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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종교

[김영호 제7강] 함석헌과 불교사상- 연기론과 전체론

by anarchopists 2020. 1.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21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연기론과 전체론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는 대각과정에서 깨달아 찾아낸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가 연기의 이치이다. 이것은 대각의 핵심 내용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대각을 일으킨 요소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중요한 가르침 내용이다. 무아(諸法無我), 무상(諸行無常), 자비 등 다른 개념들과도 연관되어있다. 무아가 아니고 무엇이냐, 왜 무상한가, 왜 자비심을 내야하는가 등 문제들이 연기론으로 풀 수 있다.

연기(緣起)는 ‘이것이 있으(생기)니까 저것이 있다(생긴다)’((此有故彼有)는 간단한 공식으로 표현된다. 너와 나, 이것과 저것처럼 모든 것이 상대적인 관계임을 가리킨다. 아무것도 독자적으로,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인연(因緣)’이 바로 연기에서 나온 말로 존재나 생성의 원인(因)과 조건(緣)을 의미한다. 연기론은 일종의 인과(因果)론이다. 부처는 인간의 생로병사 과정을 추적하여 그 근본원인이 무지 즉 무명(無明)에 있음을 밝혀냈다. 무명은 깨닫지 못한 상태이다. 가까운 원인은 욕망과 집착에 있다. 그러므로 고통의 근인은 욕망이지만 무명을 벗어나지 않고는 근원적으로 제거될 수 없다. 깨달음이 중요한 이유다.

함석헌은 불교 연기론을 특별히 언급하거나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모든 대립과 대치의 상대성을 지적하는 데는 불교인에 뒤지지 않는다. 너와 나, 영과 육, 선과 악, 인간과 신(하나님), 개체와 전체, 시간과 공간 등의 상대적 관계를 자주 언급한다. 그는 대립보다는 조화와 회통을 추구한다. 그것은 씨알 개념에 함축되어 있다. “씨알은 너 나가 있으면서도 너 나가 없습니다. 네 마음 따로 내 마음 따로가 아닌 것이 참 마음입니다. 우리는 전체 안에 있고 전체는 우리 하나하나 속에 다 있습니다.”(「우리가 내세우는 것」)

서구에서는 아직도 갈등을 일으키는 창조론과 진화론조차 조화시킨다. 이 모습은 원효, 연개소문에서 이능화에 이르기까지 종교사와 지성사의 밑바닥과 씨알의 전통에 연면히 흐르는 정신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지배자, 지배층과 결탁한 주도세력들이 배타주의적인 종교를 빌어 이 좋은 전통과 정신을 억압해왔을 뿐이었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대표하는 오늘의 종교편향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것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맨 사람’ 함석헌의 자유정신 속에서 다시 발현된 것이다.

함석헌은 연기론 대신 앞에서 이미 논의했던 전체론적 사유를 통해서 동일한 지향점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또 그 다음은 누구도 우리 인격이 개체와 전체로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나란 것이 있는 것은 분명하면서 알 수 없는 것은 나다. 모든 얼크러진 문제가 나와 너와 그 때문에 생기는데 그 당초의 까닭은 여기 있다. ‘나’‘너’ 때문에 나눠지고 한 나를 잃어버리는데, 나와 너란 사실 점(點):저임[자기임]을 하나 잘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등 뒤에 지면 나인데 가슴에 품으면 너다. 이 개체 전체의 모순 때문에 자유와 통일의 갈등이 생기고 경쟁과 협조, 전쟁과 평화의 대립이 일어나나 이것 없이는 생명의 진화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독특하기를 원하는데 그는 어디까지나 하나이기를 명령한다.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이라 하면 너무도 허망한 것 같고 ”만물개비어아(萬物皆備於我)“라 하면 너무도 자기도취인 것 같기도 하고. 주관이 옳은가? 청허(淸虛)대사의 말대로 주객을 다 꿈이란 그도 역시 꿈 가운데 잠꼬대인가? 이것도 알 수 없을 일이다. 그가 자기 모습대로 우리를 만들었다기도 하고 우리가 우리 꼬락서니대로 그를 만들었다기도 하고 그 두 말이 서로 다른 말일까? 지소무내 지대무외(至小無內 至大無外).” (전집2:89)

요새 어떤 유행가에서 ‘너’와 ‘나’처럼, ‘님’과 ‘남’도 점 하나의 위치 차이일 뿐이라고 노래하는데 함석헌이 여기서 이미 말하고 있다. 함석헌은 이 문단에서 서산대사의 유심론적 게송(偈頌) ‘삼몽사(三夢詞)’와 원효가 (『대승기신론』 주석에서) 말한 표현(“지극히 작은 것은 안이 없고 지극히 큰 것은 밖이 없다”) 까지 알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맹자의 소우주론(“만물이 다 내 안에 구비되어 있다”)까지 동원한다. 전형적 다원주의자의 모습이다. 전체론적이지만 그 속에 연기론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불가의 연기론은 대승불교 철학의 극치라 평가받는 화엄철학에서 한층 더 심화된 이론으로 표현되었다. 머리카락 한 올이나 작은 먼지 속에도 온 우주가 내재한다고 말한다. 본체(理)와 현상(事) 사이(理事無礙), 현상 사물들 사이(事事無礙)에 아무런 장벽이 없다. 너와 나, 만물들이 상호동일성(相卽)을 지니고 상호침투(相入)의 관계를 지닌다. 근래에 이 연기론을 틱낫한 스님이 참신한 용어로 해설하고 있는데 그 열쇠 말이 ‘상호존재’(inter-being)이다. 만물이 각각 홀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간 유기적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사물이나 존재는 어느 것이나 그냥 ‘있다(is)’가 아니고 '서로같이-있다'(inter-is, inter-are).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함석헌은 선과 악의 상존(相存)을 말한다. 그는 미국 퀘이커 수련장 펜들힐에서 어느 날 가롯 유다가 다른 열한 제자와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선악 분별 같은 이분법이 공동체 전체가 깨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롯 유다를 공동체로 건져 올릴 때 인류의 구원이 완성 된다. 함석헌이 같이 살기 운동을 제창한 것도 전체론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그가 독자적으로 도달한 깨우침이지만 불교사상은 물론 한국근대종교 전통에서 내세운 상생(相生)사상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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