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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들

by anarchopists 2019. 11. 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3/2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들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는 핵안보정상회의는 총 53개국에서 참가하였다. 핵테러에 대한 국가 안보를 다지는 것을 골자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회의는 다만 핵과 관련된 사안만 처리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필자는 핵안보를 위해서 각국의 정상들이 모인 자리가 다수의 선진국의 결속을 확인하고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더욱이 핵 안보(security)라고는 하지만 핵의 안전성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국에서 운영 중인 핵의 안전성 자체가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초래되는 핵 안보에 대한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 사전에 예방하자는 논의는 회의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얘기일 수도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그 복구와 피해는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핵 안보라는 것을 단순히 자국의 핵시설을 폭파하고 핵테러를 불사하는 익명의 불순한 자들에 대한 경계와 정보나 주고받는 자리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심도 있는 내용들이 다루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핵에너지로 인한 산업 발달이나 원자력을 통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선진국으로 인해서 인접 다수 국가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상호 안전성에 대한 논의들도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의 정보를 현재에 보존하여 그 흐름을 통해 미래를 예견하고, 현재의 경험을 통하여 미래의 기억까지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기억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현재의 우리 삶의 가능성을 예측하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기억은 현재와 미래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점치게 만드는 가능한 위기, 위험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핵 자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그러한 반성과 성찰이 없이 진행되는 회의라면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는 근본적으로 올바른 방향성을 잡고 논의되리라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함석헌은 “세계가 앓고 있다. 유마(維摩)는 중생의 병을 앓았다지만, 우리야말로 세계의 죽을 병을 앓아야 한다. 앓는 것이 아는 일이요, 알면 살아날 것이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역사와 민족 9」』, 한길사, 1983, 284쪽)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 시대는 지금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문제는 그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 하는 사실 뿐이다. 만일 알고 있다면 처방만 잘 내리면 될 것이다. 그러면 병도 고치고 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앓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인류가 살아날 확률이 많을 것인데,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으면서 각국이 경제적 가치만 생각하고 여전히 핵을 고집하고 있다면 살아날 가망성이 줄어드는 것이리라.


지금 핵안보정상회의는 바로 인류 전체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도 핵으로 인해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책과 결단들이 필요한 것이다. 인류 전체가 병을 앓고 있고, 앞으로 그보다 더 심각한 병에 걸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핵을 포기하거나 대안 에너지를 개발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어떻게 인류 전체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함석헌은 거듭해서 말하고 있다. “곡성직상간운소(哭聲直上干雲霄)라, 씨알의 부르짖는 소리는 사뭇 하늘을 뚫고 올라간다... 오늘은 그보다
더 악독한 것들이 지구를 나사로 조이고 허공을 독기로 덮고 대양에 독약을 흘려 넣어 생명의 씨를 온통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다. 누가 이것을 우주에 외치며 한 삶의 주인에게 호소할 수 있을까?”
(함석헌, 『함석헌전집 「역사와 민족 9」』, 한길사, 1983, 285쪽)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지금,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죽어간 이들과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의 곡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 벌어진 생명 현상에 대한 아수라장은 현재에 기억으로 보존될 뿐만 아니라 상상과 가상의 사건으로 우리 앞에 늘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정확한 사건과 날짜가 각인된 핵의 역사요, 인류 죽음의 역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함석헌은 말한다. “세계 장래의 운명은 생각하는 씨알에게 맡겨진 것이다. 그렇다. 생각하는 씨알이다. 생각밖에 못하는 것이 씨알이요, 생각해야만 씨알이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역사와 민족 9」』, 한길사, 1983, 285쪽) 핵안보정상회의라고 해서 핵의 문제는 이른바 국가의 수장들에게 맡겨 놓을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제 씨알의 기억 속에 각인된 사건들은 곧 우리의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자각과 함께 핵의 안전성에 대한 회의를 품고 세계의 씨알로서 세계의 운명과 세계의 생명 현상의 지속을 위해서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여겨진다.

*위 이미지들은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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