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4

종교의 정당성과 공존, 그리고 종교 너머에 있는 초월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1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의 정당성과 공존, 그리고 종교 너머에 있는 초월자 종교는 타자로부터 용인되어야만 하는가? 다시 말하면 종교는 자체의 정당성이나 자존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그 정체성을 부여받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서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는 “우리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와 다른 개별적 전통들을 연구할 수도 있으며 또 연구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만이 우리의 해석은 한 가지 신앙의 통찰력과, 힘과 타당성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동시에 모든 신앙의 사실들도 정당하게 취급할 수 있을 것이다.”(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2019. 11. 18.
하느님(초월자)의 관심사는 종교가 아닌 인간의 인격체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2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하느님(초월자)의 관심사는 종교가 아닌 인간의 인격체 종교는 종교의 지양(止揚, Aufhebung)이어야 한다. 여기서 지양은 ‘부정하다’, ‘보존하다’, ‘높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종교의 종교 지양은 종교라는 개념에 종교가 제한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바로 이러한 논조의 종교 관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앙은 깊은 개인 인격체적인 것이며 역동적이고 궁극적인 것으로서 고뇌나 탈아적 상태, 혹은 지적 양심이나 단순히 일상적인 가사들 속에서 한 인간을 온 우주의 하느님과 연결시켜 주며 또 그의 고통 받는 이웃과 연결시켜 주는 직접적인 만남이다. 즉 그 이.. 2019. 11. 15.
종교 그 자체보다 종교적 삶이 더 중요하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2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 그 자체보다 종교적 삶이 더 중요하다! 종교는 삶의 일부이다. 물론 종교인에게 있어서 종교란 삶의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종교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와 삶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종교는 분명히 인간의 삶의 문화적 양식으로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정신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종교인에게 있어 종교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종교와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삶은 종교적 삶이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종교적 가치관, 종교적 윤리, 종교적 인생관 등 종교는 삶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종교를 .. 2019. 11. 15.
종교 개념 대신 신앙과 축적적 전통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2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신앙과 축적적 전통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종교라는 개념 대신에 ‘신앙’(faith)과 ‘축적적 전통’(cumulative tradition)으로 대체, 설명할 것을 제안한다. “신앙이란... 개인 인격체적 신앙을 뜻한다.” 반면에 “‘축적적 전통’이란 연구 대상이 되는 공동체의 과거 종교적 삶의 역사적 축적물을 구성하는 외적․객관적 자료의 전체 덩어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원, 경전, 신학적 체계, 무용 양식, 법적 혹은 그 밖의 사회제도, 관습, 도덕적 규범, 신화 등을 가리킨다. 즉, 한 인격체나 한 세대로부터 다른 인격체와 다른 세대로 전수되는 것으로서, 역사가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Wilfre.. 2019.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