회장역임
- 현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신학)


- 대표저서: <이름없는 하느님>, <해석학과 종교신학>, <아레오바고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
/김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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