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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대통령 중심보다는 국민중심의 사고를.

by anarchopists 2020. 1.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03 09:19]에 발행한 글입니다.


죽은 자보다는 산 자 중심으로
사고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근대 이후 사회적 윤리와 기치판단이 수평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독점자본주의로 나가면서 또 다시 자본과 노동이라는 생상관계 속에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는 종속관계가 만들어지면서 다시 봉건적 예속관계가 탄생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불행을 막기 위해서도 우리는 사고의 전환을 분명히 할 때가 왔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수평적 사고를 생각해 본다.

옛날 유럽의 가톨릭적 관념과 동아시아의 유교적 관념은 모두 수직적 기치관이요 사고였다. 인간은 신을 향해 가야한다. 신만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신(야훼)만을 사랑해야지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여기서 수직적 사고가 생겨났다. 이러한 가톨릭의 가치관에서 봉건영주(왕을 포함하는)와 기사, 그리고 농노(農奴)라는 수직적 인간관계도 만들어졌다. 다시 말하면 가톨릭의 교리와 성직자들이 유럽의 수직적 사회윤리를 형성하는데 이념적으로 뒷받침해주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수직적 사회윤리에서 생산수단을 둘러싼 수직적 인간관계도 형성될 수 있었다.

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중국 한나라 시대 동중서에 의하여 만들어진 통치자 중심의 유교이념은 동아시아에 가부장적, 남성우월적 사회윤리를 만들어놓았다. 여기서 3강5륜이 탄생하였다. 신하보다는 임금이, 자식보다는 아버지가, 아내보다는 남편이 중심이 되는 수직관계가 형성되었다. 여기서 다시 백성보다는 왕 중심의 사회윤리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유럽은 역사의 정의시대가 빨리 왔다. 수직적 사고를 깨는 대사건들이 일어난다. 곧 신 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의 사고 및 사회윤리를 형성하게 만들어준 역사적 사건들이다. 15세기 이후 르네상스요, 16세기 이후 종교개혁이다. 이 두 사건은 근대의 여명기를 열었다. 르네상스는 휴머니즘을 재발견시켰고, 종교개혁은 시민(다수)의 가치를 다시 재발견하게 만들었다. 즉 유럽 봉건시대의 수직적 사고를 수평적 사고를 전환하는데 크게 기여시켰다. 이것이 곧 근대정신으로 발전하였다. 유럽의 근대정신은 16세기 ‘신항로의 재발견’을 타고 아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각 지역의 전통적 사고와 시회윤리들이 유럽식 근대정신 곧 수평적 사고와 사회윤리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우리의 시회윤리 속에 전근대적 수직적 사고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죽은 자 중심으로 사고하는 일이다. 그래서 제안해 본다. 조상 중심에서 자손중심으로, 죽은 자 중심의 사고에서 산 자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하자고. 이러한 기본적 사고를 전제로 이야기를 파생시켜본다면, 죽음을 향해 가는 노인 중심에서 살날이 많은 젊은이 중심의 사고를 하는 게 맞다. 곧, 가정은 부모 중심의 가정윤리가 아닌 자식을 좀 더 배려하는 가정윤리로. 사회는 노인 중심보다는 젊은이 중심으로. 국가는 대통령 중심이 아닌 국민 중심으로. 또 국가는 부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가난한 이 중심으로. 강자보다는 약자 중심으로 정책적 사고를 하는 게 맞다.

끝으로, 제사문제와 그리스도 교인들의 천당문제에 대하여 짚고 넘어가자. 각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제사는 조상 중심의 사고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사고를 통제하는 사회윤리다. 죽은 사람 중심의 사고는 유교적이고 봉건적이다. 죽은 사람은 우리 사회를 발전적으로 이끌지 못한다. 무덤도 마찬가지다. 무덤을 만드는 행위는 4시간(계절)밖에 존재하지 않던 원시적ㆍ농업적 전통을 가진 낙후된 시대에서 나온 발상이다. 지금은 산업시대이다. 24시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어느 자식이 무덤을 찾을 시간이 있겠는가. 죽은 자 때문에 산 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사고이다.

그리스도 교인들의 사고도 마찬가지다. 죽은 자 중심의 천당사고를 현재 중심의 사고로 바꾸어야 한다. 천당에 올인 하는 바람에 가정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천당에 가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어서는 안 된다. 천당 중심의 사고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철에서 달콤한 잠을 못 자면 안 된다. 길가다가 천당 지옥의 팻말을 들이대는 바람에 길가기가 불편해서는 안 된다. 이제 산 사람 중심으로 사고를 하고 사회윤리를 지향할 때다. (2010. 11.3 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본문 내용 중, 사진은 네이버 인터텟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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