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11/29 07:18]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말씀]
“독재세력과 수구세력을 길러주는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다”, “민주주의라 하면서 민주주의를 국민에게 가르칠 생각은 아니 하고 후진국 백성이기 때문에 강력한 독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만일 있다면, 뱃속을 말하는 것이요....과거는 실패했다 인정하면서 이제부터는 잘해 보겠다. (이 말은) 논리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역시 나라 건지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함석헌저작집》 4,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한길사, 2007, 117, 129쪽)
[오늘의 명상]
2012 대선 마라톤이 출발점을 떠났다. 42.195 km를 향해 일곱 주자들이 달려 나갔다. 그러나 출발점을 향해 갈 때부터 선두그룹이 이미 형성되었다. 정당정치 하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어떤 경기든 기록갱신이 나올 때 그 경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이 되고 기뿐 일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마라톤은 새 기록이 나올 기미가 희박하다. 선두 그룹에 속해 있는 주자들이 누가 1등을 하든 “그 놈이 그놈이다”라는 ‘길거리판결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최초로 여성대통령이 나오느냐는 문제가 관심거리일 뿐. 누가 되든 우리 정치사에 크게 변할 일은 없다. 왜냐하면 선두그룹을 이루고 있는 주자가 모두 크게 보아 보수이기 때문이다. 조금 차이를 둔다면 하나는 ‘수구적 보수’요. 하나는 ‘개혁적 보수’일 뿐이다. 또 하나는 독재자와 함께 한 사람이요, 하나는 반독재를 주장했던 사람이라는 차이다. 그러나 둘 다 성향은 보수다. 이번 대선 마라톤에서 진보성향의 주자는 너무 뒤쳐져서 따라오기 때문에 사람(유권자)들의 관심밖에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서구에서 발생한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익히고 살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이 그렇다. 진보와 보수 그리고 수구의 개념도 그렇다. 정치권에서조차 제대로 아는 정치인이 없다는 느낌이다. 정치인이 이러니, 유권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너무 빨리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탓도 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지도자라고 하는 것들이 늘 권력 장악과 제 뱃속 채우는 것만 알았기 때문이다. 나라의 발전과 나라사람들의 뱃속은 뒷전이었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
우리 사회가 자유니 민주니, 보수니 진보니, 그리고 수구니 하는 개념이 뒤죽박죽이 된 것은 마치 박정희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한다고 해놓고 유신독재로 민주주의 개념을 호도한 것과 같다. 또 전두환이 “정의사회를 구현”한다고 해놓고 더러운 짓거리(광주학살)로 ‘정의’ 개념을 훼손한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이제까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독재자들의 책임이 크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정리하고자 글쓴이도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워낙 정치권에서 왜곡되게 굳어진 관념이기에 잘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2012년 대선을 기하여 다시 보수(保守)와 진보(進步)의 개념을 정립해 보자.
먼저 결론부터 내리면, 보수와 진보 모두 개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의 구별은, 보수는 개혁을 하되 조금 천천히 하자는 측이고, 진보는 빠른 속도로 개혁을 하자는 측이다. 그래서 보수세력은 현재의 제도와 구조에 보다 더 집착한다. 그리고 진보는 현재의 낡은 제도와 구조에서 모순된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바꾸자는 측이다. 그러면 개혁의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사람’(나라사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자. 여기서 사람이라고 할 때, 보수는 ‘사람’이라는 말속에 자신을 앞에 세우고 나라사람들을 자신의 뒤에 세우는 부류를 말한다. 진보는 ‘사람’ 속에 자신의 뱃속보다 나라사람의 뱃속을 앞에 세우는 부류다. 곧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사람(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다, 남을 제보다 먼저 생각하면 진보고, 지를 남보다 먼저 생각하면 보수다,
그런데 보수 안에는 수구(守舊)라는 아무 못된 세력이 숨어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 ‘수구적’이라는 단어가 보수 앞에 붙으면 그것은 ‘사람’을 모르는 부류가 된다. 그래서 ‘사람’을 모르는 세력을 ‘수구’라고 한다, 수구는 ‘남’이 자기 눈에 안 보인다. 다만 제 검은 뱃속만 보인다. 그래서 제 시커먼 뱃속을 채우기 위해 거짓과 사기와 기만과 위장 등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여기서 부패와 부정, 부조리가 탄생한다. 그래서 부정과 부패를 달고 사는 부류를 수구라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제까지 이 나라를 이끌어온 정치세력은 일부만 빼놓고 모두가 ‘수구적 보수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아가, 이제까지 정치권에서 선전해왔던 보수=애국자=민족중흥=친미자유, 진보=빨갱이=민족반역=반미공산이라는 등식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알게 된다. 곧 이 나라에는 진정한 보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지금 대선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선두그룹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모두 보수에 속한다. 누가 1등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사람의 뱃속보다 시커먼 제 뱃속을 먼저 생각하는 집단이 1등을 안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2012.11.29., 취래원농부)
2012 대선,
개혁적 보수냐 수구적 보수냐?
