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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술자리와 민중들의 恨

by anarchopists 2020. 1. 2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12/24 08:21]에 발행한 글입니다.


술자리와 민중들의 恨

1. 자본주의는 ‘자본의 능력’과 ‘개인의 이익’을 핵심으로 하는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의 능력주의와 이기적 개인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경쟁원리가 작동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품을 갖춘 훌륭한 인간이 되려는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돈(자본)을 많이 벌려는 경쟁만 한다. 돈의 많고 적음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 훌륭한 인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코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돈이 없으면 경쟁에서 일단 사회적 낙오자가 된다. 그리고 서글픈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게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다.

그래도 1970년대만 해도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옛말이 통용되던 시대였다. 즉, 돈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도 열심히 노력을 하면,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학교 선생님도 되고, 정의로운 검ㆍ판사도 되고, 가난하고 없는 이들을 위한 변호사도 될 수 있었다. 그만큼 물질이 인격을 좌우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돈이 없으면 검ㆍ판사가 될 수가 없다. 변호사도 될 수 없다. 의사도 될 수 없다. 교수도 될 수 없다. 재벌회사의 간부도 될 수 없다. 이렇게 돈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면 어릴 때부터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의 강제’가 지워진다. 이렇게 인간성이 상실된 모습이 자본주의의 본질이요, 모순이다.

유럽에서는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일찍이 경험하게 된다. 곧, 개인주의와 능력주의의 지나친 신봉은 공공의 질서와 공공의 이익을 파괴한다. 그리고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경험과 반성이다. 그래서 유럽의 시민들은 이러한 자본주의생산약식에 대한 반성의 토대 위에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물격보다 인격을 먼저 생각하는 교양을 갖게 된다. 그리고 사사로운 이익과 명예보다 공공의 이익과 공공의 질서를 먼저 생각하는 시민의식의 발생이다. 이러한 인격적 교양과 시민의식이 존재하는 자본주의가 ‘참자본주의’다. 그래서 공공의 이익과 질서를 개인의 이익보다 상위에 두는 시민의식과, 인격을 상위가치에 두는 교양이 존재하지 않는 자본주의를 타락한 또는 부패된 자본주의하고 한다. 분명 대한민국은 부패ㆍ타락한 자본주의사회다. 곧 우리 사회에 인격을 중시하는 교양과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타락한 자본주의는 박정희 권력이래, 국가관료들이 주도하는 유가자본주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이 현 권력이 들어와서 타락ㆍ부패한 모습이 더둑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패한 권력자들이 독재를 휘두르며, 인민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부패한 권력자들로부터 고통을 받은 인민들은 곧잘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한을 술자리에서 풀어낸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민중들의 한이 서린 외침은 늘 술자리와 함께 해왔다. 1910년 이전, 전통 전제군주시대에도 있었다. 한 맺힌 백성들은 군주를 향하여 또는 특정 악질 관리를 향하여 술자리에서 그들의 한을 토해냈다. 원망의 대상은 타락한 유교주의자, 곧 성(性)윤리의 파괴자로 낙인을 찍었다. 바로 근친상간도 불사하는 천한 ‘상것’이라는 의미의 표현인 “개새끼”다, 또는 “씹할 놈”이다. 성의 욕구를 억압받아온 전통시대 민중의 한이 성윤리의 파괴자에 대한 욕을 한풀이로 달래려는 백성들의 심리적 표현이다. 전통시대 조선왕조가 국권을 일제의 파쇼에게 강탈 당하였다. 이때가 오면 한이 맺힌 우리 민중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권력자들에게 한풀이를 한다. 술자리에서 건배삼창을 이용한 건배구호다.

1910년 이후, 일제의 무단식민통치로 우리 민중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우리 조선의 인민들은 술판에서 건배구호를 외치며 조국을 잃은 설음을 달랬다. 선창자가 “일제”하면, 일동이 “타도” 하면서 삼창을 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의 힘든 하루를 끝내고 술자리를 할 때, 선창자가 힘차게 “일제 개쌔끼” 하면, 후창자들이 “ 죽일 놈” 혹은 “때려잡자”라고 외쳤다. 나라를 잃고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투사들의 한풀이다. 또 어느 민족해방군부대에서는 선창자가 “민족”하면 일동이 “해방”하고 삼창을 외치기도 했다. 민족해방의 염원이다. 이렇게 일제시대 우리 민중들은 술자리에서 일제를 저주하는 ‘건배삼창’으로 나라를 잃은 설음의 한을 달랬다. 그리고 우리의 민족해방운동결과 해방이 되었다.

그런데 엉터리 같은 이승만 독재가 들어섰다. 이승만은 야비하고 기만적 정치를 했다. 이 때문에 제 동포를 억압하던 친일파들이 다시 권력자가 되어 해방조국의 민중들을 탄압하게 됐다. 이 같은 한심한 작태가 어디 있던가. 또 다른 독재권력의 억압으로 한이 맺힌 민중들은 술자리에서 저항하였다. 선창자가 “이승만 독재” 하면 후창자가 ”타도“하고 삼창을 하였다. 또 “독재부패” 하면, “갈아치자”고 했다. 또 있다. 민족정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선창자가 “친일파”하면 후창자가 “박살”하고 삼창을 하였다. 이 같은 술자리의 민중의 한풀이는 예나 없이 오늘날에도 계승되고 있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 민중들에게 한이 서리는 정치행태가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난 1980년대 말에 세워지고 최근에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 사람들은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선창자가 “친일파” 하면 일동이 “타도”하면서 삼창을 외친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과 전두환 시절에는 민주인사들이 들어 내놓고는 못했지만 술자리에서 선창자가 “독재”하면, 일동이 “타도‘라고 삼창을 했다. 또 유신독재 때도, 선창자가 “유신독재”하면 후창자가 “박살”하고 삼창을 했다. 그런데 요즈음에도 대학가 술집에서 학생들의 외침이 간간이 들려온다. 누군가의 “쥐새끼” 하는 선창구호와 함께 우렁찬 “잡자”라는 후창구호가 들린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후창구호는 “때려잡자”라고 하는 것 같다. 아, 오늘날 이 시대에도 권력의 억압으로 한이 서린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3. 술자리의 ‘건배삼창’에는 술자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염원과 한이 함께 서려있다. 권력의 독재에 대한 민중저항의 간접적 표현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 주는 민중들의 심리적 표현이다. 그 시대에 가장 악랄한 자가 누구인가? 세상 사람들 모두의 저주대상(악마)은 누구일까. 술자리의 삼창구호에 이름이 오른 자가 바로 그 시대 저주의 대상이다. 민중들의 저주의 대상은 시대를 달리하며 술꾼들의 입에 오른다. 일제시대는 일본제국주의요, 해방 이후는 이승만 독재와 친일파요, 군사독재와 유신시절에는 독재자 박정희이요, 신군부독재시절에는 전두환과 그리고 그 일당들이었다. 그러면 지금은 누가 저주의 대상일까. 학생들이 외치는 "쥐새끼"는 누구일까. 누구의 이니셜이 쥐새끼인가. 오늘도 우리 민중들은 그들의 한을 술자리에서 토해 낸다. "쥐새끼", "때려잡자" 저 멀리 젊은이들의 술자리에서 들려오는 건배구호를 들으면서 2009년, 올해도 저물어간다. (2009. 12. 20 초안, 12. 24 수정 , 함석헌평화포럼 운영자/취래원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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