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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종교

[김경재 제3강] 함석헌의 종교체험 특징

by anarchopists 2020. 1.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8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종교시를 통해본
그의 종교체험의 특징


삼백여편 남겨진 함석헌의 시들 중에서, 아래서 택하여 음미하는 그의 종교시들은 네가지 관심에서 선택하였다. 첫째, 시를 짓고 감상하며, 종교적 실재를 체험하고 반응하는 사람의 ‘마음’(정신, 영혼, 내면성, 인간본성) 이란 무엇인가? 둘째, 마음과 종교적 실재(진리자체, 하나님)와의 만남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다시말하면, 사물이나 실재의 인식론적 주객구조(subject-object structure)가 종교적 실재를 경험할 때는 어떻게 변용되는가? 셋째, 종교적 실제를 체험하는 순간, 사람 마음이 겪는 ‘거룩체험’의 현상학적 특징은 무엇인가? 넷째, 그의 종교체험은 일종의 ‘신비적 체험’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특징들 특히 ‘환히 꿰뚫려 비취는 이해의 특질’(noetic quality)과 ‘우상타파의 비판정신’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다섯째, 그리스도인으로서 함석헌의 종교체험에 나타난 범재신관적(panentheism) 특징들은 무엇인가?

3-1. 종교체험의 장소는 마음의 지성소

함석헌의 시집 맨 머리에 실린 시는 ‘맘’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맘은 마음의 준말이요, 육체적 몸과 정신적 마음이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처럼 불가분리적으로 하나되어 있는 실재이다. 맘은 지구행성 역사 45억년의 영글은 결과체요, 하나님이 오직 그곳에만 임하기를 원하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성소이다. 그의 ‘맘’이라는 제목의 시 전문을 아래에서 읽어본다.

맘은 꽃 / 골짜기 피는 난 / 썩어진 흙을 먹고 자라 / 맑은 향을 토해
맘은 시내 / 흐느적이는 바람에 부서지는 냇물 / 환란이 흔들면 흔들수록 /
웃음으로 노래해
맘은 구름 /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 한 때 한 곳 못 쉬건만 / 늘 평안한
자유를 얻어
맘은 높은 봉 / 구름으로 눈물 딱는 빼어난 바위 / 늘 이기건만 늘 부족한 듯 / 언제나
애타는 얼굴을 해
맘은 호수 / 고요한 산 속에 잠자는 가슴 / 새벽 안개 보드라운 속에 / 헤아릴 수 없는
환상을 길러
맘은 별 / 은하 건너 반짝이는 빛 / 한없이 먼 얼굴을 하면서 / 또 한없이 은근한
속삭임을 주어
맘은 바람 / 오고감 볼 수 없는 하늘 숨 / 닿는 대로 만물을 붙잡아 / 억만 가락 청의
소리를 내
맘은 씨 / 꽃이 떨어져 여무는 씨의 여무진  /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 또 온갖
형상의 어머니
맘은 차라리 처녀 / 수줍으면서 당돌하면서 / 죽돌고 지키면서 아낌없이 바치자면서 /
누구를 기다려 행복 속에 눈물을 지어

위의 ‘맘’이라는 제목의 종교시는 함석헌의 대표적 종교시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시가 지니는 음악적 율동과 더불어 상징과 은유가 신선하고 풍요롭다. 그러면서도 일상성에 붙잡혀 아웅다웅하며 살고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홀연히 맘이 지닌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와 열정에 후다닥 눈을 뜨게 만든다. 작가는 맘을 꽃, 시내, 구름, 산봉우리, 호수, 별, 바람, 씨, 처녀라는 아홉가지 실재에 은유적으로 빗대어 아홉연(九聯)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서정시를 작시하였다. 단순히 서정적으로 맘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은유를 통하여, 함석헌은 훗날 그의 사상의 발전과정에서 펼쳐나갈 모든 사상적 기본요소를 압축하여 표현한다.

