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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허균의 호민론, 그리고 진보와 보수

by anarchopists 2019. 12. 2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3/18 07:22]에 발행한 글입니다.


허균과 호민론, 그리고 진보와 보수

허균
은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유ㆍ불ㆍ도ㆍ무 그리고 천주교를 지식과 신앙으로 소화한 유일한 인물이다. 허균은 소설 ‘홍길동전’을 통해 부패한 왕권과 더러운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간접 저항의 길을 찾기도 한다. 민중의 저항론을 체계화시키는 <호민론>(豪民論)을 저술하여 민중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호민론’은 이 시점에서 보았을 때, 인민의 역할을 수백년 앞질러 내다본 탁견이었다. 천하의 가장 무서운 존재는 오직 인민뿐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는 인민을 항민(恒民)ㆍ원민(怨民)ㆍ호민(豪民) 등 셋으로 분류하였다. 첫째, 항민은 관의 지시에 순종하며 관의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고 사는 인민이라고 하였다. 둘째, 원민은 관의 착취에 원성(怨聲)을 내며 불만을 갖는 계층이지만 저항할 줄 모르는 인민이라고 하였다. 셋째 호민은 이심(異心, 임금의 정책과는 다르게 생각하는)을 갖고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원하는 바를 일거에 이루려고 하는 저항계층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허균은 이 호민을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던 초나라의 진승(陣勝)과 오광(吳廣), 한나라 말기의 황건적, 당나라 말기의 왕선지(王仙之)와 황소(黃巢) 등과 같은 부류라고 하였다. 조선에서는 견훤과 궁예를 예시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저서 ‘홍길동전’의 작중인물인 홍길동을 이런 호민으로 등장시켰다. 그리고 스스로는 왕조전복의 거사를 도모하다가 광해 10년(1618) 8월, 50세를 일기로 모반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호균의 호민론은 당시 사회에서 담론에 지나지 안하였지만, 오늘날에서 보았을 때, 허균이 분류한 인민의 부류는 어긋남이 없다고 본다. 우리는 인간의 다양한 성품을 인정한다. 그리고 사람은 각자 취향이 다르다는 것도 인정한다. 또 인간은 타고난 유전인자와 생활조건이 다르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정의(正義)는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또 전쟁보다는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때문에 성품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타고난 환경이 다르고, 생활양식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사회정의는 공통된다. 그리고 인류평화도 공통된다. 따라서 정의롭지 못한 권력행태와 권력자의 행위에 대해서 누구나 나쁘다(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평화 쪽보다 전쟁 쪽으로 나가는 사람은 나쁘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다. 또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도 멸망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은 나쁘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바로 이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정의’다. 그래서 정의롭지 못한 행위와 말에 대하여 ‘나쁘다는 인식’을 하는 것은 인간 누구나에 해당되는 공통된 사고다.

따라서 허균의 호민론을 다음과 같이 오늘날의 사회인식으로 전환하여 대입해 볼 수 있다. 나라(국가라고도 함)의 주인은 국민(인민)인데 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있다면 이는 나쁘다. 더구나 국가의 지도자라는 칭호를 만들어서 온갖 국민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향유하고 국민을 앞질러 가는 정치꾼이 있다면 이는 나쁘다. 국가주인을 제쳐두고, 국민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사업을 국책사업이라는 핑계로 밀어붙이는 권력자가 있다면 이는 나쁘다.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하여 평화보다는 전쟁 쪽으로 국가를 몰고 간다면 이는 나쁘다. 국가 자존과 인민의 주권을 무시하고 외세의 이익과 자신의 처지를 일치시키는 권력자가 있다면 이는 나쁘다. 발전이라는 명목을 부쳐 자연의 흐름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면 이는 나쁘다.

이 나쁘다는 인식을 하는 게 보편적인 정의다. 그럼에도 봉건권력과 일제식민권력, 그리고 반공독재권력의 압제에 세뇌되어 권력을 무서워하고 이에 굴복하여 할 말 못하고 순응하며 사는 인민은 항민이다. 항민을 오늘날 말로 바꾸면, 무능인민이다. 그리고 국가권력자들의 나쁜 행태에 불만과 불평을 가지면서 이를 행동으로까지 발전시키지 못하는 인민은 허균이 말하는 원민이다. 오늘날 말로 바꾸면 불평분자다. 끝으로, 독재에 분노한 3.15민주의거를 일으킨 마산시민, 4.19혁명기의에 참여한 시민과 학생, 그리고 5.18시민혁명에 참여한 광주시민과 여타지역 시민들, 또 6.10항쟁에 뛰어든 학생들, 기타 박정희와 전두환 군부 반공독재에 항거한 민주시민들은 허균이 말하는 호민이다. 이를 오늘날 말로 바꾸면 개혁일꾼이다. 혁명열사이다.

그럼에도 이를 현대 사회학자들이 인민의 부류를 보수와 진보, 중도 등으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이다. 허균의 이론을 빌리면 보수는 항민, 곧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추종하는 세력이다. 그리고 중도는 원망만 하고 실천이 없는 기회주의 분자인 원민이다. 진보는 허균이 말하는 호민이다. 곧 세상에서 가장 바르게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불의에 저항하는 올곧은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바르게 만들 수 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나쁘다는 인식을 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2011. 3.18 아침, 취래원 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사진과 그림은 인터넷 다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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