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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민중은 누구인가, 그리고 시민

by anarchopists 2019. 12. 1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9/09 06:55]에 발행한 글입니다.


민중은 누구인가. 그리고 시민

한반도에서 일제시대가 끝난 뒤(1910~1945)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지식인들과 민족통일세력들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Lincoln, Abraham, 1809~1865)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11.19)의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에서 ‘the people’(자유와 권리의 주체)을 人民으로 번역하여 썼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민’을 자유와 권리의 주체인 인민(the people)으로 이해하였다. 미군정기가 끝나면서 한반도 남부에서 자유주의세력들이 대한민국(The Republic of Korea)을 건국하자(1948.8.15) 한반도 북부에서도 사회주의세력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Korea)을 수립한다.(1948. 9.9.) 그리고 북은 군대명칭도 인민군으로 하였다. 이렇듯 초창기 두 지역의 국호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민’과 북의 인민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영문표기에서 북은 people's(인민의)가 들어가고 대한민국은 people's라는 단어가 안 들어간다.

한편, ‘인민’이라는 단어가 사회주의세력이 세운 국가에서 국호에 쓰이고, 또 인민의 의미가 역사 속에서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혁명성을 띠는 개념으로 부각 된다. 그러자, 남한에서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기피하게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될 때 의도적으로 인민이라는 용어를 기피하고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제헌의원이면서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1906 ~ 1987)은 “헌법 제정과정에서 자유와 권리의 주체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인민’이라는 용어가 사라진 점을 못내 아쉬워하였다”(김성보 1988) 이렇듯, 헌법에 국민의 개념이 들어가면서 대한민국은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 ‘민’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어 버린다. 국민은 다음에서도 지적하겠지만,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 국가의 통제를 받는 국민”으로서 개념이다.

즉,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강요받는 존재이다. 이 결과, 이승만 반공독재와 박정희 군부독재를 출현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국민은 이들 독재권력에 복종ㆍ희생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이에 1960년대, 남한의 진보적 지식인과 사회운동가들은 북의 계급투쟁의 성격도 아니고 남의 독재권력에 희생되는 국민도 아닌 새로운 개념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래서 해방 이후 사용되던 ‘인민대중’(인민+대중)이라는 용어에서 한 글자씩 따서 ‘민중’이라는 조어(造語)를 만들어낸다. 이때부터 남한의 민중은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역사의 주체’로 재탄생하게 된다. 즉, 영어표기인 ‘the people’의 개념을 그대로 반영한 용어가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민중이라는 단어는, 박현채(1934~1995)가 《民族經濟論》(민족경제론1978)에서 민중의 개념을 사회과학 용어로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이때부터 민중은 남한사회에서 '역사의 주체'를 말하게 된다. 이후 1970년대 민중은, 정치적으로 불의의 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며, 사회적으로는 교육과 의료와 직업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포함하게 된다.

그리고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을 “소외받고 탄압받는 사람들”으로 정리하고 있다. 즉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며 군부독재정권으로부터 억압 받는 세력”을 민중으로 보았다.(박재순, 1988) 1980년대는 이들 민중들이 결국 군사독재에 저항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던 민주화운동세력의 대명사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민중이라는 개념은, 사회구성원의 성별ㆍ인종에 관계없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에 놓인 계층을 모두 아우르는 의미를 담게 된다.(최창집 2009)

이후 1990년대 민중이라는 말은 노동자, 농민을 한국 학생사회에서는 민중의 개념을 놓고 민족해방을 주장하는 세력과 민중민주를 주장하는 세력이 분열하여 대립하게 된다.그러다가 최근에는 민중 이라는 말 대신 시민이라는 말, 즉 시민의 시대로 정착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최창집 2009)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뉴시스(2007)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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