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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씨알

[김경재 제3강] 함석헌- 이분법적 사유체계는 용납되지 않는다

by anarchopists 2020. 1.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5/06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역사/자연 이분법을
지구 생물진화사의 과정적 창발체로서 씨알

함석헌의 ‘역사적 실재’ 개념은 자연과 대립개념으로서 정립되는 역사가 아니다. 그가 전공한 역사학 공부 초기부터, 그가 받은 학문적 영향이 H.G. 웰스, H. 베르그송, 그리고 1950년대 이후부터 테야르 드 샤르댕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 분리된 역사개념을 극복하려 했다. 씨알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다석과 함석헌은 생각을 같이하지만, 천문학을 기반으로 한 다석의 씨알개념과 지질학과 생물학을 기반으로 하는 함석헌의 씨알이해는 색깔을 달리한다.

그 차이는 두 사상가에게서 독특성으로 나타나며, 앞으로 두 사상가의 공통점 못지않게 그 차이에 대한 연구가 요청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석의 씨알사상에서는 ‘얼나’로서 씨알이 자기를 수직적으로 초월하여 하나님과의 합일에 있다면, 함석헌에게 있어서는 씨알 낱알만이 아니라 그가 ‘숲’이라 은유한 ‘생명공동체’의 ‘대각선적 탈바꿈’에 구원이 있다.

금년은 특히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을 맞는 해로서, 과학계와 기독교 종교계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해묵은 논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함석헌은 이미 "뜻으로 본 세계역사" 제1부에서 지질학과 고생물학에서 그동안 이룬 과학적 업적들을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인류의 출현까지를 ‘생물학적 자서전’이라는 작은 제목을 부쳐가면서 씨알을 수십억 년의 생물학적 진화의 유기체 나뭇가지에 갓 피어난 꽃봉오리요 열매로서 파악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역사적 실재’로서 씨알의 진면목을 알려면 지난 인류문명사 5,000년을 뒤져가지고서는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함석헌은 일찍부터 기독교적 성서사관이 말하려는 창조신앙(창조론)과 진화론의 본래 의도가 무엇인지, 그 주장들의 본질과 한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갈파함으로서, 요즘도 시대착오적인 창조론자와 진화론자들의 소모적 논쟁을 일찍부터 정리비판하고 넘어간다. 그의 논지의 핵심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i) 진화라는 말뜻을 분명하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화론이란 생물계의 법칙과정을 설명하는 것이지 결코 존재의 뜻이나 가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리는 것이다.

(ii) 진화의 사실과 진화론 학설과 분명하게 구별하는 일이다. 진화론은 생명이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그 생물의 종류와 생물체의 구조가 복잡해져 있다는 것을 밝히는 사실의 학문 이론이다. 그러나 왜 그러한 진화 사실이 발생하느냐라는 이론에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는 열려진 학문이다. 이 점에선 도리어 과학자들이 엄밀한 과학적 태도를 초월하여 과학을 말하면서 철학적 신념을 자기도 모르게 혼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iii) "성서"를 경전으로 삼는 기독교 신자 절반이상이 과학과 신앙을 혼동하며, 성경을 과학교과서처럼 생각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난센스이다. 성서는 신앙의 진실을 고백하는 책이다. 이 우주발생과 생명진화가 단순한 우연과 필연의 산물이 이거나, 유물론적 환원주의 생물학자가 주장하는 것 같은 물질법칙 그 이상의 뜻과 의미가 있는 창발적인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화론을 배워서 무신론에 빠지기보다는 도리어 만물은 한층 더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낼 것이므로 점점 더 경탄.외경의 념(念)을 가지게 한다. 영적 생명에 대한 확신을 점점 더 깊게 한다. 진화의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생명은 발달하는 것이요, 다시 이보다 더 높은 것이 있을 줄을 믿게 된다. 혼돈한 중에서 물질이 형성되고, 물질 위에 생명이 있으며, 생명위에 의식이 있으며, 의식 위에 양심이 있으며, 다시 그 위에 영적 생명이 나타남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계를 길고긴 진화과정으로 보고, 앞으로도 생명의 비약에 의한 진화가 있으리라 믿는다.

위의 인용문에서 확실하게 보듯이, 함석헌은 베르그송과 테야르 드 샤르댕을 비롯한 생명의 창발적 진화론자들과 함께, 우주는 완성된 우주(cosmos)가 아니라, 창발적인 약동 중인 우주생성(cosmogenesis)이라고 보며, 그 과정의 끝점에 나타난 인간과 씨알도 더 높은 물질적이고도 영적인 존재로 진화해 갈 것으로 본다. 씨알은 단독자가 아니라, 긴긴 생물학적 진화과정에 핀 존귀한 꽃이다. 그 개체의 나이는 어머니 수태 이후 몇십 년이 아니라, 적어도 생물의 전 진화과정을 그 안에 나이 먹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부터 있는 자들”이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개체적 자아로서 씨알은 철저하게 우주 생명진화와 뗄 수 없이 연계된 영육통일체로서 ‘몸으로서 생명체’이기 때문에, 육체/정신 이분법이나, 자연/역사 이분법이나, 개체/전체 이분법적 사유체계는 용납되지 않는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경제정치철학, 몸 없는 심령주의 초월종교, 자연을 버린 역사주의 서구신학, 역사의 창발성을 부정하는 순환론적 동양자연주의도 모두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된다. “변하는 역사는 한개 자람이다. ……역사는 영원의 층계를 올라가는 운동이다……. 생명은 진화한다. 적게 보면 되풀이하는 듯하면서 크게 보면 자란다.” (김경재, 내일 계속)

김경재 교수의 함석헌을 말한다.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 교수님은

-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
- 한국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역임
- 한국문화신학회 회장역임
- 현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신학)


- 대표저서: <이름없는 하느님>, <해석학과 종교신학>, <아레오바고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
/김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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