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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2010년, 이렇게 함이 옳지 않겠는가.

by anarchopists 2020. 1. 2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1/05 08:21]에 발행한 글입니다.


2010년, 이렇게 함이 옳지 않겠는가.

2009년, 한해를 돌아보니 권력층이 국민을 원숭이로 본 한 해였다. 2009년 세모에 마지막까지 대통령은 국민을 원숭이로 보고 우롱했다. 이명박 권력이 하는 정책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거나 국민의 소리를 무시하고 우롱하면서 억지로 밀고 나가는 것들이다. 그래서 지성인들은 2009년을 4자성어로 표현하되, 방기곡경(旁岐曲逕)이라 했다. 그리고 서민들은 올해를 조삼모사(朝三暮四)로 표현했다. 지성인이 말하는 방기곡경의 뜻은 “일을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즉 소인배를 빗대서 한 말이다. 아마도 지식인들이 용기가 없어서 대통령에게 대놓고는 “당신 소인배요”라는 말을 못하겠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명박=소인배를 빗대서 대통령이 못 알아들을 말로 ‘방기곡경’이라고 한 모양이다.

그러나 2009년에 대한 지식인들의 ‘방기곡경’ 보다는 서민들의 ‘조삼모사’가 더 적절한 표현 같다. 이명박 권력에 대하여서는 서민들이 더 피부로 잘 느끼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삼모사는 대통령 이명박을 원숭이 조련사(狙統), 곧 저공(狙公)으로 표현 한 말이다. 저공이라는 사람은 《열자》(列子) <황제편>(黄帝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는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 사람으로 원숭이 조련사였다. 그래서 원숭이들을 가지고 놀았다. 여기서 유래한 말 중 유명한 게,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조삼모사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빗대어 말한 말이지만, 뒤집어 보면,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2009년 한해를 되돌아보면, 일년동안 ‘저공 이명박’이 ‘원숭이 국민’을 어떻게 농락하였는지가 떠오른다.


2009년은, 이명박 권력에 의하여 ‘녹색성장’과 ‘서민과 가까이 하자’는 정책구호가 난무했다. 이 구호들이야말로 완전히 국민(서민)을 우롱하는 조삼모사다. ‘녹색성장’이라는 정책구호 뒤에는 녹색을 죽이고 서민을 죽이는 위장전략이 숨어있다. 이중 4대강 개발은 녹색성장과는 아주 동떨어진 정책이다. 4대강 개발은 녹색성장이 아니고 환경파괴, 생태계 교란, 역사유물을 매몰시키는 으뜸사업이다. 4대강을 개발하고 있으면서 “임기 중에 대운하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이 말은 국민을 기만해도 한참을 기만하는 말이다. 4대강 개발이 곧 대운하 건설이 아니던가. 속뵈는 말이다. 환경파괴의 으뜸사업을 녹색성장으로 위장해놓고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대통령이 ‘녹색리더’를 자임했다는 것은 분명 자기기만이요, 인류에 대한 우롱이다.

또 ‘서민과 가까이 하자’는 위장전술도 펴고 있다. 부자감세를 위한 양도세 개정 시도와 법인세의 대폭적인 인하 조치들이 서민과 가까이하는 정책인가. 국가예산에서 교육비와 복지비 지출의 삭감이 서민을 위한 정책인가.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김상곤 경기교육감을 고발하는 것이 서민에게 가까이 가는 정책인가. 의료민영화(민영병원) 추진이 서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정책인가. 또 있다. 언론미디어법의 날치기 통과다. 이것이 서민을 위한 정책인가. 언론미디어법은 언론재벌에게 힘을 실어주고 언론보도를 획일화하여 서민의 알 권리를 빼앗고 정권의 장기화를 꾀하려는 음모가 아니던가. 2009년 초, 경찰에 의한 용산참살이 있었다. 2009년 세모에 임박하여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이게 서민을 위한 정책인가. 쌍용자동차 노조파업에 대한 강제탄압이 서민을 위한 정책인가. 신종독감을 정치에 이용하는 게 서민을 위해서인가.

또 있다. 앞 정권이 펴나간 정책의 연속성을 깨는 일이 정치논리인가. 정치의 원리도 모르는 자들의 짓거리가 아니던가. 세종시 건설 수정안은 누구를 위한 수정인가.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고자함이 아니던가. 한반도 통일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정책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수구골통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던가. 지금 나라밖에서는 새로운 변화들이 일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며, 진보적 사회변화를 위해 미국에 흑인대통령이 나왔다. 일본이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중국이 새롭게 도약하면서 다시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맹주를 꿈꾸고 있다. 그런데도 수구권력자들은 옛것에만 연연하면서 조삼모사 식으로 국민을 기만ㆍ우롱하고 있으니. 무엇을 하자는 건가.

그래서 새해에는 ‘이렇게 함이 옳지 않겠는가.’ 권력자들이 국민을 원숭이로 보는 그런 태도는 버려야 한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들은 대부분 후회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자신들이 선출한 대통령으로부터 또 원숭이 취급도 받았다. 국민은 더 이상 원숭이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이제 국민을 기만하는 위장전술은 버려야 한다. 녹색성장 뒤에 감추어진 4대강 개발은 하루 빨리 멈추는 게 상책이다. 이제는 버려야 한다. 자연에 대한 인류문명의 권위주의를. 자연에 대한 파괴, 약자를 우롱하는 태도는 멈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 조직을 중앙관리시스템에서 지역관리시스템 또는 지역자치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사회구조를 대단위가 아닌 최소단위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세계 권력자들도 버릴 것이 있다.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권위주의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정치인들도 버릴 것이 있다. 주권자 국민에 대한 정치권력의 권위주의다. 가진 자들도 버려야한다. 가난한 자에 대한 부자들의 권위주의를, 엘리트들도 버려야한다. 못난 자에 대한 잘난 자의 권위주의를. 다수자도 버려야한다. 소수자에 대한 권위주의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평등과 평균의 진리를. 그리고 사회도 변해야 한다. 아직도 남아 있는 전통적 유교주의 이념이다. 학교에서 교수와 선생의 권위주의, 직장에서 여성과 직원에 대한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그리고 똑같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또 버릴 게 있다. 도덕적인 사람에 대한 비도덕적인 사람의 우월의식, 교양 있는 사람에 대한 비교양인의 우월의식, 양심적인 사람에 대한 비양심 사람의 우월의식이다. 이제는 물신이 아닌 인품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권위주의와 우월의식은 개인의 자유와 인품을 저해하는 방해물이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의 진정한 자유와 인격을 위하여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권위주의와 우월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정치권위에 대한 시민의 저항. 비도덕적인 사람에 대한 도덕적인 사람의 저항, 비양심적인 사람에 대한 양심적인 사람의 저항, 비교양인에 대한 교양 있는 사람의 저항. 이것이 2010년부터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한반도인에게는 새해소망이 또 하나 있다. 지구상에서 하나뿐인 분단국을 종식시키기 위한 남북화해와 협력의 노력이다. 그리고 민족통일을 위한 노력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망이 또 있다. 부자보다 서민들이 더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부자와 서민이 같아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2010년은 국가권력, 대통령권력, 정치(국회의원, 장관)권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고치는 원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2009. 12.31 초안, 1.5 수정, 취래원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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