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박석률 선생 칼럼

기회주의적 선거엘리트는 가라

by anarchopists 2019. 1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11/18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져 봐야 야당밖에 더 하겠느냐?-
선거 공약, 정책에서 줄여 먹지 말아야 할 것들

대선 후보 등록을 며칠 앞두고 있다. 어느 후보 캠프에선가는 사석에서 "이렇게 모욕당하느니 차라리 우리끼리 새누리당 박후보와 맞장 뜨자. 그래봤자(져 봤자) 우리가 야당 밖에 더하겠느냐?"라는 격앙된 말이 나왔다고 일부 언론이 전한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한 후보들의 정신에 위배되는 말이 혹여 선거 참모들로부터 나오면 안 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후보 캠프에 있는 사람들이 엘리트의식에 빠져드는 순간 다수 국민 앞에 서야 한다는 공직자의 기본자세 일탈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선거 엘리트들 때문에 국민들이 피해를 보아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결국 정치적 무관심, 정치적 무당층이 증대하는 것이다. 국민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라! 야당 돼서 다수 국민들의 바램대로 그 이익을 지켜줄 수 있었나? 의원들도 엘리트라고 부른다. 제도권 정치판에 가면 참모들까지 거의 다 엘리트들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져봤자 야당밖에 더 하겠느냐?
역사에 대한 무지이고, 현실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 결여의 표본쯤 된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은 그런 야당 바라지 않는다. 과거 삼당 야합으로 태어난 거대 여당도 바라지 않지만 절체절명의 사명감을 포기하고 당리당략에 빠져 시대적 사명을 져버린 그런 야당도 바라지 않는다.

야권 문-안 후보 양쪽 진영 누구든 자기들만의 엘리트 의식에 빠진 나머지, 주권자인 국민이 주인 노릇 못하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말로만 진보정책을 선전하고 실제 행동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을 케비어(철갑상어알) 좌파라고 한다. 당장 굶어 죽을 위기에 몰린 절망가족, 절망세대가 곳곳에 널려 있는 현실 타개에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양심적이라고 착각하고 말만 흉내 내는 진보인사들을 부르는 말이다.

이 나라 선거판에 나타난 개혁 진보인사들 중 어디엔가는 이런 케비어 좌파도 있고, 엘리트 의식에 빠져 대중 앞에 복무해야 한다는 기본에서 일탈해 당리당략에 사로잡힌 수준 밖에 안 된 인사들도 어디에선가는 활개치고 다니고 있다. 후보들조차 대중과 더불어 긴 시간, 긴 호흡으로 같이 해오며 고락을 같이 함으로써 하는 검증 기간을 충분히 갖지도 못하고 무대에 오를 수도 있다.

학자와 전문가들이 모법답안 만들 듯이 하는 정책 비전, 정책 선언만 가지고는 모른다. 대중들과 더불어 자리하는 합동연설 자리도 없어졌다.(금전으로 유권자를 동원한다는 이유에서 였다) 선거판에 나가려면 많은 기탁금을 선관위에 내야 한다. 진보적인 무소속이나 소수야당 후보로서는 진입장벽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당의 설립은 일정요건을 충족시키면 국가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 허나, 공영 방송의 후보초청 TV 토론의 자리에는 새로 생긴 당 후보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 비례대표 수를 아무리 늘려도 그것은 기존 정당들끼리 나누어먹기 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사회 경제적 약자, 소수자, 장애인의 이익을 직접 대변하는 정당이 있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신생 정치세력들의 제도권 정치 진입이 어렵도록 되어 있는 현실을 타개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쉽지 않다. 국가가 선거공영제를 하려는 취지는 실제 숫자는 다수이지만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소수파 야당을 위한 기회의 배려도 포함돼 있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 축소는 소수 야당, 신입자들에게 진입벽을 높이려는 것으로 결과할 수 있다.

인기 있는 정치인들끼리는 선거 시에 국가에서 주는 선거보전금을 받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후원금을 모으는데 제한이 없고, 후원금만으로 선거를 치르고자 하는 정당은 선거 끝나고 국가로부터 선거보전금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런 실정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고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축소를 외치면, 정치신인들에게 진입벽을 높이는 결과로 될 수 있다.

비례대표제를 잘 하려면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는 여러 집단들과 소외되어 온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두루 진출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면 양대 정당의 비례후보만으로는 사회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진입기회 제한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참여민주주의라는 취지에서 본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의 설립과 활동이 자유로워야 하고, 이 약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에서 직접 후보들을 낼 수 있도록 선거에서 제한이 철폐되는 것이 더 좋다.

