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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전쟁은 더 이상 안 된다.

by anarchopists 2020. 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08 07:51]에 발행한 글입니다.


전쟁은 더 이상 안 된다.

참으로 안타깝고 나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천안함사건(2010.3.26.) 이후 정부는 “대북심리전을 ‘전단지 작전’, ‘확성기 설치’, ‘라디오방송’ 3가지로 준비해 왔다.” 또 “북한이 추가로 도발하면 본격적인 심리전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것이 실행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군 관계자는 7일 “심리전 일환으로 추진된 대북전단지를 연평도공격 이후 계속 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아시아경제》, 12.7) 참으로 한심한 한반도라는 생각이 든다. 북은 남에 대하여, 남은 북에 대하여 고것밖에 못하는가. 이 기회를 빌려 국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고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보자, 고대는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근대 이후 역사학자들이 권력이 존재하는 울타리에 ‘국가’(國家, 일본 학자가 번역한))라는 명칭을 부치면서 우리는 인민을 다스리는 권력조직과 구조를 갖추고 있는 사회를 국가라고 불러왔다. 국가의 발생 초기는 권력을 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었다. 바로 왕(King)이다. 그리고 왕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하여 권력의 일부를 관료라는 조직을 만들어 그들에게 위임하고 국가의 이익=자신의 이익으로 일치시켜왔다. 그러니까 고대로 올라갈수록 국가의 이익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왕은 자신의 (합법적) 이익추구를 위하여 이웃 영토를 침범하여 빼앗고(이것이 전쟁의 시초다) 더 많은 영토와 인민의 확보를 통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해 왔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을 한 사람과 그를 추중하는 관료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국가구성원인 인민(市民)들은 국가의 이익을 독점하는 왕과 관료들을 몰아내고 인민 중심의 국가를 만들어냈다. 바로 18세기 시민혁명이다. 이후 국가구성원의 명칭은 시민이 되었다.

그러나 시민은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자본주의국가를 만들고 왕을 대신하여 자본가 중심의 시민독재국가를 만들었다. 이것이 서구유럽이다. 그러자 자본주의권력에 반대하여 20세기 초, 평등ㆍ평균의 구호를 내걸고 사회주의혁명이 러시아에서 성공하였다.(1917) 그리하여 자본주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유주의국가와 사회주의 권력을 휘두르는 공산주의국가라는 양대세력이 힘 겨누기를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구유럽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동서이념이 생겨났다.이 때문에 세계 인민들을 전쟁의 위협 속에서 괴롭게 살아야만 했다.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이 대표적이다.

평등ㆍ평균의 사회건설을 부르짖는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되었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이익범위를 넓히기 위하여 자본주의 국가와 힘 겨누기를 하게 되자, 이 때문에 사회적 불안과 전쟁의 위험이 세계 곳곳에서 도사리게 되었다. 곧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건설을 위해 동구유럽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 인민들은 전쟁의 공포 속에 희생을 당해왔다. 자기모순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들은 분노하였다. 그리고 봉기했다. 이 결과 사회주의 국가들도 평균과 평등의 해답을 주지 못한 채 자기존재를 마치게 되었다.(1989) 이에 영향을 받아 아시아에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사회주의식 시장경제’를 실험하여 성공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북은 ‘내재적 논리’(송두율, 1988)에 의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적 ‘3대세습독재’가 생겨났다. 그들은 시회주의 국가의 주인은 인민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내재적 논리라고는 하지만, 인민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 인민들은 세습독재를 위해 존재한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독재자들은 국가내부의 문제가 발생하면, 인민들의 관심을 국가 밖으로 집중시킨다. 바로 대외전쟁과 주변국가와 충돌유도 등이다. 한반도의 남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그래서 자유선거라는 형식을 통하여 국가통령을 뽑는다. 이 때문에 과거처럼 1인 독재자는 안 나타지만 당에 의한 권력의 세습독재는 존재한다. 그래서 당의 세습독재를 획책하는 독재자들은 내부정책의 실책을 호도하고, 감추기 위해 국민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는 술책을 자주 쓴다.

그런데 오늘의 한반도 남과 북은 다 같이 국가 내부의 문제가 심각하게 누적되어 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두 사회내부의 문제가 놓여있을 때, 묘하게도 천안함 사건과 11.23연평도 피격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남과 북이 오늘의 전쟁불안을 서로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이것은 비참한 한반도를 만드는 창피함이다. 한민족의 수치다. 서로 국가권력의 안위만을 생각할 뿐, 국가구성원의 행복과 평화는 생각지도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더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의 공포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 마디 해야겠다. 이제 국가는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기구여야지, 국민의 행복을 담보로, 그리고 전쟁을 막는다는 구실 아래 전쟁분위기를 다시 만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북도 마찬가지다. 국가안위와 자위권을 구실로 내부문제의 모순을 숨기고 인민을 호도하는 전쟁분위기를 만들어가서는 안 된다.

벌써 세계는 민족주의를 넘어서 세계동포주의로 나가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의 우리는 아직도 민족주의조차 완성하지 못했다. 그런 마당에 외세의 조종에 이끌려 전쟁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면 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세계동포주의 속으로 우리 후손들을 어떻게 내보낼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앞으로 시대는 경제부흥의 시대가 아니다. 문예부흥의 시대다. 곧 인문주의시대다. 그런데 아직도 경제부흥에만 눈이 멀어 경제력에 의존한 국가건설만 부르짖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민족을 통일해야만 우리는 민족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동포주의에 합류할 수 있다. 한반도 남과 북의 권력자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하루 빨리 전쟁분위기를 일소하고 평화의 한반도를 건설해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0.12. 8일 새벽,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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