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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5

내 영혼이 치닫는 날 내 영혼이 치닫는 날 야훼는 인간의 영혼에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우리 인간은 이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일컬어져 왔습니다. 도구를 쓸 줄 알고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특수성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전제들이 하나둘씩 깨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고, 인간도 최상위의 포식자로 군림할 수 없는 나약한 동물이나 사물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고이래로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종교들은 인간이 영혼을 지닌 특별한 존재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그 영혼은 불멸한다고 믿고 죽은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바다가 토해 내는/ 아픈 기침 소리에/ 새벽이 눈을 뜬.. 2021. 1. 18.
신앙이 피곤할 때(languor; fatigatio) 신앙이 피곤할 때(languor; fatigatio) 신앙은 해방입니다! “인격을 수양하지 못하는 것(덕을 닦지 못함),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는 것, 옳은 일(의로움)을 듣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걱정거리다”(子曰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 3장). 공자의 말입니다. 이처럼 신앙도 말이 아니라 수양이고 행동입니다. 덕행을 닦고 옳지 않음(不善)을 피하는 것이 신앙인의 행위(opus), 신심 행위(opera pia)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믿고 따르고(Patrem invocatis) 하는 모든 행위에는 부르는 자의 몫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자신을 어떤 호칭으로 부르도록 했다는 것 또한 스스로 그러한 위치에.. 2020. 4. 27.
시들지 않는 구원이여 시들지 않는 구원이여 믿음이 있는 사람은 희망을 봅니다! 사람들은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자그마한 희망(spas, spem)이라도 찾으려고 합니다. 희망에 작은 것과 큰 것을 나눈다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희망은 상대적입니다. 절망적인 죽음의 상황에서 보면 작은 것도 큰 희망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희망을 품으면서 그 근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희망의 실체인 것처럼 믿어버립니다. 희망이 갖는 의미와 그 영원성에 대해서는 사유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시적인 나의 절망적 상황만을 타개한다면 희망의 구실을 다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희망은 어떤 최초의 존재가 그의 모범에 따라서 주는 결과로서 많은.. 2020. 4. 20.
종교의 소통은 설교자의 에토스에서 발생한다.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0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의 소통은 설교자의 에토스에서 발생한다. 4. 설득과 소통을 위한 설교자(강론자)의 에토스 지금까지 우리는 수사학의 역사나 형식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수사학은 언어를 통한 논증과 진실성의 전달, 설득 등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들어 그리스도교 신학의 성서해석학이나 설교 형식에서 수사학이라는 학문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학에서 성서해석학의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수사학이라는 어떤 일부분의 요소만 차용하여 해석학이나 설교에 접합하겠다는 것은 매우 피상적 발상이다. 그 방법론을 차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완전히 소화가 되고 훈련이 되어서 그 본래적인 .. 2019. 12. 16.
섬김의 아득한 거리, 현존의 부재(히브 5,1-1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10/21 22:38 ]에 발행한 글입니다. 섬김의 아득한 거리, 현존의 부재(히브 5,1-10) 섬긴다는 것의 의미, 섬김에 대한 이야기는 종교에서 매우 많이 듣는 신앙행위 중에 하나입니다. 섬긴다는 것은 공경한다는 의미도 있고,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예우에서도 통용되는 말이기도 하고, 신에게도 적용되는 신앙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섬긴다는 것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사랑이 선행되지 않고 단지 신분상의 의무나 당위에 의해서 섬김이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사랑이 없이 사람을 섬기고 신을 받들어 모신다면, 이는 단지 형식적이고 빈 마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르투어 펜하우어(A. Schopenhauer)는 “세상사람들에게 칭찬받.. 2019.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