그러나 1991년 지자체 선거가 부활 된 이후의 역사만 보더라도 거대 양당 구조 하에서 신생소수파 정당, 시민사회 무소속들이 미는 정치신인들에 대한 진입벽이 얼마나 높은 채로 유지돼 왔는지 너무 명백하다 할 것이다. 거대 양당 후보 말고는 소수파 정당의 후보는 인지도면에서 언제나 열세를 면치 못해 왔다. 기득권을 가진 양당 후보 되려는 자들에겐 정책 보고, 당원 대회를 통해 홍보를 하는 등 얼마든지 많은 기회가 보장돼 있으나, 소수파 정당에서 제도권에 신입으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은 애초에 자기를 홍보하려는 자리가 마땅하게 없었다.

시민사회에서 무소속으로 나서려면 그런 기회는 더욱 진입벽에 가로 막혀 있었다. 기초 단체의 장과 의원 선거에서 정당 추천을 철폐하자는 것이 국민의 직접정치 참여의 기회를 늘리는 방안으로 제시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 신인으로 진입하려는 자들에겐 법정 선거비용의 축소는 선거 연설 기회의 제한 만큼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TV를 통한 토론 말고는 후보들끼리의 합동 토론을 없앤 것도 국민의 직접정치 참여차원에서 본다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측면이 많다. 대중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에서 후보(되려는) 자들이 대중들과 함께 만나서 할 토론 연설 기회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것은 민주주의가 발달해온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중들과 더불어 만나는 자리에서 합동연설회를 하지 못하도록 선거법을 바꾼 것은 거대 집권세력의 동원 선거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성당원, 정책 당원제를 아무리 추진한다 해도, 몇 년 전에 정당의 기초인 지구당을 법적으로 폐지해 놓고서 어디 가서 민의를 수렴하는 진성당원, 정책 당원을 구할 것인가? 또 그런 정책 당원 진성 당원들은 누구의 의견을 집약해 나올 것인가? 자기들 주변 몇 사람들로 구성되는 서클 수준의 의사를 대변해서 나올 것인가?

대중들과는 따로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책상에서 만들어 내 정책 제안하는 정책당원을 말하는 것인가? 풀뿌리 민주의의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정당 조직이나, 시민 사회 단체의 토대 위에서라야 만이 내실 있게 가능할 것이다. 중앙당의 축소 못지않게 기초지자체 범위의 지구당 활동 및 시민 사회단체의 활동이 네트워크화 될 수 있어야 풀뿌리 민주주의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선거엘리트들이 자기들끼리 져봤자 야당 밖에 더 하겠느냐는 망언이 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은 독재정치 하에서 무수히 많은 고통을 받고도 이만큼 버텨왔다고 할 수 있는 데, 거기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부류가 있다. 바로 기회주의적 선거 엘리트들은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무력하고 무기력한 야당이 언제 대중의 절실한 이해 요구를 대변해서 싸워 준 적 있나.? 대중의 이익을 위해 싸운 민주인사, 민주투사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선거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작금의 엘리트 행세하는 자들과는 애초에 다른 성격의 대중들이었고 그 한 사람들이었다. 국회의원도 엘리트이고 선거참모들도 엘리트이고, 대통령도 정치엘리트이다.

선거엘리트들이 대중의 이익을 팽개치고 그까짓 야당밖에 더 하겠느냐는 망언에 한 순간이라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대중의 이익을 떠난 그런 부류의 엘리트들은 역사가 단죄할 것이다.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인 다수를 대변하려는 정치신인들에게 진입제한을 해온 것은 거대 양당의 기득권 유지로 결과 되는 것 밖에 안 된다. 시대 역행적, 직접민주주의 참여에 역행적인 이런 저런 실책들로 아픔을 겪어온 것은 오로지 다수 대중, 민중이었다.

그러나 그런 민중에 의한 심판이 오늘날 새 정치로의 바램을 불러 오는 것만큼이나, 다수 대중 민중을 망각하려는 자들에 대한 심판도 어느 날엔가는 역사적으로 이루어질 날이 도래한다는데 높은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2012. 11.17, 박석률)

박석률 선생님은

▲ 박석률님
박석률 선생님은 74년 민청학련사건에 관련되어 옥살이를 했다. 석방 이후에는 한국진보연대를 통한 민주화운동,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공동대표 등을 통한 민족통일운동을 계속해 오다가 지금은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사월혁명회, 평화와 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에서 민족, 민주, 통일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생명평화경제만민포럼" 대표이다. 저서로는 한반도의 당면 과제인 북핵문제와 관련해 펴낸 <자주와 평화, 개혁으로 일어서는 땅>(백산서당, 2003)과 <자주와 평화 누가 위협하는가> (풀무 2002), <씨알의 희망과 분노>(공저, 동연, 2012)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