개혁적 보수냐 수구적 보수냐?
[함석헌의 말씀]
“독재세력과 수구세력을 길러주는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다”, “민주주의라 하면서 민주주의를 국민에게 가르칠 생각은 아니 하고 후진국 백성이기 때문에 강력한 독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만일 있다면, 뱃속을 말하는 것이요....과거는 실패했다 인정하면서 이제부터는 잘해 보겠다. (이 말은) 논리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역시 나라 건지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함석헌저작집》 4,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한길사, 2007, 117, 129쪽)
[오늘의 명상]
2012 대선 마라톤이 출발점을 떠났다. 42.195 km를 향해 일곱 주자들이 달려 나갔다. 그러나 출발점을 향해 갈 때부터 선두그룹이 이미 형성되었다. 정당정치 하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어떤 경기든 기록갱신이 나올 때 그 경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이 되고 기뿐 일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마라톤은 새 기록이 나올 기미가 희박하다. 선두 그룹에 속해 있는 주자들이 누가 1등을 하든 “그 놈이 그놈이다”라는 ‘길거리판결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최초로 여성대통령이 나오느냐는 문제가 관심거리일 뿐. 누가 되든 우리 정치사에 크게 변할 일은 없다. 왜냐하면 선두그룹을 이루고 있는 주자가 모두 크게 보아 보수이기 때문이다. 조금 차이를 둔다면 하나는 ‘수구적 보수’요. 하나는 ‘개혁적 보수’일 뿐이다. 또 하나는 독재자와 함께 한 사람이요, 하나는 반독재를 주장했던 사람이라는 차이다. 그러나 둘 다 성향은 보수다. 이번 대선 마라톤에서 진보성향의 주자는 너무 뒤쳐져서 따라오기 때문에 사람(유권자)들의 관심밖에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서구에서 발생한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익히고 살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이 그렇다. 진보와 보수 그리고 수구의 개념도 그렇다. 정치권에서조차 제대로 아는 정치인이 없다는 느낌이다. 정치인이 이러니, 유권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너무 빨리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탓도 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지도자라고 하는 것들이 늘 권력 장악과 제 뱃속 채우는 것만 알았기 때문이다. 나라의 발전과 나라사람들의 뱃속은 뒷전이었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
우리 사회가 자유니 민주니, 보수니 진보니, 그리고 수구니 하는 개념이 뒤죽박죽이 된 것은 마치 박정희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한다고 해놓고 유신독재로 민주주의 개념을 호도한 것과 같다. 또 전두환이 “정의사회를 구현”한다고 해놓고 더러운 짓거리(광주학살)로 ‘정의’ 개념을 훼손한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이제까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독재자들의 책임이 크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정리하고자 글쓴이도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워낙 정치권에서 왜곡되게 굳어진 관념이기에 잘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2012년 대선을 기하여 다시 보수(保守)와 진보(進步)의 개념을 정립해 보자.
먼저 결론부터 내리면, 보수와 진보 모두 개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의 구별은, 보수는 개혁을 하되 조금 천천히 하자는 측이고, 진보는 빠른 속도로 개혁을 하자는 측이다. 그래서 보수세력은 현재의 제도와 구조에 보다 더 집착한다. 그리고 진보는 현재의 낡은 제도와 구조에서 모순된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바꾸자는 측이다. 그러면 개혁의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사람’(나라사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자. 여기서 사람이라고 할 때, 보수는 ‘사람’이라는 말속에 자신을 앞에 세우고 나라사람들을 자신의 뒤에 세우는 부류를 말한다. 진보는 ‘사람’ 속에 자신의 뱃속보다 나라사람의 뱃속을 앞에 세우는 부류다. 곧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사람(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다, 남을 제보다 먼저 생각하면 진보고, 지를 남보다 먼저 생각하면 보수다,
그런데 보수 안에는 수구(守舊)라는 아무 못된 세력이 숨어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 ‘수구적’이라는 단어가 보수 앞에 붙으면 그것은 ‘사람’을 모르는 부류가 된다. 그래서 ‘사람’을 모르는 세력을 ‘수구’라고 한다, 수구는 ‘남’이 자기 눈에 안 보인다. 다만 제 검은 뱃속만 보인다. 그래서 제 시커먼 뱃속을 채우기 위해 거짓과 사기와 기만과 위장 등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여기서 부패와 부정, 부조리가 탄생한다. 그래서 부정과 부패를 달고 사는 부류를 수구라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제까지 이 나라를 이끌어온 정치세력은 일부만 빼놓고 모두가 ‘수구적 보수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아가, 이제까지 정치권에서 선전해왔던 보수=애국자=민족중흥=친미자유, 진보=빨갱이=민족반역=반미공산이라는 등식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알게 된다. 곧 이 나라에는 진정한 보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지금 대선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선두그룹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모두 보수에 속한다. 누가 1등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사람의 뱃속보다 시커먼 제 뱃속을 먼저 생각하는 집단이 1등을 안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2012.11.29.,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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