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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함석헌의 탈바꿈(개혁-혁명-진화)사상 6

by anarchopists 2020. 1.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5/19 06:33]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탈바꿈(개혁-혁명-진화) 사상

5. 다원주의적 종교관
그의 선각자적 개혁사상은 오늘날 종교와 문화의 패러다임이 되어있는 다원주의적 사고에도 나타난다. 그것은 무엇보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꾼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전집1, 4판 서문) 특히 위에서 기술한 대로 불교와 기독교의 회통적, 종교다원주의적 시각을 보여준 것은 그 시대 기독교 지식인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한국현실에서는 아직도 그렇다.)

서구학자들은 지금 다원주의의 큰 흐름 속에서 종교 간의 대화와 상호교류 및 보완에 대단한 관심을 갖는다. 특히 동서 전통을 대표하는 불교와 기독교 간의 이론적, 실천적 접목이 시도되고 있다. 세계종교와 세계철학의 권위인 영국출신 캘리포니아 대 교수 니니안 스마트는 스스로를 ‘불교-성공회신도’(Buddhist-Anglican)라고 했을 정도이다. 유대교-불교신자의 경우도 있다. 틱낫한과 달라이 라마 같이 불교 쪽에서도 두 종교전통의 조화와 회통에 열심이다.

함석헌도 유난히 자주 ‘석가, 예수’, ‘예수, 석가’를 함께 놓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위대한 인격에는 반드시 회심(回心)의 경험이 있으며 “인간은 개조를 요하는, 회개를 요하는, 기질 변화(즉 탈바꿈)을 요하는 존재이다”고 말한다.(전집2:391) 회심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覺)에 상당한다. “살아날 수 있는 생명의 요점은 깨달은 마음에 있다”(8:439).
함석헌 사상과 불교의 우연한 접촉점은 ‘나’의 무아론적 해석, 사성제(四聖諦)의 시발점인 고통의 명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만 그는 비폭력 개념에서처럼 개인 고통을 집단 고통으로 초점을 변경하고 적용범위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였다. 한국역사를 ‘고난의 역사’라 하고 우리 민족을 ‘수난의 여왕’이라 한 것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현대 비교종교학의 태두인 윌헬름 캔트웰 스미스 같은 학자는 니니안 스마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중(多重)적 종적(宗籍)을 말하는 학자도 있다. 이는 한국인이 이미 오랫동안 유전자 속에 지니고 있는 종교정체성이다. 황필호 교수는 한국인은 원래 개종(conversion)보다 ‘가종’(加宗 add-version)이 맞다는 탁견을 냈다. 함석헌도 그런 식이다.

“나는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내 임이 다섯입니다. 고유종교, 유교, 불교, 장로교, 또 무교회교,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내 영혼의 주인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 내가 같이 있는 퀘이커도 내 영혼의 주인일 수는 없습니다.”(3:318)

다만 황필호와 달리 여기에 개별 종교에 대한 부정적 뉴앙스가 담겨있는 것은 그가 갈라짐을 지양하고 전체, 한, 하나를 지향하는 열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한 종교의 절대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다. 한 종교에 이르는 것은 모든 종교로서만 될 일이다.”(2:365) 근대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뮬러가 말한 “한 가지만 아는 것은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격”이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다원주의적 종교관은 함석헌의 선각자적 통찰을 다시 드러낸다.


선진국 대학에서는 대개 ‘세계종교’가 교양필수과목에 속할 정도로 나아갔다. (그런 과목은 한국 대학에서는 종교학과 만큼이나 드물다.) 영국 종교저술가 카렌 암스트롱은 최근의 세계종교 개론서(2007)에 해당하는 『위대한 탈바꿈』(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인류 차축시대에 등장한 10대 세계종교를 다루면서 개인주의, 지구의식 등을 말하고 그 결론부에서 여러 종교 경전을 인용하면서 맹자의 ‘(남의 고통을) 참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으로 끝맺는다. 함석헌의 어법과 비슷하다. 함석헌은 유교, 기독교, 도교, 불교 등 세계종교를 동서로 누비면서 말하는 어법과 필법을 구사한다. 그가 설정한 이 지표로 볼 때 한국 사회와 한국 대학이 갈 길은 아직 까마득하게 보인다. (김영호, 끝)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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