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종교

[김경재 제4강] 마음과 종교적 실재와 만남 구조

by anarchopists 2020. 1.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9 14:59]에 발행한 글입니다.


마음과 종교적 실재와의
만남의 관계구조

함석헌의 종교체험이 매우 주체적이고,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특징을 지니면서도 그의 종교체험은 윌리엄 제임스가 신비체험의 특징으로서 열거하는 네가지 특성들 곧 언표불가능성(ineffability), 순수지성적 특성(noetic quality), 일시성(transiency), 수동성(passivity)과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네가지 특징 중에서도 수동성이 ‘종교체험의 은총사상’으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함석헌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초기 종교시 속에서 뚜렷이 나타나며, 그의 생애 후대에 들어가면서 강조되지는 않지만 없어지거나 취소된 것은 아니다. 「님이 오신다」는 종교시가 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모두 열한개 연(聯)으로 구성된 이 시의 맨 첫 연과 여덟째 연부터 마지막 연까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님이 오신단다, / 길 닦아 예비하자 / 내집에 오시는 님을, / 날 보러 오시는 님을, / 그저 어찌 맞느냐?
.......................................
아이구 임이 오시네 ! / 저기 벌써 오시네 ! / 이를 이를 어찌노, / 어딜 들어오실랄꼬 /
이 얼굴, 이 꼴, 이 손은, 아이 !
...........................
이 애 이 애 걱정마라, / 나도 같이 쓸어주마,/ 나 위해 쓸자는 그 방 / 내가 쓸어 너를
주고, / 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쓸자 닦자 하던 마음 / 그것조차 맘뿐이고 / 님이 손수 쓰시고 / 나까지도 앉으라시니,/
내 자랑이라곤 없소이다, 참 없소이다.
밝히자면서 못 밝힌 방 / 저절로 밝아지고, / 맑히자면서 못 맑힌 맘 / 나중에 맑아졌으니 / 내라곤 없소이다, 님 곁에만 사오리.

위 종교시는 작가의 체험적 수행경험이 시형태로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마음에 임재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는 작가는, 거룩한 님을 모실만한 주체적 책임자로서 준비가 될 수 없는 실존적 체험을 여실히 고백하고 있다. 도리혀, 작가의 종교적 체험의 역설은, 모시려는 님이 직접오셔서 맘의 방을 쓸어주고 닦아내어 주시며 도리혀 “나까지도 앉으라고 하신다”는 체험이다. 위 종교시의 진면목은 마지막 연에 표현되어 있다. 밝히자면서 못 밝힌 마음의 방이 저절로 밝아지더라는 은총의 체험이다. 맑히자면서 못 맑힌 맘이 나중엔 맑아졌다는 고백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신비체험의 특성중 ‘수동성’이 잘 나타나 있다.

종교체험에서 체험자와 만나는 종교적 대상과의 관계가 일단 인식론적 구조면에서 ‘주객관계’구조를 띄지만, 실재적 종교체험 현실 속에서 ‘주객관계’구조의 이분법은 돌파되거나 지양되면서 역설적으로 자리바뀜이라는 체험을 겪게 된다. 특히 셈족계 종교에서는 그 체험이 ‘은혜, 은총’의 임재체험으로 느끼게 된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신과 인간의 관계, 계시와 이성의 관계, 혹은 무한자와 유한자와의 관계를 세가지 양태로 설명한바 있다.

(i) 타율적(他律的, heteronomos) 관계는 전자가 후자에게 보다 강력한 권위를 동반한 힘으로서 임하기 때문에, 후자는 전자에 압도당하지만 ‘낯선 것’으로 느껴지는 권위적 관계이다.

(ii) 자율적(自律的, autonomos) 관계는 후자가 자체안에 지닌 이성의 자율적 법칙에 의지하여, 인간적 이성과 도덕성이 초월적인 것을 규정하는 관계이다. 자유롭지만 깊이가 없는 평면적 관계로서 인본주의가 되고 만다.

(iii) 신율적(神律的, theonomos) 관계는 전자가 후자를 고양시키고 포용하면서, 후자는 전자에 참여하면서 역설적 일치를 경험한다. 낯선 군위에 압도당하는 경험이거나 자유방임적 자율이 아니라, 자유와 사랑 안에서 ‘주객구조’관계가 역설적으로 지양되는 관계이다. 함석헌의 위 종교시는 언듯보면 타율적 관계같아 보이지만, 깊이 보면 틸리히가 말하는 신율적 관계이다. (김경재 내일 계속)

김경재 교수의 함석헌을 말한다.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 교수님은

-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
- 한국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역임
- 한국문화신학회 회장역임
- 현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신학)


- 대표저서: <이름없는 하느님>, <해석학과 종교신학>, <아레오바고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
/김경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