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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G=쥐', 그리고 표현의 자유

by anarchopists 2020. 1.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04 10:12]에 발행한 글입니다.

'표현의 자유' 탄압과 이명박

오늘은 역사 속에서 있었던 독재권력의 언론통제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서 이명박 권력의 ‘표현의 자유’ 탄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역대 독재권력자로서 언론을 통제하였던 자로는 박정희와 전두환이 대표적이다. 거두절미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다

1961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권력은 각종 언론을 권력에 예속시켰다. 이로써 언론통제와 함께 각종 집회와 시위도 탄압하였다. 곧, 언론정책시행기준(1962. 7.31)에 의거 한국신문발행인협회을 창설(1961.10.31.)하고 여기서 군사권력이 주는 보도내용만 기사로 내보냈다. 이후 박정희 권력은 《반공법》을 제정하였다.(1961.7.3.) 이 반공법의 독소조항은 4조 1항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국외의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 고무ㆍ동조죄)과 2항(표현물을 제작, 수입, 복사, 보관, 운반, 반포, 판매, 취득 금지)이다. 이 때문에 구속된 문화예술인들이 많다. 또 박정희 권력은 《신문통신등의 등록에 관한법률》 (법률 제1486호, 1963.12.12.)을 제정하여 신문방송의 자유를 근원적으로 억압하였다. 그리고 언론의 신규등록을 억압하여 기득권을 가진 보수신문을 측면으로 지원하였다. 곧 채칙과 당근정책이다.

권력의 내부모순으로 박정희가 죽임을 당한 후, 전두환의 신군부가 등장한다. 전두환은 1980년대 박정희의 언론에 대한 ‘채칙과 당근’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러나 그는 박정희와 달랐다. 박정희 권력시대는 언론이 통제를 받으면 받을수록 저항체질로 바뀌었다. 전두환 권력은 이러한 언론의 체질을 잘 파악하였다. 저항체질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철저하고 처음부터 혹독한 탄압으로 언론을 순응체질로 바꾸었다. 즉 언론사들이 정치권력과 함께 권력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결과로 이들이 오늘날 전두환 때 살아남은 보수언론들은 언론재벌이 되어 정치권력ㆍ종교권력과 함께 ‘3대 권력블럭’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정의편이다. 역사의 정의시대가 왔다. 곧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우매한 민중은 역사가 가져다 준 정의를 외면하였다. 그래서 다시 이명박 권력이 들어섰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내세운 정당은 보수수구정당인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의 전신은 전두환을 내세운 민정당이고 민정당은 박정희를 내세운 공화당의 후신이다. 그러니까 이들 모두 언론통제의 귀재였던 독재권력자를 배출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명박도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바람으로 곧바로 언론통제를 시작하였다.

그는 위 두 독재권력보다 더 교묘한 방법으로 언론을 장악해 들어갔다. 언론통제의 진화(進化)다. 곧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다. 이명박은 권력을 잡자마자 바람으로, 먼저 강제를 동원하여 공기업 사장들(임기가 보장된)을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수하들로 강제 교체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YTN 사장, 공영방송 KBS의 사장의 교체가 강제로 이루어졌다. 교체되어 들어간 이명박 수하들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한 YTN 돌발영상, 시사투나잇 등을 폐지했다. 또 광우병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도(광우병 17년 후)를 한 EBS 지식채널의 PD도 교체 했다. 곧, 언론에 대한 순응체질화정책이다.

이명박 권력은 지식인들이나 시민들이 글을 못 쓰게 하는 게 아니라, 이명박에 잘못 보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책을 썼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구가되던 노무현 정권 때의 노무현식 표현(노무현 정권 때 있었던 정책과 사조들)들을 철저히 탄압하였다. 그 결과, 인터넷 포털싸이드(Portal Site)의 ‘표현의 자유’를 필자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삭제하였다. (‘쥐박이’ 검색어 삭제, 동요 ‘쥐가 백마리’의 삭제 등)

이번의 G20정상회의 홍보포스터 사건도 그렇다(2010. 11.2,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으나 다행히 기각되었다) 한 모 대학교 강사 박00님(41)이 정부에서 만들어 붙여놓은 G20 정상회의 홍보포스터에 “낙서(쥐 그림을 그려 넣음, 사진 참조)를 하여 재물손괴를 하였다”는 죄목이다. 그리고 이를 검찰과 경찰은 영장신청이유에서 “G20을 방해하려는 음모”라는 어처구리 없는 이유를 붙였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헌법에서 정한 ‘표현의 자유’(19조, 21조, 22조)를 짓밟은 언어도단이다. 함께 낙서를 한 대학생 박00님(23·여)도 불구속 입건됐다.(경향신문, 11. 3일자)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예술가는 언제 어디에서도 예술적 직감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사실 G20 이라는 게 무엇인가. “G20은 서서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종식시키면서, 새로운 ‘봉건적 지배담론’을 시작하려는 게 아닌가. 바로 IMF, WTO, FTA 등을 통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지향이 아니던가. 즉, 국가단위 정치권력의 세계경제기구로 권력이양이 아니던가. 자본주의는 진화할수록 세계주의라는 피막 속에 숨어 글로벌자본가들의 지배독점화를 음모한다. 그리고 글로벌자본가들은 그들의 편의를 위하여 외곽지원부대를 형성한다. 바로 정치권력ㆍ언론권력ㆍ종교권력과 결탁이다. 그런 다음 세계소비자(그들이 볼 때 돈 바치는 시민)를 향해 무한착취에 들어간다. 그래서 이번의 G20정상회의도 글로벌자본가를 지원하기 위한 정치권력들의 경연대회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정의평화》44호, 천주교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2101. 9월호)

이러한 G20에 대한 기본상식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언뜻 영문자 ‘G’에서 우리말의 ‘쥐’가 연상되지 않았겠는가. G20의 정상회의는 곧 “글로벌자본가들이 외곽지원부대를 형성하기 위해 정치권력ㆍ언론권력ㆍ종교권력과 결탁하는 회의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계소비자(그들이 볼 때 돈 바치는 시민)를 향해 무한착취에 들어가려는” 음모가 아니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쥐’그림을 그린 그 교수(작가)는 분명 이런 사실을 알고 G20의 정상들이 마치 세계시민을 상대로 자본을 갈취하는 자들로 보일 수도 있었다. 곧 표현의 자유다. 그런데 이를 “G20을 방해하려는 음모”라는 마치 G20정상회의가 마냥 좋은 것인 양 정부 측 입장만 대변하면 되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반대시민의 입장도 대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여기서 이명박 권력이 얼마나 크게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포털싸이트에서 ‘쥐박’이니 ‘쥐가 백마리’니 하는 글과 동요를 못 쓰고, 못 부르게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곧 이명박 수하들조차 이명박(MB)을 쥐 짐승((mouse beast)으로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 사회는 정부의 주장도 있다면 반대 시민도 있기 마련이다. 이 모두가 동시에 진열되고 전시되어 다양한 주장과 지식이 공존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시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해본다.(2010. 11.4 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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