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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역사가치의 판단기준, 그리고 박근해

by anarchopists 2019. 12. 2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3/19 07:22]에 발행한 글입니다.


역사가치의 판단기준, 그리고 박근해

역사는 ‘과거의 사실(史實)’을 말하지만, 그 ‘과거의 사실’은 곧 현재이며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역사는 과거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행위와 자연이 남긴 흔적, 이것을 역사적 사실(事實)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기록과 물건, 그리고 자연의 흔적을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사료(史料)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사료를 가지고 역사적 사실(史實)로 기록(창작)해 내는 이들이 역사가(歷史家)이다.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실을 결코 조작해내지 못한다. 그들은 분명 그들이 몸담고 있는 현실, 곧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ㆍ정치적 정서와 관련을 갖고 사관(史觀)을 형성한다. 곧 개인의 역사철학적 신념을 가지고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곧 사관이다. 그래서 역사는 사관이 없는 역사를 창출해 낼 수 없다. 그래서 역사 없이는 사관 또한,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관에 따라, 같은 역사적 사건이 다른 가치로 만들어진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일제에게 강점된 ‘식민지시대’를 놓고 ‘식민지수탈론’과 ‘식민지수혜론’이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역사가들은 식민지 수탈론을 주장하는 방면에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식민지 수혜론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한 시대를 판단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당 시대의 사실을 역사적 가치로 만들어 내는 일은 자기 철학(사관)을 가지고 있는 역사가들만 할 수 있다. 역사철학적 신념이 없는 누구나가 다 역사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역사가치’에 대한 정의(定意)를 내세우면서 역사가치의 판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역사가치의 판단기준을 어떻게 삼아야 할지 고민을 자주 하게 된다. 일제식민지시대 친일파의 경우를 놓고 보자. 친일(親日)을 한 사람의 이름이 하나는 바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끼라고 하자, 바우는 일제침략기 전체를 통하여 전반기는 친일을 하다가 후반기 민족해방운동을 가열차게 전개하였다. 그런데 도끼는 전반기 민족해방운동을 하다가 후반기 철저하게 친일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모두 친일파인가? 전반기 친일을 하고 후반기 민족해방운동을 한 자는 친일파가 아닌가. 또 전반기 민족해방운동을 하다가 후반기 친일한 사람은 친일파인가. 우리는 그 기준을 잡기가 모호하다고 한다.

친일파에 대한 판단기준을 얻기 위해 일제의 강제적 식민통치를 받았던 한반도의 두 지역에서는 친일파를 각각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남한의 경우는 이승만 권력 때 친일파의 반민족행위 처벌과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1948. 8, 이하 반민특위)를 구성하고 반민족행위처벌법(1948. 9.22, 이하 반민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서 규정하는 친일파를 “국권피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의원이 된 자,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박해한 자, 직ㆍ간접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가 이를 적극 지원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권력의 ‘국회프락치사건’(1949.4~8) 과 6·6경찰의 특위습격사건(1949) 조작으로 반민특위 활동이 무산된다. 이 결과로 친일파가 친미파로 둔갑하여 한국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 때문에 한국은 미국에 대한 ‘자발적 식민지 국가가 재창출되었다. 그리고 민족통일을 요원하게 만듦으로써 한국 민족주의의 완성을 좌절시켰다.

한편 북한에서는 1946년 3월 <친일파, 민족반역자에 대한 규정>을 채택, 친일문제를 척결해 나갔다. 친일파 기준은 “일제 행정ㆍ사법ㆍ경찰 기관과 관계를 맺고 만행을 감행해 원한의 대상으로 된 민간 악질분자”, “일제 행정ㆍ사법ㆍ경찰부문 관공리로 원한의 대상으로 된 악질분자”, “황국신민화운동을 전개하며 지원병ㆍ학도병ㆍ징용ㆍ징병 제도 실시에 이론적ㆍ정치적 지도자로서 의식적으로 행동한 악질분자” 등이 친일파로 규정되고 척결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부칙에 "이상의 조항에 해당한 자로서 현재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자와 건국사업을 적극 협력하는 자에 한해서는 그 죄상을 감면할 수도 있다"는 면책조항을 두었다. 이 때문에 북한 역시 우리가 아는 바와는 달리 친일파들이 역사 북한 권력의 핵심에 들어앉게 되었다. 이 친일파들의 자기 권력 형성과 유지를 위한 노력 때문에 한반도는 분단의 영속화가 장기적으로 가고 있다.

이렇게 한반도의 두 지역에서 친일파의 판단기준은 비슷하다. 친일파라 할지라도 두 지역의 건국사업에 협력한 자들은 죄상이 면책되었다. 이야기를 다시 앞으로 돌리자. 앞의 두 사람 바우와 도끼는 모두 친일파로 간주해야 한다. 정치적 사안에 의하여 친일행위를 한 흔적이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고려대학교 창설자 김성수의 경우 그는 분명 전반기 친일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후반기 그 자신의 친일행위에 반성을 하고 그의 재산을 털어 훗날 대학을 인수하였다. 그 후신이 고려대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에서 많은 인재들이 양성되고 있다. 그렇지만 김성수의 친일행위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죄상은 면책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승만의 경우도, 박정희의 경우도, 최규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제 일제시대 친일파가 정치논리에 의하여 조작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후손들도 “그 당시는 먹고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었다.”는 온갖 구접스런 변명을 집어치우고 자기 선친이나 가족들의 친일행위를 인정해야 한다. 그게 역사가치를 바르고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차기 대권의 꿈을 꾸며 어께에 날개를 단 듯 대한민국 전체를 활개치고 다니는 박근해도 반성을 해야 한다. 아버지의 일이 결코 자식의 일과는 무관하다. 그럴지라도 역사가치가 호도되지 않게 박근해는 자신의 아버지가 친일파였고 많은 나쁜 짓을 했다고 자신의 가족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대권후보에 나서는 것이 떳떳하다. 자신의 선친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후광(친일 형통)을 계승하려는 곳은 대한민국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녀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 된다면, 대한민국은 비참한 대통령계보가 형성된다. ‘제대로 된 대통령’(?) 두 명을 제외하고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다운 대통령이 있었던가. 거기다 박근해까지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역사가치를 바르게 판단하는 기준을 가질 때 세상을 바르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2011. 3.19 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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