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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수탈수단의 진화와 저항형태의 둔화

by anarchopists 2019. 1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3/25 07:14]에 발행한 글입니다.


수탈수단의 진화와  저항형태의 둔화
전봉준의 무장기포(1894.3.20.)와 관련하여

1894년은 한반도의 마지막 왕조국가 조선 말기에 해당된다. 세계열강이 영토 확장과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확대하기 위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하던 때이다. 이미 아메리카는 15~16세기에 유럽에 의해 짓밟히면서 인종변종(Mestizo: 혼혈)까지 당한 처지이다. 유럽이 아메리카를 짓밟은 후, 그들은 다시 자본주의 확장을 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그 마수를 뻗치고 있을 때다. 그러나 왕조국가 조선은 이러한 세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안동김씨와 전주이씨 왕실과 대립, 여흥민씨와 대원군의 대립 속에 관료들은 당파를 만들어 자기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하였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에 눈을 돌릴 겨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사대주의 친청(親淸)권력인 여흥민씨세력(사대당)을 몰아내려는 친일적 소장개혁세력이 일으킨 개혁운동(갑신정변, 1884)이 있었다. 그러나 여흥민씨세력이 자기권력 유지만을 위하여 조선의 운명은 생각지도 않은 채, 청나라를 끌어들임으로써 개혁운동은 실패하였다. 이 여파로 중국 청(淸)나라와 일본 왜(倭)의 군사적 내정간섭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곧 청·왜의 텐진조약(天津條約,1885. 4) 체결이다. 이 때문에 청과 왜 군대의 조선침략을 가능케 하였다. 바로 여흥민씨세력에 의한 나라멸망이 재촉된 셈이다.

나라꼴이 이러니, 지방수령들도 이씨왕실이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방수령이라는 것들이 이씨왕실의 명으로 지방을 다스리고 있는 자들이니, 자연 자신이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들을 하고들 있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나라 살리는 생각을 할 까닭이 없다. 제 뱃속 밥그릇 채우기는 게 상수(上手)다. 당연한 이치까지는 아니지만, 나라사람들을 다스린다는 놈들의 머리구조가 대체로 그렇다는 거다. 이 중에 큰 아버지(조두순趙斗淳, 1796~1870)가 영의정을 지낸 집안의 풍양 조씨 조병갑(趙秉甲)이라는 아주 나쁜 관리가 전라도 고부군수를 맡고 있었다. 이놈은 진짜 나뿐 질만 골라서 했다. 오늘날 다는 아니지만 국정책임자라고 하는 자들처럼 제 뱃속만 챙겼다. 부친의 비각(전북 신태인 피양정을 말함)을 세운다고 금품(1000여량)을 강제로 징수하지 않나. 여러 가지 있지도 않는 가공(可恐)의 죄(불효죄, 불목죄(不睦罪 마을사람들과 어울지 않는다는 것), 음행죄(淫行罪 다른 남여와 놀아났다는 것), 잡기죄(雜技罪 오락과 도박을 했다는 것)를 물어 백성들의 재산을 강제 몰수하였다. 그 중 가장 나쁜 것이 물세의 징수다.

고부지역 북쪽에는 멀리서 흘려들어오는 정읍천과 태인천이 만나 두 물머리를 이루는 동진강(東進江) 본류가 흐른다. 이곳에 진작부터 주민들이 논농사를 짓기 위해 만들어놓은 저수지(이를 보洑라 한다)가 있었다. 그런데 조병갑은 군수로 오면서 멀쩡한 이 보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보를 만들었다. 4대강 개발(=파괴)의 원조격이다. 조병갑은 이 보의 이름을 만석보라 하였다. 이 저수지를 통해 만석(萬石, 석은 섬이라고 하며 한 섬은 10말 1가마니를 말한다. 만석이라는 말은 엄청난 양의 쌀을 생산하게 된다는 뜻이다)이나 되는 곡식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 그 대가로 고부군에 살고 있는 나라사람들에게서 물세(水稅)를 걷어 챙겼던 거다.

이러한 만석보 쌓아 이익을 챙기는 짓거리가 진화하여 4대강 개발을 낳았다. 오늘날은 나라사람을 벗겨먹는 수탈의 짓거리도 진화하고 있다. 직접 나라사람들을 벗겨먹는 짓거리가 옛날 수법이라면, 지금은 간접수탈의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곧 4대강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4대강에 보를 쌓는 토목공사를 일으켜 개발이익과 뇌물을 챙겨먹는 수탈방법이다.

옛날에는 권력자들의 직접적 수탈방법에 저항하여 나라사람들의 직접적 저항이 있었다. 곧 전봉준(全琫準, 1855~ 1895)이 이끄는 고부군민들의 투쟁이었다. 이게 무장기포(茂長起包, 1894 3.20)다. 그런데 오늘날은 나라사람들이 간접적 수탈에 대한 불이익이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은 까닭인지 이명박이 임기 마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였다. 이런 저항할 줄 모르는 세태 탓으로 권력자들의 나라사람 벗겨먹는 수탈의 수단도 진화하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나라사람들의 저항형태는 진화하지 않는다.

이제 나라사람들도 권력자들의 나라사람 수탈수단의 진화에 대응하여 저항형태의 진화를 모색할 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봉준 등이 백산에 호남창의대장소(湖南倡義大將所)를 설치하고 무장기포 때 날린 사발통문(沙鉢通文)의 내용을 전하면서 글을 마친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하다고 여기는 것은 인륜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오늘 신하(臣下)된 자들은 보국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한갓 녹봉(급여)만 도적질하여 총명을 가리고 아부와 아첨만을 일삼아 충성으로 간하는 말을 요언(妖言)이라 이르고 정직한 사람을 비도(匪徒)라 하니 안으로는 보국(報國)의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을 탐학(貪虐)하는 관리가 많도다.... 8도가 마음을 합하고 수많은 백성이 뜻을 모아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으로써 사생의 맹세를 하노니, 금일의 광경은 비록 놀랄만한 일이기는 하나 경동하지 말고 각자 그 생업을 편안히 하여 함께 태평세월을 빌고 임금의 덕화를 누리게 되면 천만다행이겠노라.” 갑오년 3월 20일.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어떻게 이 말이 오늘날과 똑같은 지.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요언(긴급조치 위반, 국보법 위반)이요, 올바른 사람들은 비도(빨갱이, 종복세력)이다. 조·중·동과 같은 엉터리 언론과 수구세력들만이 보국인재(報國人材)가 되는 세상이 되었구나.(2013. 3.20 황보윤식)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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