석경징의 말대로 함석헌의 서정시 안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심원한 생각 곧 종교적 사상의 씨가 함축되어 있다. 맘을 자연속에서 취한 아홉가지 실재에다 비유하면서 작가는 맘이 지닌 역사적 향기, 환난속의 노래, 변화속에서 평안한 자유, 만족을 모르는 열망, 비젼의 환상, 심원한 이상, 순간속의 영원, 끝과 시작, 지킴과 내어줌을 노래한다.
‘맘’이라는 시는 구원, 타락, 해탈, 죄, 속량, 하나님, 어린양, 연꽃, 십자가등등 종교적 어휘는 한마디도 나타나지 않지만, 언듯 들으면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 처럼 느껴지는 이 시 속에 심원한 생각의 씨를 배태하고 있어서, 독자들의 마음에 그 씨를 심어주는 힘을 갖는다. 특히, 이 시의 맨 첫 연(聯) 마지막 부분 여덟째 연에서 그렇다.

‘맘’이라는 시 첫 연에서 작가는 맘을 꽃에다 비유하되 특히 골짜기 피는 난(蘭)에 비유했다. 난초가 주는 청순하면서도 굳세면서도 우아한 기품을 풍기는 아름다움을 드러냈다.그런데, 이 난(蘭)이 “썩어진 흙을 먹고자라 맑은 향을 토해”라고 노래함으로서 마음이 ‘유아론적(唯我論的) 형이상학의 실재’가 아니라 “썩어진 흙”으로 상징되는 온갖 문화역사적 유산과 영향을 받고서 형성되고 존재하며 새로운 창조적 향기를 발하게 되는 ‘관계론적 실재’임을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위대한 개인의 정신도 혼자서 잘나 된 것 아니라는 말이다.

‘맘’이라는시 여덟째 연에서 작가는 맘을 씨알에 비유함으로써, 그의 씨알사상의 배아(胚芽)를 나타내 보였다. 씨알은 “꽃이 떨어져 여무는 씨의 여무진 알이요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또 온갖 형상의 어머니”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작가는, 맘과 씨을 동일시하면서 그 맘이란 식물의 성장과 시작의 알파와 오메가이듯이, 45억년지구 생명 진화과정의 마지막 영근 열매요, 또 앞으로 전게될 새로운 영적 삶의 시작 점임을 갈파한다. 이 씨알이 망하면 모든 것이 헛일이 된다. 씨알속에 참 생명의 유전인자가 영글게 되어있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은 움터나오지 않는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맘(心)이 곧 중생심(衆生心)이요, 중생심이 곧 부처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생명의 영글음인 참 씨알에서 창조의 결승점과 새로운 영적도약의 시작점을 갖는다.

함석헌에게서 맘은 종교적 체험이 일어나는 절대자와의 유일한 접점이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라는 제목의 종교시도 아홉연으로 구성된 시인데, 그 첫째연과 마지막 두 연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 지붕밑도 지하시도 아니요, /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 맘의 네 문 밀밀히 닫고 /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버린 후 /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면 /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함석헌의 종교체험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실재적 종교체험자들이 체험하듯이, 궁극적 진리체험은 매우 주체적인 내면적 맘의 깊은 곳에서 체험되는 것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함석헌이 집단적 인격체성, 역사적 현실, 공동체의 책임과 운명등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집단이나 생명체의 구조적 조직체가 ‘궁극적 실재’를 심원하게 인격적으로 경험하거나 응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종교체험을 경제, 정치, 사회, 문화활동에서 심원하게 가질수도 없다고 본다.

아무리 ‘성속일여’(聖俗一如)를 말하고 역사참여를 말해도, 종교적 체험은 인간 개체의 맘의 깊은 곳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이 말은, 정치,경제,사회라고 요약되는 삶의 현실성과 종교적 영성이 아무런 관계없다는 말이 아니다. 정치적 사회적 현실속에 거룩한 것의 임재를 경험하더라도, 항상 개인 개인의 맘의 지성소를 통하여 거룩한 실재를 체험한 정치인과 사회인의 응답적 참여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란 말이다. 집단과 군중의 이름으로서, 그런 것의 크기와 거대함 속에서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집단심리적 과잉반응과 ‘국민의 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신의 소리’ 라고 우겨대는 모든 집단주의적 사이비종교에 함석헌은 저항한다. (김경재, 내일계속)

김경재 교수의 함석헌을 말한다.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 교수님은

-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
- 한국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역임
- 한국문화신학회 회장역임
- 현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신학)


- 대표저서: <이름없는 하느님>, <해석학과 종교신학>, <아레오바고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
/김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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